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 전역을 호령하며 복속시켰던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1세. 하지만 영국과는 대립 상태였다. 그렇다고 영국 본토를 침공하기엔 해군력이 열세였다. 이에 영국을 경제적으로 고립시킬 목적으로 대륙 봉쇄령을 발동하게 된다. 영국을 굴복시키지 않고서는 유럽 지배를 확고히 하기 어렵다는 전략적 판단이 깊게 깔려 있었다.
당초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1세는 봉쇄령에 대해 소극적으로 참여했다. 문제는 영국과의 교역 감소로 인한 러시아의 막대한 경제적 피해였다. 더욱이 나폴레옹의 무대책 방관까지 지속되며 알렉산드르를 자극했다. 결국 러시아는 영국과의 교역을 재개한다. 이는 동시에 나폴레옹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됐다.
급기야 나폴레옹은 1812년 6월 24일 대규모 군대를 이끌고 네만강을 건너 러시아를 침공한다. 그러나 같은해 12월 14일, 네만강을 되건너 프랑스로 돌아간 병사는 그리 많지 않았다. 러시아 원정에서 참패한 나폴레옹은 1815년 워털루 전투에서 영국과 프로이센 연합군에게 패배하며 최종 몰락하게 된다.
비록 러시아의 승리로 전쟁은 막을 내렸으나, 모스크바가 완전히 유린당하는 치욕을 겪었다. 아울러 침략국인 프랑스와 엇비슷한 규모의 숱한 인명 피해가 발생한 것도 큰 비극이었다. 훗날 레프 톨스토이는 보로디노 전투 현장을 여러 차례 방문해 당시 생존자들의 자료와 증언을 토대로 집필한 소설 '전쟁과 평화'를 출간한다.
세기가 바뀐 1904년 2월 6일, 만주와 한반도를 둘러싼 러시아와 일본의 셈법이 충동하며 러일전쟁이 발발한다. 만주 남부, 랴오둥 반도, 한반도 북쪽 근해에서 치러진 공방은 1905년 9월 5일 러시아 철군으로 끝난다. 이로 인해 대한제국은 을사늑약을 강요당하고 외교권이 박탈된다. 5년 후에는 일제 강점의 치욕을 겪게 된다.
그로부터 36년 후인 1941년 6월 22일, 독일이 소련을 침공한다. 유럽의 최강 패권 국가로 군림하던 나치 독일에 의한 이른바 독소전쟁이다. 히틀러 속에 내재된 민족적, 경제적, 이념적, 군사적 측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발생한 처참한 살육전이다. 단일 전쟁으로는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사상자와 파괴를 남긴 것으로 기록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즈음인 1945년 5월 9일까지 이어진 전쟁으로 인해 소련은 군인과 민간인 포함 2,700만 명 가량이 공식 사망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사망한 5,000만 명의 절반을 웃도는 끔찍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당시 한반도 인구가 2,500만 명이었음을 감안하면 그 피해 규모를 능히 가늠할 수 있다.
독일도 400만 명 넘는 군인 전사자와 50~200만 명에 달하는 민간인이 사망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판도에 결정적 작용을 하며, 히틀러의 몰락으로 직결됐다. 독일이 러시아 전선에서 끝모를 소모전을 펼치는 사이, 영국과 미국 연합군이 1945년 4월 30일 베를린을 함락한 것이다. 독일 분단과 냉전시대의 서막이기도 했다.
러시아는 몽골에 의해 점령되기도 했다. 몽골군 총사령관 '바투'와 부사령관 '수부타이'가 이끄는 서방 원정대가 1236년 볼가 강을 넘어 불가리아를 멸망시킨다. 당시 공국들로 이루어진 러시아도 급격하게 무너지며 1480년 독립 때까지 240년 가량 복속된다. 중국 대륙 전체를 짓밟은데 이어 몽골은 초거대 제국을 이루었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조망할 필요성도 있다. 서방의 강력한 힘의 균형은 국가 안보 측면에서 러시아 국민들에게 늘상 불안감으로 자리한다. 그것은 대규모 외세 침공에 의한 비극적 경험에서 비롯된다. 때문에 국경을 맞댄 우크라이나의 나토(NATO) 가입 추진은 크렘린을 격노하게 만들었다.
여기서 만일 우크라이나가 중립국 지위를 택했다면 오늘날의 형상은 완전히 달라졌을 듯싶다. 러시아와 나토 사이의 완충 지대로서 실익을 취하는 것이 드넓은 곡창지대와 제조업 역량을 갖춘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훨씬 유리한 구도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무슨 이유 때문인지 젤렌스키 대통령은 나토 가입 추진을 고집했다.
더욱이 러시아는 광활한 영토에도 불구하고 거의 산이 없다. 언덕의 경우에도 야트막한 정도에 불과하다. 강력한 적국의 침공을 받게 되면 주요 도시가 쉽사리 함락될 수 있다는 지형적 취약점을 안고 있다. 그것은 이미 몽골, 프랑스, 독일에 의해 당했던 끔찍한 역사적 교훈이다. 러시아의 안보 경계심이 바로 그에 맞닿아 있다.
이는 크렘린이 선제공격을 결단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으로 작동됐을 개연성이 높다. 공격 당할 상황이 뚜렷하다면, 예방전쟁 차원에서 차라리 먼저 공격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셈법 때문이다. 전장의 우위를 점한 상태에서 방어 지대를 확보하거나 또는 우크라이나를 러시아로 아예 편입해 버리는 것을 근본 해결책으로 여겼을 수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접경지인 돈바스 지역에 살고 있는 러시아계 주민들에 대한 우크라이나 민병대의 부당한 탄압도 러시아의 부수적인 전쟁 명분이 되었을 수 있다. 문제 해결을 위해 그 지역 영토를 확보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는 판단에서 기인한다. 2022년 러우전쟁 이후 현재는 러시아가 전역을 차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은 유대인 계통이다. 그의 서방 추종 민낯과 일방적인 나토 가입 강행 시도는 큰 오류다. 우선 러시아의 안보 위협을 가중시켰다. 아울러 장기간 지속된 돈바스 분쟁을 해결하지 않은 점도 실책이다. 이제라도 우크라이나를 중립 지대로 설정하고, 오직 국익과 민생 회복에 치중하는 것이 옳은 방안이라 여긴다.
* 필자 : 정성태(시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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