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태 [칼럼]

전여옥의 사랑과 섹스에 관한 20가지 법칙/정성태

시와 칼럼 2006. 2. 24.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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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필가로 인구 사이에서 유명세를 얻은 바 있는 전여옥 씨의 칼럼 가운데 "사랑과 섹스에 관한 20가지 법칙"이란 것이 있다. 자칫 고루하기 십상인 성에 대한 입장을 비교적 분명하면서도, 또 적잖이 따뜻한 시각으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호감을 지녔던 기억이 있다.

그런 그가 17대 국회에 입성한 후, 한나라당 대변인을 맡으면서 내어 쏟는 논평을 접하게 되면, 때로 탱탱하게 출렁거리는 여인네의 젖가슴과도 같은 충만함을 느끼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그런가하면 위태롭다 못해 막 터질 듯한 고무풍선과도 같은 아찔함을 경험하기도 했다. 이후 대변인에서 물러나면서 그 특유의 독설이 좀 잠잠한가 했더니, 이번엔 끝내 대형 사고를 치고야 말았다.

어느 인터넷 뉴스 매체에 따르면, 한나라당 내부 행사에서 있은 전여옥 의원의 발언 가운데 김대중 전 대통령을 지칭해서는 치매든 노인으로 표현하는가 하면, 열린당 의원들을 향해선 날강도· 날건달 · 싸가지 없는 X 등의 극단적 언어를 동원하며 거칠게 몰아 세운 것이 발단이다.

정부 여당의 일부 인사들에 대해 세간에서 회자되기를, "참 싸가지 없는 사람들"이라고 하는 경우가 있음도 숨길 수 없는 사실임에 틀림없다. 국정을 다스리는 최고위층 인사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적잖은 여론인지라, 한 사람의 국민된 입장에서 부끄러운 마음 감출 길이 없게 된다. 따라서 관련 당사자들은 스스로를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며 아울러 겸양의 미덕을 쌓아야 할 대목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문제는, 민족 문제의 역사적 승리로 평가받고 있는 6.15 선언에 대해, 치매든 노인의 분별없는 합의였다는 식의 악의적 물어뜯기 앞에서는 참으로 당혹스럽고 또 우려스런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마치 그녀의 입술이 퇴화된 라디오에서 찍찍거리는 공해라도 되는 듯 말이다.

물론 야당 의원으로서 정부 여당에 대한 비판의 몫은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발언에 대해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 비판의 양식이 보다 격조 높고 또 인간적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천박한 소음으로 들리게 되고, 본인 역시 싸가지 없는 X가 되기 때문이다.

문제의 발언이 인터넷 매체에 소개된 이후 "DJ를 향해 치매든 노인이란 표현은 한 바 없다"고 해명한 점에 있어서는, 그녀의 말이 사실이기를 바라고 또 다행스레 여긴다. 그러나 여기서도 지적하고 싶은 것은, 남북 문제에 대한 종래의 극한 대립적 사고 체제, 그리고 DJ라는 한 인물에 대한 냉전주의자들의 오래되고 이해 못할 강박관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음은 스스로를 수치스럽게 여길 수 있어야 한다.

오는 4월로 예정된 방북 일정도 5월에 있을 지방 선거를 앞둔 미묘한 시점인지라, 자칫 여당의 선거에 악용될 수 있다는 한나라당의 설득력 있는 요청에 의해 6월로 미뤄지지 않았던가. 더욱이 병든 노구의 몸임에도 불구하고 민족의 평화 공존과 공동번영을 통한 통일의 가교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마지막 남은 여생을 쏟아 붓고 있는 국가 원로이지 않는가. 그렇다면 덕담은 건네지 못할 망정 그리 낯뜨겁게 깎아 내려서야 어디 될 말인가.

노무현 정권이 제 아무리 무능하고 또 좌충우돌하느라 날밤을 지샌다한들, 한나라당이 절대 집권할 수 없다는 세간의 평가가 바로 여기에 연유하고 있다. 그것을 뼈아프게 들을 수 있다면, 민족문제에 있어서 보다 전향적인 자세를 취할 수 있어야 한다. 사학법 개정에 있어서 종래의 태도를 벗고 한결 진일보한 입장에서 타결한 것과 같이, 그리고 전여옥 의원의 사랑과 섹스에 관한 20가지 법칙에서 보여주었던 인간에 대한 내밀한 성찰처럼 함께 숙고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시인 정성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