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태 [칼럼]

증시는 올랐는데, 국민들은 왜 가난해졌는가?

시와 칼럼 2026. 8. 10. 21:53

지금 대한민국 사회는 국민들의 소중한 자산이 일순간에 증발하는 처참한 파국의 한복판을 건너고 있다. 코스피 지수의 화려함 뒤에 웅크린 채 매일같이 겪어내야 하는 수많은 개인투자자들의 절규와 금융 지옥이 엄존하는 시대다. 이를 기록하는 역사가들은 2026년을 콕 집어 '숫자가 인간을 기만한 기묘하고도 비극적인 해’로 규정할 듯싶다.

대선 당시 이재명 후보가 공약했던 '코스피 5000 시대’는 성취를 넘어 한때 9000선을 돌파한 뒤 급락하며 5000선까지 밀렸다가 다시 반등하는 등 극심한 변동성을 보이고 있다. 표면적 지수만 놓고 보면, 정권 출범 무렵의 3000 언저리보다 월등히 높아졌으니 대성공인 듯 보인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빚투’ 굴레에 갇힌 청년들과 노년층의 피눈물이 깊게 서려 있다.

정부의 증시 활성화 메시지와 반도체 위주의 강한 상승세가 맞물리며, 연신 화려한 상황을 연출했다. 하지만 그 종착지는 한순간 솟구치다 사라지는 불꽃놀이 참극이 되고 말았다. 건강한 근로의욕을 고취하기는커녕, 결과적으로 국민을 일확천금의 심리로 내몰 수 있는 정책 환경을 조성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특히 문제되는 대목은 대통령 취임 초기부터 주식시장을 자신의 정치적 치적과 긴밀하게 결합했다는 점이다. 코스피 5000 달성이라는 장밋빛 구호는 단순한 경제정책을 넘어 국정운영의 핵심 동력으로 여겨졌다. 이를 위해 소액주주 보호를 내세우며 시장 분위기를 띄웠고, 반도체 기업들의 호실적에 힘입은 증시는 급속도로 과열됐다.

즉, 경제의 내실 있는 성장보다 주가지수의 가시적 상승을 정치적 성과로 치장하는 데 무게가 실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장의 정상적인 조정을 통해 기초체력을 다지는 정공법 대신, 오직 ‘우상향’이라는 결과물에만 집착했다는 의혹이 그것이다. 바로 이 지점이 지금 대한민국 금융 현실을 바라보는 출발점이어야 한다.

또 다른 문제는 증시가 과열되는 과정에서 고위험 레버리지 상품까지 뒤늦게 등장했다는 데 있다. 이미 개인투자자들의 위험선호가 극단적으로 높아진 상황에서 단일종목 2배 레버리지 상품까지 시장에 투입되며, 급락 국면의 손실을 증폭시킬 위험이 한층 더 커지고 말았다.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치는 격이었다.

정부는 고위험 상품에 대한 보호 장치를 마련했다고 했으나, 시장의 폭발적인 변동성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고위험 금융상품에 대한 개인투자자들의 접근성까지 확대되며 ‘빚투’ 위험을 키울 수 있는 정책 환경이 조성된 측면이 강하다. 시장은 서킷브레이커와 사이드카가 잇따라 발동되는 극심한 변동성에 휩싸였다.

지수가 5000을 넘어 9000선을 돌파하며 1만을 향하던 폭풍 질주 속에서 정부의 증시 부양 메시지와 고위험 상품의 제도적 확대가 맞물리며, 개인들의 레버리지 투자 확대는 날개를 달았다. 더욱이 정부가 시장 과열을 막는 브레이크가 되기는커녕 도리어 대통령 스스로가 상황을 부추기는 '리딩방 방주’를 자처했던 것과 흡사하다.

이윽고 신기루가 걷히자 드러난 것은 숱한 개미들의 파괴된 영혼이었다. 지난 몇 달 사이 천문학적인 규모의 시가총액이 증발했다. 이는 단순한 평가손실이 아니다. 청년들의 미래이자 노년층의 노후 자금이 고위험 금융환경 속에서 제물처럼 희생된 결과다. 근시안적 정부 정책이 금융 취약계층에게 가혹한 채무로 남겨지게 된 참사다.

현재 증시가 보여주는 역설은 뼈아프다. 지수는 한때 9000선을 찍을 만큼 상승했지만, 그 과정에서 모든 투자자의 자산이 함께 늘어난 것은 아니다. 도리어 그 내부에서 신음하는 가계의 풍경은 정반대다. ‘저가 매수’라는 희망 고문에 갇혀 무리하게 빚을 낸 투자자들은 이미 대출 연체의 벼랑 끝에 몰려 있다.

이번 사태에서 가장 비극적인 점은, 급락장에서 매도 시점을 놓친 개인들이다. 대출금을 갚지 못해 마이너스통장이 한도에 이르고, 이어지는 증권사들의 반대매매라는 가혹한 운명 앞에 속수무책 쓰러졌다. 정부가 고위험 투자를 확대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을 만들고도, 그런데 정작 그 후과는 ‘시장 탓’으로 돌리기에 급급한 모양새다.

