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재 부재 언제쯤 미몽에서 깨어 내 안의 낯익은 두려움을 몰아 낼 수 있을까. 회색 공포가 밀려드는 시각 도무지 잠은 오지 않고 진원은 더더욱 선연히 날을 새우며 밝은 데 격정과 슬픔이 마구잡이로 교차하는 숱한 기억의 파편 사이로 혼란스레 타오르는 일그러진 분노. 소스라치듯 죽어가는 초췌한 모습 그 언저리 어디쯤에서 부르르 몸을 떨며 여전히 나는 부재 중. 詩 정성태 정성태 [시집] 07:31:28
풀꽃에 대한 묵상 풀꽃에 대한 묵상 풀꽃들이 아무렇게나 피어 있다. 그 속에 무수한 질서가 내장된 저들 가녀린 목덜미 위에도 이슬이 묻어나고 꿈이 깊어 간다. 오늘 여기 풀섶에서 행여 다칠세라 발자국 조심스레 마음 살필 나는 끝끝내 누구를 사랑할 것인가? 詩 정성태 정성태 [시집] 2024.07.14
전언 전언 묻지 마십시오 기억할만한 것이 없으니 또한 드릴 말씀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별은 어느 순간에도 가슴 메이는 것을, 문득 일어서는 이승의 뒤안길에서 꽃잎은 애달게 흩어져 내리고 또 길을 떠난 철새의 일단을 보았습니다. 탁하게 들이킨 담배 연기가 내 약한 위장을 침범할 때 다짐했던, 돌이켜보면 사뭇 처절한 결단의 때가 있었건만 여전히 흡연의 폐해는 위통을 동반하고 나는 또 이별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니 더는 묻지 마십시오. 벌써 문 앞에 다다른 그림자 하나, 나는 여태껏 그것을 꿈이라 이름합니다. 詩 정성태 정성태 [시집] 2024.07.03
무거움이 지는 밤 무거움이 지는 밤 한 겹 지더니 또 한 겹의 무거움이 진다. 네모난 상자곽 속에 촘촘히 박힌 일상의 기대와 혹은 절망의 파편이 하나 둘씩 꺼져 가는 밤, 오밀조밀 뒤엉켜 가지런한 정형의 군락을 이룬 채 오늘도 숱한 얘기와 사연이 오고 갔을 저 숭고한 어둠의 조락. 자기 몫의 무거움 만큼 맑고 따뜻하기에 가난할 수밖에 없는 여린 풀잎들에 대한 나지막하고 거룩한 찬미. 아직 남은 불빛 사이로 또 한 겹의 무거움이 진다. 詩 정성태 정성태 [시집] 2024.06.22
눈 내리는 거리에서 눈 내리는 거리에서 가슴 시린 사람들 머리 위로 혹은 꽉 움추려든 어깨 위로 눈 내리는 신작로가 길다. 해 짧은 날의 간극만큼 이승의 인연도 그러했으면 좋으련만 모질게도 질긴 것이 명줄이라고 어쩌면 저기 눈 쌓인 신작로만 같다. 푹푹 빠지는 발길 날은 춥고 걸음은 지친데...... 詩 정성태 정성태 시집 "나이 마흔 넘은 진짜 총각이 쓴 연애시" 에서 발췌 정성태 [시집] 2024.01.10
첫눈 내리는 날에 첫눈 내리는 날에 저것이 얼마나 머뭇거리다 이제야 내게로 오는 것일까. 살포시 손짓하는 것이 행여 들킬세라 인기척 하나 없고 부끄러이 뒤돌아서 옷고름 헤치는 아직 순전하던 날의 속살과도 같이 저것이 얼마나 머뭇거리다 이제야 내게로 오는 것일까. 詩 정성태 정성태 [시집] 2023.12.25
복음에 대하여 복음에 대하여 그의 행위를 살펴 봄으로 그의 의를 아나니 어떤 이는 선한 말을 하더라도 그 마음에는 숨겨진 독이 들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이는 그가 비록 악한 말을 하더라도 그 가슴에는 흐르는 꿀물을 담고 있나니 말만 있는 자는 그의 이웃에게 따습게 하라 하고서도 뒤돌아서서는 그 이웃의 남은 땔감마저 빼앗는가 하면 행동하는 자는 그의 이웃에게 게으름뱅이라 저주하고서도 은밀한 중에 그에게 필요한 땔감을 주나니 이러므로 사람의 의는 그의 말에 있지 아니하고 그의 행위에 있음이라 그러나 그 모든 의를 행함에 있어서는 사랑에서 발원하여 사랑으로 완성되어져야 하나니 행위는 의의 표징이 되나 사랑은 믿음의 산 증거가 됨이라 그러므로 말만 있는 믿음은 심판 날에 그의 믿음이 불타는 아궁이에 내던져질 것이며 행함만 .. 정성태 [시집] 2023.12.24
