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태 [칼럼]

무슨 염치로 참여와 개혁을 입에 무는가?/정성태

시와 칼럼 2006. 3. 4.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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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보도된 기사 두 꼭지가 온 종일 가슴을 짓누른다.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던 한 여성 재소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는 것과, KTX 여승무원들에 대한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처우가 그것이다.

관련 소식에 따르면, 서울 구치소 교도관의 성추행을 무마하기 위해 상급 교정 당국까지 나서 사건을 축소·은폐하려 했으며, 이도 모자라 피해 여성에게 오히려 책임을 덮어 씌우려했다는 것이다. 그 뿐 아니라, "피해를 입증해 줄 증인이 있느냐" 또는 "너만 힘들어진다"라는 식으로 회유·협박까지 했다고 하니 도무지 눈과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얼마나 기가 막히고 원통했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소변이 나오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을까. 정신 분열 증세까지 보였는데도 구치소 측이 이를 숨기다, 가족 면회 때 비로소 진상이 밝혀졌다고 하니 아연 말문이 막힐 따름이다. 또한 가족들의 입원 치료 요구를 묵살한 채, 통원 치료만을 허용하다 자살 기도에 이르게 했다니 통분을 금할 수 없다.

사정은 철도 공사도 예외가 아닌 듯 하다. KTX 여승무원들에게도 성희롱 문제는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으며, 심지어는 보건 휴가마저 제비뽑기를 해서 가야 하는 절박한 처지에 놓여 있다고 한다. 또한 "피가 철철 흘러 넘쳐도 일은 해야 되는 것 아니냐"며 인간적 모멸감까지 받았다고 하니, 참으로 해괴하고 망측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신입 사원에게 지급되는 유니폼마저 기존의 헌 옷을, 그것도 자기 돈을 들여 수선하거나 세탁해 입으라고 한다니 세상 천지에 이런 일도 있을 수 있는가 싶다. 더더욱 당혹스런 일은, 이들의 신분이 철도 공사가 위탁 도급하고 있는 자회사 소속의 비정규직 사원으로, 해당 위탁 회사에서 여승무원의 급여 가운데 30% 가량을 관리비 명목으로 떼어 가는 실정이라고 한다. 한 마디로 남의 피땀어린 노동의 대가를, 그것도 국영 기업이 앞장 서 착취하고 있는 셈이다.

교정 당국을 지휘 감독하고 있는 정부 부처가 법무부다. 이곳의 수장이 천장배 장관으로, 그 누구보다 목청껏 개혁을 주창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철도 공사의 이철 사장 또한 민주화 운동의 화려한 전력의 소유자다. 그런데 작금 국민 일반의 인식은, 그 혹독하던 군부 독재 시절과 하등 다를 바 없는 썩어 문드러진 냄새를 고통스레 맡고 있다.

참여 정부를 표방하고, 또 숱한 개혁 과제를 제시했던 노무현 정권이다. 그런데도 오늘 우리의 삶과 의식은 과연 어느 시대 상황으로 회귀되기를 강요받고 있는 것인지, 절로 장탄식이 터져 나온다. 아울러 같은 하늘 아래 이런 극악한 일이 발생하고 있는데도 도대체 무슨 염치로 지금껏 참여 정부를 표방하고 또 개혁을 운운하는지 자꾸만 두려운 마음이 엄습한다.

기억할 것은, 오늘의 역사가 그대로 거짓없이 기록되리라는 점이다. 그리고 우리가 피차 고난의 짐을 함께 나누어지고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인간이라는 명백한 사실이다. 또한 그 존엄의 푯대 위에서 너와 내가 결코 다르지 않다는 순박한 깨우침이다. 낮은 곳으로부터 새어 나오는 일상의 서럽고 고단한 호곡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기를 촉구한다.

 

시인 정성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