가을 심상/정성태 가을 심상 나의 기도는 가을 낙엽보다 쓸쓸하다. 사랑하는 벗 하나 끝내 바람결에 묻히고, 발길 끊긴 잔가지 끝엔 마른 눈물 몇 방울. 이내 타는 듯 낙하하며 쏟아내는 찬란한 슬픔. 인연의 종착점을 지난 그 마지막 햇살의 그리움. 詩 정성태 정성태 [시집] 2012.09.15
미리 쓰는 유서/정성태 미리 쓰는 유서 당신 무릎에 내 머리 눕힌 채 한결같이 당신만을 사랑했노라는 내 이승에서의 마지막 말을 미리 전하노니 사랑하는 이여, 어느 훗날 당신과 내 사이를 가르는 신의 내밀한 부름을 받게 될 때 그리하여 설혹 내가 정신을 놓고 잠자 듯 그대에게서 멀어지게 될지라도 다만 .. 정성태 [시집] 2012.09.04
흐린 하늘을 보며/정성태 흐린 하늘을 보며 굵은 빗줄기 오다가다 날은 짓궂게 어둡고 내게는 까닭 있는 아픔 몇 가닥 어느 순간, 너와 내가 버렸을 지금은 흔적조차 찾기 어려운 먼 기억 속의 푸르고 따뜻한 꿈 여기 한낮을 흐리게 감춘 먹구름 속에 깊게 파묻고 너와 나 무표정하게 서 있다 살아 갈수록 그 무엇.. 정성태 [시집] 2012.09.03
사랑은/정성태 사랑은 사랑은 솜털 위에 쌓이는 아침 햇살 그 가슴에 물들어가는 안온의 속삭임. 한정없는 그리움과 숨막히는 열망의 골짝을 지나 그 두렵고 무거운 시간과 끝없는 상심의 파고를 지나 그때야 비로소 번지는 부드럽고 내밀한 언어. 속삭이며 꽃들은 피었다 지고 지친 영혼을 위로하리니.. 정성태 [시집] 2012.08.30
풍경 2/정성태 풍경 2 하늘 끝자락 저 멀리 풀을 뜯는 양떼구름 석양을 누린다 공간 아래엔 산이 있고 들이 있고 또 무엇이 있다 천지가 어울린 그곳엔 시가 있다 도란 도란 평화를 읊조린다. 詩 정성태 정성태 [시집] 2012.08.27
풍경 1 풍경 1 이 보드라운 대지 위에 물은 저리도 맑게 흐르고 초목은 또 얼마나 푸르더냐 따사로운 인식의 햇살 아래 상큼한 초록 내음은 코 끝에서 가슴으로 스미고 닿을 수 없이 높은 하늘엔 한가로이 뭉게 구름이 떠간다. 詩 정성태 정성태 [시집] 2012.08.26
이쯤에서 내 사랑도 깊게 울어야 한다/정성태 이쯤에서 내 사랑도 깊게 울어야 한다 이쯤에서 내 사랑도 깊게 울어야 한다. 돌아보는 건 차마 가늠할 수 없는 기나 긴 애증의 그림자뿐인 것을 더는 무어라 그 모진 삭풍을 견디어 낼 수 있으랴. 이제야 비로소 사랑도 속된 것임을 그리고 저 깨달음의 죄업을 어찌하랴만 저무는 것은 저.. 정성태 [시집] 2012.08.23
자화상/정성태 자화상 내게 푸르기만 하던 소년의 때, 기름진 대지와 나지막한 산이 있었네. 언제라도 인심 좋은 마을 사람들 집에선 아침과 저녁이 되면 굴뚝 위로 연기가 올랐네. 자비로우나 엄하기도 했던 병든 아버지와 새끼손가락 같은 동생들도 함께 있었네. 거기 앵두와 무화과가 익어가고 담장 .. 정성태 [시집] 2012.08.21
생의 이름을 걸고/정성태 생의 이름을 걸고 생의 이름을 걸고 내 사랑의 향배를 묻고 싶다. 기품 있는 한 송이 그 꽃이 내게 주는 무수한 언어에 채널을 맞춘 채 지상의 모든 사랑과 그 빛나는 맹세보다 더 굳은 내 고독한 죄를 용서 받고 싶다. 詩 정성태 정성태 [시집] 2012.08.17
향수/정성태 향수 나 가노라면 이 길 끝 바람 불어 시원한 유년의 호숫가에 이르리 산새들 한가한 저녁 초록 물결이 곱고 소박한 들꽃의 나들이 달빛에 젖는 그곳으로 나는 가리 반딧불 악보 그린 뒷동산 오선지 따라 꿈 같은 세월을 묻으리. 詩 정성태 정성태 [시집] 2012.08.11
노란 모닥불/정성태 노란 모닥불 아니라고 절대 아니라고 하늘을 맹세코 아니라고 한낱, 모닥불을 얻어 쬐고자 더 큰 추위로 꽁꽁 마음문을 걸어 잠궜다. 새벽, 닭이 울고 나면 기어이 따라 울 하루에도 몇 번씩 노란 모닥불을 그렸다. 노오란 그 때 베드로의 모닥불을. 詩 정성태 정성태 [시집] 2012.07.29
그와 나누는 동거/정성태 그와 나누는 동거 어제 저녁 무렵 내 좁은 욕실 어딘가에 틀어박힌 채 자정이 넘도록 소리를 내고 있는 녀석. 혼자 사는 내게 소통되지 않는 대화를 건네는 것도 같고 때론 내 슬픔을 대신 울어주는 것도 같다. 5년여를 꼬박 땅속에 갇혀 지내다 무슨 인연이 깊은 것이기에 지상의 짧은 삶.. 정성태 [시집] 2012.07.26
바다/정성태 바다 지성의 전진은 폭풍의 노동과 함께 상실되고 너는 만족하지 않는 질문을 끊임없이 요구했다. 마치 단절과 규제를 모르는 듯 이제 저녁 놀이 적막하다 그리고 네 기묘한 알몸도 금빛으로 한가롭다 그러나 묻지 않을 수 없다 에로티시즘, 그 잔혹한 공포로부터 내 고행의 악마적 반복.. 정성태 [시집] 2012.07.16
기방 여인네의 뒷모습에 비친 사랑/정성태 기방 여인네의 뒷모습에 비친 사랑 어느 댁 나들이를 갔더니 거문고를 안고 가는 조선시대 기방 여인네의 뒷모습이 쓸쓸한 풍경으로 눈에 띈다. 우리네 삶의 종착을 보는 것만 같아 한 동안 말을 잊고 깊은 생각에 함몰된 채 나왔다. 결국 사람 사는 동네의 목숨을 버릴 듯 열망하던 그 뜨.. 정성태 [시집] 2012.07.14
인연/정성태 인연 비록 길이 멀다하나 사랑은 운명과도 같아 거기 빛나게 서 있나니 주어진 인연이라면 설혹 약속이 없을지라도 더불어 와야 할 때를 안다. 詩 정성태 정성태 [시집] 2012.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