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태 [시집] 195

눈부신 햇살로 남을 거예요

눈부신 햇살로 남을 거예요 바람으로 왔어요.또 바람으로 갈 거예요.아주 홀연히 떠나가야 할그 종국의 순간이 다가오면그래요, 훌훌 털어버리고아무런 미련도 없이 떠날 수 있는눈부신 햇살로 남을 거예요.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작은 풀꽃들에도 감사하며그 숨은 아름다움을 힘입을 거예요.무엇이 내게 더 소중한 것인지그래요, 사람 사이에 나눈소중한 인연을 가슴에 새길 거예요.우리가 나눈 눈물의 사연그 내밀한 빛깔에 감사하며거듭 눈부신 햇살로 남을 거예요. 詩 정성태

정성태 [시집] 2025.02.21

사랑하기 때문에 아프다면

사랑하기 때문에 아프다면사랑하기 때문에 아프다면사랑한다고 말해야 합니다.사랑하는 심장을 지녔기에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사랑의 이름으로 기억되는그것은 생각이 아니라 몸짓입니다.생각은 생각을 낳을 뿐당신의 사랑을 보증하지 않습니다.생각하는 머리가 있다면오히려 사랑의 심장을 꺼내주는사랑의 이름은 사랑 뿐인 것입니다.詩 정성태

정성태 [시집] 2024.12.09

시련의 강을 건너고 있는 그대에게

시련의 강을 건너고 있는 그대에게그대 슬퍼 말라삶은 때로 규율할 수 없는그리고 하나로 정리되지 않는 무수한 언어의 집합이니그대 사랑을 할 때라도불타는 고통과 좌절은 있는 것이어서그것이 그대에게 혹독한 형벌이 되기도 하리니지금 그대에게 주어진 삶도 그렇거니와그대가 꿈꾸는 사랑 역시그것들은 그대 스스로 외에는다른 어떤 이도 규정할 수 없거니와또한 쉽게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와 같은 것그러나 그대 기억하라그대 안의 수많은 의문과 의문그것들은 결코 항구적인 것이 아니어서이는 햇볕에 곰팡이가 드러나면이내 힘을 잃고 죽게 되는 것과 같으니그래서 진실은그대 안의 시련을 통해 더욱 성숙해지고그대 갈증이 그대 심연까지 다다르게 하기 위한그래서 신이 택한 가장 좋은 것을 골라그 때 비로소 그대에게 기꺼이 주고자 함이니따라서..

정성태 [시집] 2024.11.28

주변인 백서

주변인 백서 지금 너와 내가 주고 받는 언어는 눈물 젖은 경륜의 이력이거나 혹은 쓰리게 아픈 재단일 것이다. 이미 차갑게 굳어버린 내게 설혹 잃어버린 왕국을 얘기한들 그 극명히 꿰뚫는 바람의 전갈을 어쩌란 말인가. 그 날, 기약 없이 돌아서는 눈길 사이로 왜 지독히도 씁쓸한 안개비가 내리던지 이미 너도 알고 있는 허허로움이지 않던가. 한 때는 일단의 용맹한 군사들 틈에 혹여 내 그림자 같은 것이 있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그 상처 패인 길 모퉁이를 돌아 어쩌면 너에게 지친 발길을 맡기려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오늘, 내 안에 서늘한 장막이 드리우고, 이제 그만 늦은 길을 떠나라고 자꾸만 재촉하는데 그것을 어찌 무심히 모로 선 내 탓만 할 수 있겠는가. 詩 정성태

