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태 [칼럼]

역사를 통해 소환되는 정치... 그들이 국민을 벼랑 끝으로 내쫓는다

시와 칼럼 2024. 2. 5. 0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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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역사는 고난의 대서사다. 중국과 북방 세력의 압도적 규모를 내세운 숱한 침략 전쟁에 수천년 동안 시달렸다. 16세기 후반에는 일본이 저지른 7년 동안의 임진왜란을 겪었으며, 20세기 들어서는 국권이 찬탈되는 수모를 당했다. 그로인해 일본 제국주의 총칼과 군홧발 아래 36년 동안 유린되는 비통한 시대를 건너야만 했다.

하지만 그런 비운 가운데서도 우리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다. 언어와 문화 등 민족적 정기와 자긍심을 굳건히 지키며 한층 발전시켜 온 영험한 지혜와 강인한 생명력이 발휘됐다. 일제강점기 당시 동원된 학도병을 비롯해 강제징용된 노동자와 위안부 등 온갖 억압과 치욕을 감내하는 순간에도 우리를 온전히 회복하기 위한 저항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맞이한 해방의 기쁨도 잠시 또 다른 외세에 의해 남과 북으로 갈린 채 극심한 좌우 이념 대립에 직면했다. 만일 이 당시 단일 국가 중립국을 이뤘다면 지금쯤 어떤 모습일까? 그러한 바람과는 달리 동족상잔의 피바람 몰아치는 비극의 현장으로 내몰렸다. 3년 전쟁 이후 폐허가 된 한반도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로 분류됐다.

그러나 주어진 상황에 굴하지 않고 운명을 개척해 나갔다. 북한은 중국, 러시아 등과 함께 하며 미국의 경제 제재에도 불구하고 자주 국방의 강군을 보유 중이다. 그런 반면 한국은 미국을 위시한 서방권과 손잡고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 핵무기를 제외한 군사력 측면에서도 세계 상위권에 속한다. 우리 민족의 진면목이 아닐 수 없다.

이는 카레이스키로 불리는 고려인 삶의 궤적을 통해서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 조선 말기, 흉년과 관가의 수탈로 인한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많은 사람이 지금의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해 토지를 개척하며 뿌리를 내렸다. 1910년 있었던 한일합방 이후에는 일제강점에 맞서 해방운동 근거지로 삼기 위한 이민도 활발해졌다. 그들 대부분 맨몸으로 땅을 일궜다.

그렇게 정착한 한인들 삶은 현지인들보다 오히려 풍족하게 바뀌었다. 그러나 운명의 신은 너무도 가혹했다.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에 따라 한인들은 중앙아시아 여러 지역으로 분리됐다. 여기서 연해주는 북한 두만강과 접경 지역이다. 비록 러시아 영토로 되어 있으나, 본디 우리 민족이 건국했던 해동성국(海東盛國) 발해 땅이다.

여러 이유를 안고 이역만리 낯선 땅으로 향해야 했던 한인들 삶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역경을 딛고 지금은 중앙아시아 각국의 지도적 반열에 올라선 경우가 많다. 일제강점기 말기 사할린으로 징용돼 정착한 한인들 또한 한인 자치주 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수천년 우리 민족이 감내해야 했던 아픈 역사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음식을 통해서도 이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여러 식재료와 양념을 넣고 버무려 먹는 비빔밥은 독보적 이유를 제공한다. 고기, 야채, 마늘, 쌈장 등을 함께 싸서 먹는 여러 유형의 쌈도 빼놓을 수 없다. 아울러 외국에서 유입된 음식을 재탄생하는 능력도 탁월하다. 미국이 원조로 알려진 닭튀김, 핫도그 등을 훨씬 다채로운 방법으로 보다 맛있게 만들어 낸다.

문제는 늘 정치에 있다. 부패하고 타락한 정치인이 조장한 양극화 골이 날로 깊다. 국가 존망을 위태롭게 하는 초저출산 현상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 여야 막론하고 본질적 해결을 위한 열의와 노력이 거의 없다. 혹은 대체로 표피적이거나 자극적 선동에 불과하다. 정치가 망해야 국민이 산다는 절규를 되짚지 않고서는 미래 전망도 그리 밝지만은 않을 듯싶다.

* 필자 : 정성태(시인 /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