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태 [신작] 380

깊은 밤 낯선 사내

깊은 밤 낯선 사내 초로의 사내가 비틀비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깊은 밤길을 간다. 그의 신체만큼이나 꿈이 쇠약해진 듯 흔들리는 발길과 불만 섞인 말투가 애잔하다. 공기가 차가운데, 가다말고 쓰러지면 북망산이 지척일텐데 공허한 염려를 보낸다. 담배 한 개피를 불안스레 피우는 동안 길 모퉁이를 돌아 낯선 사내가 자취를 감춘다. 時 정성태

정성태 [신작] 2023.04.10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부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부쳐 조국의 이름을 붙들고 서로가 서로를 향해 죽음의 병기를 겨눈다. 거기 주검이 된 자는 이제 그들이 사랑했던 각자의 조국으로 이송돼 오, 십자가를 앞세운 채 송가가 울리는 장례 절차를 밟는다. 인류의 욕망이 빚는 이 얼마나 슬프고 격정적인 이율배반인지 평화는 여전히 멀고 비장한 각오와 죽음의 시간만 손짓한다. 時 정성태

정성태 [신작] 2023.04.01

꽃이 피기까지는

꽃이 피기까지는 꽃이 아름답다 하나 어디 절로 피는 꽃이 있던가? 사랑이 깊다 하나 어디 절로 맺는 사랑이 있던가? 길고 긴 혼돈의 터널과 모진 풍상을 견디고서야 비로소 꽃은 꽃으로 아름답고 사랑은 사랑으로 숭고한 것. 수신 없는 전화기를 붙든 채 때로 숨 막히고 기약 없어 마음에 빗방울이 스밀지라도 그대, 결코 미움을 심지 말라. 삶도 그렇거니와 사랑 또한 처절한 상처 뒤에서야 빛나는, 본디 그것들은 위태로운 공중의 줄타기와 같으니 다만 그대 안의 사랑과 그 사랑이 주는 믿음만을 의탁하라. 詩 정성태

정성태 [신작] 2023.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