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태 [뉴스]

안산상록을, 치과의사 김영환 후보에게 관심이 많은 이유

시와 칼럼 2009. 10. 5.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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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상록을, 치과의사 김영환 후보에게 관심이 많은 이유
국민의 정부 최연소 장관, 민주세력 분열로 피해 본 대표적 인물
 
정도원
 

노무현 대통령 당선 이후 민주당이 두 개로 쪼개졌다. 김대중 대통령 시대로 50년 만에 정권을 수평적으로 교체하고 그 후 다시 노무현 후보를 당선시켜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 민주당에서 열린당이 갈라지면서 민주평화세력이 둘로 갈렸다.  
 
이후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평화세력은 처참하게 대배했다.  그 결과 이명박 대통령 시대를 열었다. 530만표라는 헌정 이래 가장 큰 격차로 집권당이 야당에게 참패한 이유는 민주평화세력의 분열이었고, 더 직접적인 표현은 열린당 창당 때문이다. 민주화 세력 분열이 어부지리로 한나라당을 키워 준 것이다. 여기에는 이견이 없다.

 

                   ▲ 김영환 전 과기부 장관이 오는 10월 28일 재보선에 민주당 후보로 경기 안산상록을에 출마했다. ©뉴민주.com

 
민주세력 분열로 인해서 정치권에는 수혜자와 피해자들이 있다. 열린당이 만들어 짐에 따라 너무나 쉽게 국회의원에 당선된 인물도 있고, 열린당이 만들어 짐에 따라 억울하게 정치권에서 밀려난 인물도 있다.

김영환, 그는 후자에 속한다. 민주세력 분열로 김영환은 정치무대 위에서 밀려난 대표적인 인물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집권한 국민의 정부에서 최연소 장관을 지낸 김영환이다. 김대중 대통령에 의해 과기부장관에 발탁될 정도의 참신한 인물이었다면 인물 됨됨을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그는 민주세력 분열 와중에 원칙에 충실해 민주당에 남는 선택을 했고, 그 선택은 잘 나가던 김영환의 발목을 잡았다. 열린당이 빠져 나간 민주당을 지킨 것이 잘못 선택이었다면  정치적 도박에서 선택을 잘못한 셈이다. 분당을 반대하고 원칙를 지킨 자가 손해보는 현실이 한국정치 현실이라면 억수로 재수없는 김영환이다.
 
지난 5년 동안 억수로 재수없는 길만을 걸었던 김영환이 우여곡절 끝에 오는 10월 28일 실시되는 재보선에 민주당 공천장을 어렵게 붙잡게 됐다. 그 결과는 아직 속단하기 어렵지만 재수 없는 길을 걸어온 김영환이 이번에는 재수 좀 있었으면 하는 기대를 갖고 그가 걸어온 이력을 꼼꼼하게 읽어 봤다.
 
중국집 주방장 5남매 장남으로 태어났고 연세대 치과대학에 입학,  본과 3학년 때 학내시위 주동하다 구속 수감 감방살이를 했다. 1979년 8월 석방 후 80년 봄에 복학했다가 광주민주항쟁 관련자로 다시 수배생활을 하면서 부천 인천 등 공단에서 5년 동안 노동운동했다. 공단에서 밑바닥 생활을 하면서 전기공사 기사 1급 자격증을 비롯해 6개의 자격증 취득했고, 시인으로 문단에 데뷔, 그리고 민주당으로 15대 국회의원으로 정치입문했다.
 
김영환이 정치에 입문하기 전의 이력 중에서 눈에 띄는 것 중의 하나가 출세가 보장된다는 치과대학 본과 3학년에 학내시위를 주동한 것이다. 의대생이나 치대생은 학내 시위에 별로 참여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볼 때 그는 상당히 특이한 성격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학내시위 주동 혐의로 그는 15년 만에 대학을 졸업한다. 그리고 치과의사 길을 걷다가 정치에 입문한다.

15대 국회에 참여한 정치인 김영환은 젊은 나이에 대단한 정치적 경력을 만들어갔다. 아마도 김대중 대통령에게 능력을 인정받는 것이 분명하다. 김대중 대통령에 의해 40대 중반에 장관을 지냈다는 것이 이를 입증한다. 재선 국회의원으로 장관으로 발탁되기 전 5년 동안 최우수 의원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정도면 A급 정치인이고 장래가 촉망된 젊은 정치인이다. 뿐만 아니라 김영환 경력 중에 연청중앙회장이란 직함도 있다. 연청은 김대중 대통령을 만든 전위대다.
 
김영환의 정치이력 중에서 민주당이 분당만 안됐다면 새로운 역사 중심에 설 수 있는 가능성 높은 인물이다. 그러나 민주당 분당은 그의 정치행보를 멈추게 했다. 그래서 민주당 분당에 대해 가장 분노할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한국정치사에서 민주당을 쪼갠 세력들이 만든 열린당은 이미 실패한 정치실험으로 평가가 끝났다. 김영환은 민주당 분당을 반대했고 민주당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았다. 민주세력 분열 책임에서 김영환은 무죄다. 민주당 분열에서 유죄혐의가 짙은 인사들도 그 후 변신에 변신을 거듭해 현재 민주당에 남아있다. 

치대생 학생시위 구속 1호 김영환, 노동운동가 김영환, 전기공사 1급자격증 소지자, 시인, 최연소 장관, 새천년 민주당 대변인, 정책위 의장, 최고위원...이 정도면 큰 정치인이 될 가능성을 잉태할 수 있는 정치인이다. 그러나 그의 꿈은 민주당 분당으로, 열린당 창당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방황과 고통의 시기를 지나 오는 10월 재보선에 안산상록을 민주당 공천자로 다시 정치무대에 다가섰다.


민주당의 전략공천으로 민주당 공천을 확보한 것이 아니고 지역민들의 여론에 의해 공천장을 거머 쥔 것이다. 그래서 더욱 값지고, 또 이번 재선거 결과가 긍정적으로 기대되는 것이다.

민주세력 분열의 상처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김영환이 오는 10월 28일 분열의 상처를 완벽하게 치유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치과의사인 김영환이 민주당의 충치를 뽑아내고 민주당 중심에 우뚝 설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10월 28일이 더더욱 기다려진다.


 

기사입력: 2009/10/04 [21:12]  최종편집: ⓒ 뉴민주.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