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4일 국무회의에서 대한민국 사법 체계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는 검찰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 등이 담긴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원안대로 의결·재가했다. 지난 수십 년간 이어져 온 수사·기소 체계를 근본적으로 재편하는 조치다. 하지만 경찰에 대한 견제 미흡과 사회적 약자의 피해 증가 등을 비롯한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이튿날 또 다른 문제가 드러났다.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법무부·행정안전부 등 관계 부처 업무보고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정성호 법무부 장관에게 "저는 (개정된 형사소송법)을 안 읽어봐서“라는 쉽사리 납득하기 어려운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결국 대통령이 최종 재가를 앞둔 법안의 핵심 내용을 충분히 숙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국무회의 의결이 이루어진 것 아니냐는 의문을 낳기에 충분했다.
국가의 범죄 대응 역량을 재편하는 중차대한 사안임에도, 법안을 읽어보지 않았다고 스스럼없이 밝힌 대통령의 모습은 국민에게 큰 우려를 안겨주는 장면이었다. 정책의 철학을 논하기 이전에 국가 최고 통치자로서의 자격과 책무를 심각하게 의심케 한다. 이재명 정권 스스로 법치주의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허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각한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정성호 장관은 그 자리에서 “검사의 수사권 전면 박탈로 인해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인지 사건조차 경찰이 불송치하면 그대로 종결될 가능성이 크다”며 사법 공백을 우려했다. 게다가 현행 ‘검·경 합동수사본부’조차 새로운 형사소송법 하에서는 수사의 법적 근거가 불투명해진다는 법리적 난제 등 법조계 일각의 경고가 나온다.
이에 대해 대통령이 내놓은 해법은 "수사 준칙을 만들면 된다"는 식의 접근이었다. 제도의 근본적 공백을 세부 지침으로 메울 수 있다는 인식은, 법 시행 이후 벌어질 혼란의 상당 부분을 현장에 떠넘기는 결과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 이를 뒤집어 보면 정부 역시 시행 과정에서 상당한 혼란 가능성을 인식하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형사소송법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 신체의 자유 그리고 범죄로부터의 안전과 직결된 문제다. 그런데 이번 처리 과정은 충분한 숙의보다 정치적 성과를 우선한 것이라는 인상을 남긴다. 사의를 표명했던 법무부 장관에게 대통령이 건넨 “잘 버티세요”라는 발언 또한, 향후 벌어질 책임을 실무 부처가 감당해야 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해석을 낳는다.
검경 수사권 조정과 인권 보호는 정파적 이해와 이념적 권력 다툼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특정 정치세력의 실험장이 되어서도 안 된다. 전문적인 증거능력 확보와 치밀한 보완수사가 결여된 채 검사를 수사에서 완전히 배제하겠다는 발상은 자칫 마약, 금융·증권 범죄 등 국가 안위를 해치는 범죄 조직에 대한 국가의 대응력이 약화될 위험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우리는 대통령에게 완벽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의 법률적 틀을 개정하는 중요한 갈림길에서, 최소한 관련 부처의 실무적인 경고와 법안의 핵심 내용을 파악하고 고민하는 진지한 태도를 바라는 것이다. 책임지는 행정이야말로 국가의 존재 이유다. 하지만 대통령이 보인 안일한 인식은 ‘법 위에 군림하는 행정’에 대한 공포심을 생생히 보여주는 듯싶다.
이제라도 대통령과 집권 여당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국가 사법체계는 한 번 균열이 생기면 회복에 막대한 시간과 사회적 비용을 치른다. 따라서 형사사법 질서의 근간을 흔드는 법안일수록 충분한 숙의와 신중한 검토가 선행되어야 한다. 국민에게 대통령의 왕관은 권력의 영광이 아니라 책임의 무게를 상징한다. 이를 외면한다면 훼손되는 것은 정권의 권위뿐만 아니라 국가의 법치와 국민의 신뢰임을 깊이 새겨야 한다.
* 필자 : 정성태(시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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