가을산에서 가을산에서 가을은 산으로부터 온다 산봉과 산봉을 맞닿은 운무 거기 정령들의 두런거리는 숨결과 함께 찰나를 살아 영원을 이어가는 그 새긴 뜻은 전 우주를 돌고도 남아 다시 불그레한 가을을 부르는데 이제 누구 있어 깨달아 알까 죽어 흩어진 얼굴들이 한데 모여 저렇듯, 무욕의 깨끗한 풍광을 살아감을 계절이 돌아가는 이 즈음 서성이는 마음은 잎새만이 아니어서 아직 제 길을 찾지 못한 내 번고의 뜨락도 젖어 운다. 詩 정성태 정성태 [시집] 2023.11.12
당신 창가에 쏟아져 내리는 별이 되어 당신 창가에 쏟아져 내리는 별이 되어 어둠은 깊이를 모르고 잠들어 가는데 나는 오늘도 당신을 그리며 밤을 지샙니다. 당신이 못내 생각나 어느 하루도 온전히 잠 못 이룬 채 마냥 사무치는 내 안의 그리움을 당신은 조금이라도 알고 계시는지요. 당신이 보고 싶어서 몇 번이고 큰 소리로 속울음을 웁니다. 그러나 이제 또 내가 당신을 얼마나 더 크게 불러야 내 혹독한 추억의 빗장으로부터 당신을 잊을 수 있을런지요. 여전히 당신을 사랑하지만 그러나 당신을 잊어야 하는 슬픔이 남아 있습니다. 당신의 정겹고 따스한 미소와 함께 했던 많은 일 모두 이제는 총총히 돌려 세워야 하는 이런 내 마음을 당신은 듣고 계시는지요. 당신과의 아름다운 기억을 편지로 적어 오늘은 촘촘히 하늘에다 띄우렵니다. 어디서든 가슴 태우지 않고도.. 정성태 [시집] 2023.10.03
나를 닦으며 나를 닦으며 어느 자락, 바람 한 줄기 더불어 나도 거기 쉼을 얻으리. 혹여 남은 기간 이승의 인연을 더한다면, 아래 툭 트여 훤한 물줄기 보이는 곳에 터를 내리. 일체의 번잡함으로부터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무수히 쌓이고 내장된 갈증과 탐욕으로부터 보다 단조롭게 요약되고 또한 하나로 규정될 수 있는 나 거기 안식을 얻으리. 詩 정성태 정성태 [시집] 2023.09.04
살면서 누구에게나 살면서 누구에게나 살면서 문득 문득 베인 듯 되살아나는 어디 통증 없는 사람이 있으랴. 사랑도 그렇거니와 삶의 숱한 들숨 날숨 사이로 날선 회한과 그리움이 칩거하는 젖은 달빛에 목을 놓고 흐르는 별빛에 숨이 막힐 듯한 누군들 통증 없는 사람이 있으랴. 詩 정성태 정성태 [시집] 2023.07.28
그에게 가는 길 그에게 가는 길 밤이 이슥토록 내 안에 뿌리 채 배어든 가장 애틋한 길을 홀로 걷습니다. 마음은 한 달음인데 그에게 가는 길은 아득하기만 하여 자꾸 꿈속을 헤매는 것만 같습니다. 사랑한다는 것이 얼마간의 긴장과 고통을 수반하는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을 이해합니다. 그럼에도 내게 깃든 이 견디기 힘든 마음의 동통이 꼭 요정의 장난만 같아 기묘합니다. 오늘도 먼 곳에 있는 그에게 내 가늠할 수 없는 그리움을 담아 여전히 밤이 이슥토록 길을 걷습니다. 詩 정성태 정성태 [시집] 2023.07.27
비와 그리움 비와 그리움 비 오는 하오, 바라보는 가슴 사이로 젖어드는 빗줄기가 슬프다. 흐린 날씨만큼 시계는 불투명하고 너는 여전히 말이 없다. 매 순간 밀려드는 내 안의 통증 깊은 그리움, 쏟아 붓는 장마 속에 잠기운 채. 詩 정성태 정성태 [시집] 2023.06.25
예루살렘 입성 예루살렘 입성 지극히 높으신 이 나귀 타고 들어가네. 저들 무리들 '호산나' 외쳐 부르나 그 길은 고난의 형틀 작정하신 죽음의 길이라네. 섬김과 희생 피눈물 나는 기도의 서곡이니 그 길을 통해 부활의 아침도 성취됨일세. 詩 정성태 정성태 [시집] 2023.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