정성태 [시집] 2024.10.06

구도의 노래

구도의 노래 우는 자여! 그대 가난한 날의 고독한 눈물을 거두어 내십시오. 모닥불 지펴 마음을 데울 친구가 없어도 존재하는 모든 것의 실상은 기실 혼자라는 것 그대 밖에서 그려지는 그대 그림자를 보려 하진 마십시오. 삶의 껍질을 벗고 나면 존재의 법칙도 보다 자유로운 것 그대 혜안의 창을 넓혀 삶의 여유를 더하십시오. 밝음에 있으되 낙조의 끝을 지나 밤이 되고 깊음이 더하면 어김없이 아침은 오고야 마는 법 낙엽이 지고 눈이 내리는 철없는 삭풍이 분다 하여 그대 가녀린 가슴에 결코 빗장을 채우진 마십시오. 詩 정성태

정성태 [시집] 2024.09.26

가시나무새

가시나무새 우리에게 화살 같은 열망이 없다면 생각해 보십시오 저 해묵은 주홍 글씨로 선명한 인습의 마파람을 피할 순 없습니다. 그러나 애초 철부지가 아닌 다음에야 기억하십시오 세상을 쓰다듬을 용기를 지녔다면 사랑은 결코 무력하게 파산하진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기대에 거짓이 없다면 들어 보십시오 삶이 갖는 내밀한 떨림 그 나날의 기적이 따뜻하게만 전해져 옵니다. 詩 정성태

정성태 [시집] 2024.08.11

부재

부재 언제쯤 미몽에서 깨어 내 안의 낯익은 두려움을 몰아 낼 수 있을까. 회색 공포가 밀려드는 시각 도무지 잠은 오지 않고 진원은 더더욱 선연히 날을 새우며 밝은 데 격정과 슬픔이 마구잡이로 교차하는 숱한 기억의 파편 사이로 혼란스레 타오르는 일그러진 분노. 소스라치듯 죽어가는 초췌한 모습 그 언저리 어디쯤에서 부르르 몸을 떨며 여전히 나는 부재 중. 詩 정성태

정성태 [시집] 2024.07.27

전언

전언 묻지 마십시오 기억할만한 것이 없으니 또한 드릴 말씀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별은 어느 순간에도 가슴 메이는 것을, 문득 일어서는 이승의 뒤안길에서 꽃잎은 애달게 흩어져 내리고 또 길을 떠난 철새의 일단을 보았습니다. 탁하게 들이킨 담배 연기가 내 약한 위장을 침범할 때 다짐했던, 돌이켜보면 사뭇 처절한 결단의 때가 있었건만 여전히 흡연의 폐해는 위통을 동반하고 나는 또 이별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니 더는 묻지 마십시오. 벌써 문 앞에 다다른 그림자 하나, 나는 여태껏 그것을 꿈이라 이름합니다. 詩 정성태

정성태 [시집] 2024.07.03

무거움이 지는 밤

무거움이 지는 밤 한 겹 지더니 또 한 겹의 무거움이 진다. 네모난 상자곽 속에 촘촘히 박힌 일상의 기대와 혹은 절망의 파편이 하나 둘씩 꺼져 가는 밤, 오밀조밀 뒤엉켜 가지런한 정형의 군락을 이룬 채 오늘도 숱한 얘기와 사연이 오고 갔을 저 숭고한 어둠의 조락. 자기 몫의 무거움 만큼 맑고 따뜻하기에 가난할 수밖에 없는 여린 풀잎들에 대한 나지막하고 거룩한 찬미. 아직 남은 불빛 사이로 또 한 겹의 무거움이 진다. 詩 정성태

정성태 [시집] 2024.06.22

눈 내리는 거리에서

눈 내리는 거리에서 가슴 시린 사람들 머리 위로 혹은 꽉 움추려든 어깨 위로 눈 내리는 신작로가 길다. 해 짧은 날의 간극만큼 이승의 인연도 그러했으면 좋으련만 모질게도 질긴 것이 명줄이라고 어쩌면 저기 눈 쌓인 신작로만 같다. 푹푹 빠지는 발길 날은 춥고 걸음은 지친데...... 詩 정성태 정성태 시집 "나이 마흔 넘은 진짜 총각이 쓴 연애시" 에서 발췌

정성태 [시집] 2024.0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