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권력은 국민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권력의 행사를 폭넓게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법과 절차라는 엄격한 울타리 안에서만 허용한다. 절차를 무시하는 순간 권력은 언제든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소지가 높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권한이 클수록 더욱 신중해야 하며, 절차적 정당성과 객관적 증거는 어떠한 경우에도 정치적 목적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이번 박상용 검사 출국금지 관련 논란은 바로 이러한 원칙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 수사팀이었던 박상용 검사에 대한 출국금지가 해제되면서, 특검 수사의 적절성과 국가권력 행사에 대한 논란이 거듭 도마에 올랐다. 박 검사는 약 3개월 동안 출국금지 조치를 받았지만, 그 기간 특검으로부터 단 한 차례의 조사나 참고인 진술 요청, 전화, 문자, 이메일조차 받지 못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그러면서 이는 근거 없는 출국금지와 인권 침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처럼 충분한 수사 단서나 객관적 증거 없이 출국금지라는 강력한 강제처분이 이루어졌다면,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다. 출국금지는 단순한 행정절차가 아닌, 헌법이 보장하는 거주·이전과 해외여행의 자유를 제한하는 강력한 국가권력 행사다. 때문에 명확한 수사 필요성과 객관적인 자료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결코 쉽게 내려져서는 안 되는 조치다. 단순한 의혹이나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이러한 조치를 남용한다면 국가권력은 국민의 신뢰를 잃을 수밖에 없다.
특히 특검은 더욱 높은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을 요구받는다. 그럴진대 충분한 증거 확보 없이 '초대형 국정농단'과 같은 강력한 표현을 사용했다는 점은, 국민에게 사건이 이미 입증된 거대 권력형 범죄인 것처럼 인식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이후 수개월 동안 실질적인 관련 조사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국민적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특검 내부에서 공정성 문제가 제기돼 담당 특검보가 교체된 사실 또한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다. 관계자의 과거 변호 이력 논란으로 이어지며 국민에게 적지 않은 우려를 남겼다. 실제 이해충돌 여부와는 별개로, 사법기관은 공정할 뿐 아니라 공정하게 보이는 것 역시 중요하다. 국민의 신뢰는 절차적 정당성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국민이 특검의 중립성을 의심하게 되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사법 신뢰에 큰 상처를 남겼다.
국민은 국가에 권력을 맡긴다. 하지만 그 권력은 헌법과 법률, 그리고 적법절차라는 엄격한 테두리 안에서만 행사될 때 비로소 정당성을 얻는다. 민주주의는 권력을 견제하는 제도를 통해 유지된다. 권력은 의심만으로 국민의 자유를 제한할 수 없다. 이번 논란으로 인한 가장 큰 피해자는 비단 박 검사 개인으로만 국한되지 않는다. 국가권력의 공정성을 믿었던 국민 모두가 여기에 해당된다. 권력이 마음만 먹으면 조사도 하지 않은 채 국민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는 순간 법치주의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이재명 대통령도 이러한 논란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특검은 법률상 독립성을 보장받지만, 국민은 결국 국정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을 최종 책임 주체로 바라본다. 따라서 정부는 정치적 이해관계와 무관하게, 국가권력이 개인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그 책임을 다해야 한다. 국민의 기본권보다 정치가 앞서는 순간 민주주의는 위태롭게 흔들린다. 더욱이 정치적 목적을 위한 수사라는 의심을 받는 순간 사법제도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다.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이다. 때문에 권한을 행사할수록 더 엄격한 책임을 져야 한다. 어느 정부와 어떤 수사기관이든 국민의 기본권 보장과 적법절차라는 민주주의 원칙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그것이 국민이 국가를 신뢰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토대이며, 진정한 법치주의를 지키는 길이다. 권력은 바뀌어도 법치는 굳건해야만 국가 공동체가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
법치를 흔들고 무너뜨리는 것은 범죄만이 아니다. 권력이 법 위에 군림하는 순간, 민주주의의 기둥은 제멋대로 흔들린다. 오늘의 권력이 내 편이라고 해서 절차를 무시하면, 내일 그 권력은 또 다른 국민을 향해 같은 방식으로 행사될 수 있다. 법치는 정권 보호용이 아니라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특검도, 검찰도,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다. 권한이 클수록 더욱 겸손해야 하며, 보다 엄격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이며, 국민이 국가를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까닭이다.
* 필자 : 정성태(시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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