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형사사법제도는 국민의 생명과 자유, 그리고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거기에는 범죄 예방을 비롯한 범죄자 검거와 처벌의 목적도 함께 수렴된다, 형사사법제도의 변형은 국가의 뼈대를 바꾸는 일과 다르지 않다. 한 번 잘못 설계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힘없는 국민이 떠안게 된다. 따라서 형사사법 개혁은 정치적 구호나 목적, 그리고 권력기관 간의 이해관계가 아닌 오직 국민의 권익을 기준으로 판단되어야 한다.
이재명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는 형사사법체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검찰의 직접 보완수사를 없애고 경찰의 수사 결과를 토대로, 검찰은 기소 여부만 판단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경찰이 수사 개시와 종결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 있어서 절대적인 권한을 갖게 됨을 뜻한다. 그야말로 황제 경찰국가의 출현을 목전에 두게 된 셈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질문은 빠져 있다. 경찰 수사가 잘못되거나 부실할 경우, 이를 바로잡을 최종적인 안전장치는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수사권한을 경찰 한 곳으로 집중시킬 경우, 국민의 인권 보호와 사회적 정의가 보장되기는커녕 도리어 짓밟힐 개연성이 매우 농후하다. 모든 권한에는 견제와 균형이 필요하며, 형사사법 또한 예외가 아니다. 특히 사회적 약자 보호라는 측면에서는 더욱 그렇다.
광주 여고생 살해 사건은 이 질문에 대해 분명한 방향성을 제시한다. 경찰은 피의자를 단순 살인 혐의로 송치했다. 그런데 검찰의 보완수사를 통해 성범죄 목적을 지닌 살해 사건임이 밝혀지며 강간살인 혐의로 기소가 이뤄졌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현직 경찰 간부인 피의자 부친과 수사팀 사이의 유착 및 증거인멸 의혹까지 드러난 점이다. 검찰의 보완수사가 없었다면 사건의 실체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경찰 전체를 불신하거나 매도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다만 어느 기관이든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실수와 한계가 따르게 된다는 하나의 명징한 교훈이다. 조직 내부의 온정주의나 유착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실증적 사례라 하겠다. 때문에 민주국가의 권력은 효율적으로 분산되고 상호 견제됨으로써 국가공동체의 안정 도모와 사회적 정의 구현에 한층 가까워진다.
보완수사권은 검찰에게 어떤 특혜를 주기 위한 제도가 아니다. 그것은 경찰 수사의 오류와 부실을 바로잡고, 피해자의 억울함을 살피며, 미처 발견되지 못한 진실을 찾아내려는 최후의 검증 절차다.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마지막 안전장치 가운데 하나로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럴진대 이러한 안전장치를 없애면서 그에 상응하는 대안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피해를 보는 사람은 검찰이 아닌 힘없는 국민일 수밖에 없다.
여기서 함께 짚어야 할 점은, 검찰의 보완수사권이 폐지되면서 경찰의 1차 수사종결권이 유지될 경우다. 현재 경찰은 자체적 판단에 따라 사건을 종결할 수 있는 가운데, 검찰은 일부 사건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기록을 검토할 수 있다. 여기서 검찰의 보완수사권마저 사라지게 된다면 경찰이 종결한 사건은 외부의 실질적 검증 없이 그대로 끝날 가능성이 커진다. 억울한 피해자나 고발인의 권리구제 역시 더욱 어렵게 될 것임이 너무나 자명하다.
따라서 보완수사권 폐지에 앞서 논의되어야 할 것은 경찰 수사에 대한 실효성 있는 통제 장치다. 검찰의 보완수사권을 유지하는 가운데, 경찰이 처리한 사건을 원칙적으로 검찰에 송치하는 전건송치 제도를 복원하거나, 최소한 중대범죄와 불송치 사건에 대해서는 검찰의 실질적인 심사를 거치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고발인의 이의신청권 확대와 불송치 사건에 대한 재검토 절차 강화 등 국민의 권리보호 장치도 필히 요구된다.
형사사법제도는 원활하게 작동할 때보다 오작동할 때를 대비해 설계해야 한다.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검증 절차를 두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견제 없는 권한은 반드시 오용될 가능성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수사권을 경찰에 집중시키면서 그 권한을 견제할 장치를 없애는 것은 권력기관 개혁이 아니라 또 다른 권력 집중에 불과하다. 동시에 그것은 힘 있는 사람과 범죄자에게만 유리한 도구로 전락될 뿐이다.
검찰개혁의 본질은 국민의 인권을 더욱 두텁게 보호하고, 억울한 피해자를 줄이며, 형사사법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높이는 데 있다. 응당 오용될 가능성을 대비해 설계되어야 한다. 잘못된 수사와 내부 유착을 바로잡을 수 있는 장치까지 없애는 것은 형사사법의 안전판을 제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국민에게 해악을 끼친다면 그것은 개혁이 아니라 또 다른 비극적 서사가 될 뿐이다. 그야말로 개악이 되는 것이다.
형사사법 개혁은 특정 정권이나 정치적 이해관계를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정치적 이용물의 대상이 될 수도 없다. 전제한 바와 같이, 보완수사권을 폐지하려면 그에 상응할 수 있는 강력한 견제와 통제 장치가 먼저 마련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잃게 되는 것은 검찰의 권한이 아니라 억울한 피해자와 국민의 권리 실종이다. 형사사법제도의 목적은 국민의 권익을 지키는 데 있다는 사실을 하시라도 잊어서는 안 된다.
* 필자 : 정성태(시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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