현재 우리 증권시장에 서려 있는 이 지독한 역설의 실체는 무엇인가. 첫째, ‘평균의 함정’이다. 정부가 '투자 선택권 확대’라며 권장하는 것으로 여겨지던 고위험 금융상품과 변동성 장세의 중심에서, 대다수 개미의 계좌는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는 이 기이한 불균형이 현재 한국 증시가 마주하고 있는 숫자놀이의 민낯이다.

둘째, 레버리지 ETF가 낳은 비대칭적 무덤이다. 금융당국이 제도적으로 허용한 단일종목 2배 레버리지 상품은 기초자산의 하루 수익률을 두 배로 추종한다. 문제는 손실이 누적될수록 원금 자체가 줄어들기 때문에, 이후 기초자산이 반등하더라도 손실이 같은 비율로 회복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여기에 높은 변동성이 반복되면 복리효과에 따른 손실이 더욱 커질 수 있다.

다시 말해, 지수가 9000대에서 6000대로 추락하는 간극마다 시장의 방향을 빠르게 전환할 수 있는 대형 투자자와 달리, 레버리지를 이용한 개인투자자들은 손실을 감당할 시간과 여유조차 갖지 못한 채 시장에서 퇴출될 수밖에 없다. 지금의 6000대 지수가 보여주는 숫자만으로는 그 과정에서 사라진 개인들의 자산과 삶의 충격을 설명할 수 없다.

셋째, ‘시간의 역설’이다. 정권의 증시 부양 메시지를 믿고 자신의 재산은 물론 대출까지 끌어와 ‘빚투’에 나선 개인투자자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폭풍 같은 하락장에서, 견딜힘이 없는 개인 투자자들은 담보 비율 부족으로 인한 증권사의 '반대매매’에 휘말려 강제로 시장에서 퇴출당했다. '재기 불능’의 경제적 사망 선고에 처한 것이다.

설혹 향후 코스피가 상승한다고 하더라도, 이미 하락장에서 큰 손실을 입고 시장에서 퇴출당해야 했던 개미들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다. 흔히 ‘지수가 오르면 부자가 된다’는 공식은, 이재명 정권의 극심한 변동성에 노출된 시장에서는 철저한 허구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이에 대한 정책적 과오를 명확히 설명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국가는 국민의 자산을 보호하는 마지막 방패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재명 정부는 증시 부양을 국정 성과의 전면에 내세우는 ‘리딩방식 국정운영’이라는 비판을 자초했다. 대외적으로 치장하던 증시 지표의 화려함이 국민들의 실질적 부를 파괴하고 있는 이 거대한 모순 상황 속에서도, 정권은 ‘시장 상황 탓’이라며 면피에 급급할 뿐이다.

증시 9000선 돌파 당시 그토록 찬양받던 성과는 이제 정권의 발목을 잡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소비는 얼어붙고 가계부채는 한계치를 넘어섰으니, 경제 정책의 실패가 국가 전체의 역동성마저 갉아먹는 상황이다. 정권의 치적을 위해 증시를 이용했고, 결국 국민들을 빚의 사슬로 옭아매는 비극적 사태에 놓이게 됐다.

더욱이 노후 자금을 주식시장에 쏟아 부은 세대의 상실감은 더 깊다. 정부가 권장한 '투자의 자유’라는 이름 아래, 지수가 급락할 때마다 날아오는 '증거금 부족 통보’와 ‘반대매매’ 통지에 완전히 박살났다. 남은 노후가 증시 그래프 속에서 녹아 없어지는 고통을 겪었다. 미래를 지탱해야 할 경제적 기반이 한순간에 움푹 꺼진 것이다.

이는 정부의 무리한 증시 부양 정책이 남긴 뒤틀린 자산 구조의 잔해이자, 증시 상승에 대한 낙관적 기대와 고위험 투자에 뛰어들었던 개인투자자들이 떠안게 된 깊은 상흔이다. 정부의 증시 부양이라는 허상 뒤에 가려진 정책 실패가 국민의 삶을 얼마나 황폐화할 수 있는지, 우리는 지금 선연하게 목도하고 있다.

지금 국민들이 요구하는 것은 정부의 변명이나 시장의 반등만을 기다리는 듯한 모습이 아니다. 고위험 금융상품 도입과 증시 부양 과정에서 정책적 판단에 문제가 없었는지 철저히 규명하고, 필요한 경우 책임을 묻는 것이 먼저다. 책임과 설명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무너진 금융시장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다.

무릇 정부의 책무는 주가를 올리는 데 있지 않다. 국민이 감당하기 어려운 위험으로부터 시장과 투자자를 보호하고, 주가지수라는 숫자가 아니라 국민의 실질적인 삶을 개선하는 데 있다. 증시가 아무리 높은 숫자를 기록하더라도 그 숫자 뒤에서 국민의 자산과 미래가 무너진다면 그것을 진정한 경제적 성과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숫자의 화려함이 국민의 삶을 대신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 필자 : 정성태(시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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