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거리에서 눈 내리는 거리에서 가슴 시린 사람들 머리 위로 혹은 꽉 움추려든 어깨 위로 눈 내리는 신작로가 길다. 해 짧은 날의 간극만큼 이승의 인연도 그러했으면 좋으련만 모질게도 질긴 것이 명줄이라고 어쩌면 저기 눈 쌓인 신작로만 같다. 푹푹 빠지는 발길 날은 춥고 걸음은 지친데...... 詩 정성태 정성태 시집 "나이 마흔 넘은 진짜 총각이 쓴 연애시" 에서 발췌 정성태 [시집] 2024.01.10
첫눈 내리는 날에 첫눈 내리는 날에 저것이 얼마나 머뭇거리다 이제야 내게로 오는 것일까. 살포시 손짓하는 것이 행여 들킬세라 인기척 하나 없고 부끄러이 뒤돌아서 옷고름 헤치는 아직 순전하던 날의 속살과도 같이 저것이 얼마나 머뭇거리다 이제야 내게로 오는 것일까. 詩 정성태 정성태 [시집] 2023.12.25
복음에 대하여 복음에 대하여 그의 행위를 살펴 봄으로 그의 의를 아나니 어떤 이는 선한 말을 하더라도 그 마음에는 숨겨진 독이 들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이는 그가 비록 악한 말을 하더라도 그 가슴에는 흐르는 꿀물을 담고 있나니 말만 있는 자는 그의 이웃에게 따습게 하라 하고서도 뒤돌아서서는 그 이웃의 남은 땔감마저 빼앗는가 하면 행동하는 자는 그의 이웃에게 게으름뱅이라 저주하고서도 은밀한 중에 그에게 필요한 땔감을 주나니 이러므로 사람의 의는 그의 말에 있지 아니하고 그의 행위에 있음이라 그러나 그 모든 의를 행함에 있어서는 사랑에서 발원하여 사랑으로 완성되어져야 하나니 행위는 의의 표징이 되나 사랑은 믿음의 산 증거가 됨이라 그러므로 말만 있는 믿음은 심판 날에 그의 믿음이 불타는 아궁이에 내던져질 것이며 행함만 .. 정성태 [시집] 2023.12.24
가을산에서 가을산에서 가을은 산으로부터 온다 산봉과 산봉을 맞닿은 운무 거기 정령들의 두런거리는 숨결과 함께 찰나를 살아 영원을 이어가는 그 새긴 뜻은 전 우주를 돌고도 남아 다시 불그레한 가을을 부르는데 이제 누구 있어 깨달아 알까 죽어 흩어진 얼굴들이 한데 모여 저렇듯, 무욕의 깨끗한 풍광을 살아감을 계절이 돌아가는 이 즈음 서성이는 마음은 잎새만이 아니어서 아직 제 길을 찾지 못한 내 번고의 뜨락도 젖어 운다. 詩 정성태 정성태 [시집] 2023.11.12
당신 창가에 쏟아져 내리는 별이 되어 당신 창가에 쏟아져 내리는 별이 되어 어둠은 깊이를 모르고 잠들어 가는데 나는 오늘도 당신을 그리며 밤을 지샙니다. 당신이 못내 생각나 어느 하루도 온전히 잠 못 이룬 채 마냥 사무치는 내 안의 그리움을 당신은 조금이라도 알고 계시는지요. 당신이 보고 싶어서 몇 번이고 큰 소리로 속울음을 웁니다. 그러나 이제 또 내가 당신을 얼마나 더 크게 불러야 내 혹독한 추억의 빗장으로부터 당신을 잊을 수 있을런지요. 여전히 당신을 사랑하지만 그러나 당신을 잊어야 하는 슬픔이 남아 있습니다. 당신의 정겹고 따스한 미소와 함께 했던 많은 일 모두 이제는 총총히 돌려 세워야 하는 이런 내 마음을 당신은 듣고 계시는지요. 당신과의 아름다운 기억을 편지로 적어 오늘은 촘촘히 하늘에다 띄우렵니다. 어디서든 가슴 태우지 않고도.. 정성태 [시집] 2023.10.03
나를 닦으며 나를 닦으며 어느 자락, 바람 한 줄기 더불어 나도 거기 쉼을 얻으리. 혹여 남은 기간 이승의 인연을 더한다면, 아래 툭 트여 훤한 물줄기 보이는 곳에 터를 내리. 일체의 번잡함으로부터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무수히 쌓이고 내장된 갈증과 탐욕으로부터 보다 단조롭게 요약되고 또한 하나로 규정될 수 있는 나 거기 안식을 얻으리. 詩 정성태 정성태 [시집] 2023.09.04
