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밤 낯선 사내 깊은 밤 낯선 사내 초로의 사내가 비틀비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깊은 밤길을 간다. 그의 신체만큼이나 꿈이 쇠약해진 듯 흔들리는 발길과 불만 섞인 말투가 애잔하다. 공기가 차가운데, 가다말고 쓰러지면 북망산이 지척일텐데 공허한 염려를 보낸다. 담배 한 개피를 불안스레 피우는 동안 길 모퉁이를 돌아 낯선 사내가 자취를 감춘다. 時 정성태 정성태 [신작] 2023.04.10
봄의 찬가 봄의 찬가 사무치게 시리다, 동토 위로 반란하는 저 녹색의 비밀. 덜 익은 햇살 아래 지표를 뚫고 솟는 생명의 신비를 안고 그 모든 강인한 것의 비밀 열쇠를 풀어내는 차라리 슬픈 탄주. 時 정성태 정성태 [신작] 2023.04.09
꿈속에서 꿈속에서 꼼짝없이 그대를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그것이 헛되지 않음을 비장한 맹세로 새기며 그 무엇을 회피하거나 나약한 고뇌도 않겠습니다. 오직 세상 끝자락까지 온전히 사랑할 일입니다. 詩 정성태 정성태 [신작] 2023.04.08
봄비 내리는 밤에 봄비 내리는 밤에 가로수 불빛을 뚫고 목마른 대지 위로 봄비가 밤을 적신다. 희던 꽃잎도 연분홍 매무새도 그 모든 것의 인연도 오랜 갈증을 겪고서야 필연적으로 당도한 이 한밤의 해갈 앞에 지는 꽃들이 설혹 눈에 밟힌다한들 마음에 빗물이 된다한들 그 여정을 겪고서야 봄비가 씨알이 되는 생명의 원리인 것이리니 時 정성태 정성태 [신작] 2023.04.04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부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부쳐 조국의 이름을 붙들고 서로가 서로를 향해 죽음의 병기를 겨눈다. 거기 주검이 된 자는 이제 그들이 사랑했던 각자의 조국으로 이송돼 오, 십자가를 앞세운 채 송가가 울리는 장례 절차를 밟는다. 인류의 욕망이 빚는 이 얼마나 슬프고 격정적인 이율배반인지 평화는 여전히 멀고 비장한 각오와 죽음의 시간만 손짓한다. 時 정성태 정성태 [신작] 2023.04.01
무량한 것에 대해 무량한 것에 대해 아직 다하지 못한 그리움이 남아 있습니다. 끝내 고백하지 못한 마지막 말도 묻어납니다. 연거푸 흐른 속절없는 성상 앞에서 생각의 무게는 여전히 무량하기만 합니다. 그 끝모를 침잠 속으로 하루 밤낮이 억겁의 치장을 한 채 어디론가 밀려나고 있습니다. 詩 정성태 정성태 [신작] 2023.03.31
꽃을 마주하며 꽃을 마주하며 신의 예정된 질서 가운데 올 것은 기필코 오고야 만다. 꽃들이 현란하게 피기까지 그것을 미리 볼 줄 알았던 어느 결고운 손길을 택했을까? 스스로의 심상에 꽃이 있거늘 슬프다고 어찌 슬퍼할 일인가? 詩 정성태 정성태 [신작] 2023.03.29
봄길 나서며 봄길 나서며 새순이 돋는다는데, 이른 꽃도 피었다는데, 그 봄길 따라 떠날 채비를 다지는 묵은 그림자. 질긴 인연의 원근과, 그만한 사랑의 굴레 모두 훈풍 이는 꽃길에 묻으며 이제 그만 길을 재촉하는 핏빛 그리움이 섧다. 詩 정성태 정성태 [신작] 2023.03.27
꽃이 피기까지는 꽃이 피기까지는 꽃이 아름답다 하나 어디 절로 피는 꽃이 있던가? 사랑이 깊다 하나 어디 절로 맺는 사랑이 있던가? 길고 긴 혼돈의 터널과 모진 풍상을 견디고서야 비로소 꽃은 꽃으로 아름답고 사랑은 사랑으로 숭고한 것. 수신 없는 전화기를 붙든 채 때로 숨 막히고 기약 없어 마음에 빗방울이 스밀지라도 그대, 결코 미움을 심지 말라. 삶도 그렇거니와 사랑 또한 처절한 상처 뒤에서야 빛나는, 본디 그것들은 위태로운 공중의 줄타기와 같으니 다만 그대 안의 사랑과 그 사랑이 주는 믿음만을 의탁하라. 詩 정성태 정성태 [신작] 2023.03.26
만산에 꽃이 지면 만산에 꽃이 지면 만산에 꽃이 지면 그대를 잊겠습니다. 잊는다하여 잊힐까만 그래도 잊어야 한다면 저 만산에 흩뿌리는 꽃잎으로 가겠습니다. 時 정성태 정성태 [신작] 2023.03.23
마음의 봄 마음의 봄 여전히 당도하지 않는 마음의 봄. 저기 막 꽃잎 띄우는 앳된 속살도 종언을 고해야 할 시대의 난간 위에서 파르르 몸을 떨며 순백한 눈물을 머금는... 時 정성태 정성태 [신작] 2023.03.20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 가네, 골고다 언덕 그 극형의 길. 채찍 당하고 찔리며 사지에 못 박혀 죽임을 당하러 가네. 비아 돌로로사. 비아 돌로로사. 순전한 양 한 마리, 대속의 푯대를 지고 피에 젖은 길을 오르네. 詩 정성태 정성태 [신작] 2023.03.16
봄마중 봄마중 긴 혹한을 물리치고 이내 꽃비가 내리더라. 어쩌면 떠나간 이의 향기로운 소식일 줄도 모를 이제 그 먼길 돌아온 가녀린 꽃잎의 사연 품으러 봄마중 나가야 하는데 살포시 입맞춤 나눠야 하는데 時 정성태 정성태 [신작] 2023.03.14
그리움 위에 쓴다 그리움 위에 쓴다 달이 뜨는데 그대, 무심결에 돋아나는 질긴 그리움의 너울. 거기 무너지는 속내, 헝클어진 파장 사이로 또 연거푸 별이 뜨는데 저 하늘 위 어디, 혹은 여느 골목 모퉁이, 나는 가슴만 쥐어뜯는데... 時 정성태 정성태 [신작] 2023.03.12
죽음 이면을 지목하며 죽음 이면을 지목하며 당신들의 낮은 깜깜하고 밤은 더없이 호화롭게 찬란하다. 거기 유배된 혹은 감금된 우리는 기력을 잃은 채 겨우 연명하는 의식을 치루며 오지 않을 꿈을 꾸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생을 놓는 순간에야 확연히 드러나게 될 것만 같은 그 빗장의 유일한 통로가 죽음 이면을 지목하며 손짓한다. 詩 정성태 정성태 [신작] 2023.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