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태 [칼럼]

삼성 이건희 회장 방패막이로 전락한 국회 재경위/정성태

시와 칼럼 2006. 10. 14. 0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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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국정감사가 열리는 첫 날, 재경위 전체회의장 풍경은 그야말로 허가 낸 도적들이 자리를 꿰차고 있는 듯한 형국이다. 다름 아닌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에 대한 고발안건과 증인채택안건이 모두 부결처리된 것이다.

 

이건희 회장은 1998년 기아자동차 사태 개입 및 삼성자동차 채권 보전 문제와 관련, 작년 10월 초순 경에 이미 국감증인으로 채택된 바 있다. 그러나 당시 신병 치료를 이유로 미국에 체류하며 국회출석 요구에 불응하였었다.

 

새삼 돈다발의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셈이었고, 국가의 대의기관인 국회는 그야말로 재벌 회장님의 안하무인 앞에서도 무슨 연유에선지 손을 놓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훌쩍 더 나아가 국회 차원에서 이를 아예 원천 차단해 준 것이다.

 

이로 인해 이건희 회장의 2005년 국감증인 불출석에 대한, 그것도 만 1년이 지난 후에야 검찰에 고발하겠다는 늑장대응도 이미 산 넘고 물 건너간 듯 하다. 아울러 이번 국감장에 증인으로 출석시키는 것 또한 마치 가을 서리에 나뭇잎 꼴이 된 듯 하다.

 

한 때 크게 유행되었던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란 대중가요 노랫말이 문득 머릿속을 어지럽게 스친다. 도대체 재경위 소속 의원나리들께 무슨 말 못할 사정이 그리 깊었던 것인지 의아스럽기 짝이 없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고발안건에 대한 국회 재경위 소속 의원들의 기립표결을 보면, 찬성(7명), 반대(3명), 기권(8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기권의 경우에도 암묵적인 반대의견이나 매양 다르지 않은지라, 결국 7명의 의원만이 찬성하고 그 외 11명의 의원은 반대한 셈이다. 이를 정당별로 살펴보면, 고발에 찬성한 경우는 열린당(4명), 한나라당(1명), 민주당(1명), 민노당(1명)이며, 고발에 반대한 쪽은 열린당(2명), 국중당(1명)이다.

 

그런데 여기서 더욱 아리송하고 그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것은 바로 기권한 나리들로 열린당 (6명), 한나라당 (2명)이다. 또한 이건희 회장 증인출석에 대한 표결에 있어서도 찬성 3명, 반대 2명, 기권 8명으로 나타났다. 특히 한나라당 소속의원 10명 의원 가운데 8명은 아예 표결조차 참여하지 않았다니 그 꿍꿍이속이 참으로 궁금타 아니할 수 없다. 결국 증인출석에 찬성한 의원은 고작 3명뿐이었는데 반해, 그 외 다수 의원들은 기권하거나 또는 슬금슬금 자리를 뜸으로써 반대의사를 행사했다는 뜻이다.

 

이를 빗대 국회 재경위 국감장에서 나온 몇몇 의원의 뼈아픈 발언이 가슴을 친다. 먼저 증인출석을 주도한 민노당 심상정 의원의 역설로 “여러 동료의원들의 고충을 덜어드리고 재경위의 참담한 위신을 감안해 신청한 증인 모두를 철회하겠다.”는 말이다. 그 담긴 속내를 뜯어보면, 참으로 썩은 재경위란 말로 해석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여기에 민주당 김종인 의원의 일갈로 "국회에서 증인을 채택하더라도 이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대개 권력이 있거나 힘이 있는 사람들", "제대로 된 처벌이 이뤄지지 않으면 굳이 국회에 누가 나오려고 하겠는가"라는 원로 경제통의 의미 깊은 질책이다. 국회를 비롯한 우리사회 권력 심장부의 비뚤어진 자화상을 잘 웅변하고 있는 대목임에 분명하다.

 

국정감사 첫날 드러난 국회 재경위의 행태를 통해, 과연 국회 재경위가 도대체 뭘 하는 곳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정부 재정과 국가의 경제정책을 살피며 이를 심의하고 검토하는 곳인지, 아니면 재벌그룹 회장님 구하기의 특명을 받고 국회에 파견된 방패막이들인지 그 정체가 묘연할 따름이다.

 

시인 정성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