살면서 누구에게나 살면서 누구에게나 살면서 문득 문득 베인 듯 되살아나는 어디 통증 없는 사람이 있으랴. 사랑도 그렇거니와 삶의 숱한 들숨 날숨 사이로 날선 회한과 그리움이 칩거하는 젖은 달빛에 목을 놓고 흐르는 별빛에 숨이 막힐 듯한 누군들 통증 없는 사람이 있으랴. 詩 정성태 정성태 [시집] 2023.07.28
그에게 가는 길 그에게 가는 길 밤이 이슥토록 내 안에 뿌리 채 배어든 가장 애틋한 길을 홀로 걷습니다. 마음은 한 달음인데 그에게 가는 길은 아득하기만 하여 자꾸 꿈속을 헤매는 것만 같습니다. 사랑한다는 것이 얼마간의 긴장과 고통을 수반하는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을 이해합니다. 그럼에도 내게 깃든 이 견디기 힘든 마음의 동통이 꼭 요정의 장난만 같아 기묘합니다. 오늘도 먼 곳에 있는 그에게 내 가늠할 수 없는 그리움을 담아 여전히 밤이 이슥토록 길을 걷습니다. 詩 정성태 정성태 [시집] 2023.07.27
비와 그리움 비와 그리움 비 오는 하오, 바라보는 가슴 사이로 젖어드는 빗줄기가 슬프다. 흐린 날씨만큼 시계는 불투명하고 너는 여전히 말이 없다. 매 순간 밀려드는 내 안의 통증 깊은 그리움, 쏟아 붓는 장마 속에 잠기운 채. 時 정성태 정성태 [시집] 2023.06.25
예루살렘 입성 예루살렘 입성 지극히 높으신 이 나귀 타고 들어가네. 저들 무리들 '호산나' 외쳐 부르나 그 길은 고난의 형틀 작정하신 죽음의 길이라네. 섬김과 희생 피눈물 나는 기도의 서곡이니 그 길을 통해 부활의 아침도 성취됨일세. 詩 정성태 정성태 [시집] 2023.04.06
내 생의 또 다른 종언을 고하며 내 생의 또 다른 종언을 고하며 축축한 거리 달도 없이 술은 오르고 내 생의 또 다른 종언을 고하듯 저리도 높은 곳에 홀로 그러나 하염없이 걸터앉아 붉디붉은 빛을 토하는 지금 내 피곤한 영혼도 언젠가는 저 고독한 구원을 향해 가리니 시간은 예외 없이 공정하고 나 또한 유한한 삶을 살다 갈 것이거늘... 달도 없이 취하는 밤 축축하게 마음마저 젖어든다. 詩 정성태 정성태 [시집] 2022.12.18
심안의 창문 사이로/정성태 심안의 창문 사이로 심안의 창문 사이로 교회 간판이 몇 개 보이고 한창 물이 오른 등나무 가지들에선 계절이 하늘로 더 푸른 기세로 두려운 기색도 없이 콘크리트 절벽을 넘어 서고 사람들은 화사한 그러나 어두운 그림자를 달고선 제 모양대로 어디론가 서둘러 길을 가는 안목의 저 쪽.. 정성태 [시집] 2015.06.05
네게 날개를 주리니/정성태 네게 날개를 주리니 네게 날개를 주리니 그대 잘 있으라. 내가 받은 묵계의 황홀함도 그 기억의 질량도 여전히 유예하다만 이제 그대 곁 떠나는 길 발자국 소리 서둘러 슬픔을 멎게 하고 그 청명한 이슬도 거두어 내리니 그대 지금 평안하시라. 나 살아 끈적이는 입술 있어 행여 분별없이 .. 정성태 [시집] 2014.12.17
산책길에 떠도는 단상/정성태 산책길에 떠도는 단상 돌아서는 길에 피차 그 무슨 서운함을 토로하겠는가. 우리가 꿈꿨던 인연의 기억들 훗날 불쑥불쑥 꺼내 볼 일 생기거든 그리하여 마음 자락 어느 언저리라도 아직 여리던 날의 꽃잎 같이 남아 서로에게 양식일 수 있으면 족할 뿐인 것을 이제 우리가 비록 손 흔든다.. 정성태 [시집] 2013.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