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태 [칼럼]

중국과 일본 그리고 북한... 우리에게 어떤 존재일까?

시와 칼럼 2023. 6. 10.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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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당사국 사이의 불특정 모두를 극심한 슬픔과 고통으로 몰아넣는다는 점에서 인류 최대의 비극적 행위다. 필히 사라져야 할 파괴와 죽음의 전령으로서, 가장 악독한 범죄라고 할 수 있다. 이를 미연에 봉쇄해야 하는 것은, 자유와 평화를 영위하기 위한 당위로서 존재한다.

그러나 현실은 꼭 그렇게만 작동되지 않다는데 문제가 도사린다. 무엇보다 전쟁을 막아야 한다는 의지가 중요할 것이다. 아울러 그것을 위한 노력이다. 그럼에도 그것만으로 전쟁을 완전히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상대가 있기 때문에 그렇다. 더욱이 한반도 주변에는, 우리를 침탈한 전력이 있는 중국과 일본이 있다. 더욱이 군사 강국들이다.

역사는 교훈을 일깨운다. 원시로부터 현대사회로 이어지는 도전과 응전의 기록이 그것을 웅변한다. 강자의 폭력 앞에서 무력하게 난자 당한 참혹한 시절을 잊어서는 안된다. 설혹 우리가 평화를 갈구할지라도, 그러나 외부의 물리적 폭력에 맞서 승리할 수 없다면 무너지게 되는 이치다. 따라서 우리를 지킬 수 있는 힘과 역량이 내재되지 않고서는 평화도 그만큼 요원할 수밖에 없다.

강조하거니와, 우리 영토를 수호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 강구돼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우리가 제 아무리 평화를 위해 노력할지라도, 상대가 도발을 감행하게 되면 전쟁은 불가피하다. 만일 그것을 회피하고자 한다면, 거기엔 굴종이 따르거나 혹은 속국으로 전락되고 만다. 주권과 자유가 상실된 그것은 평화가 아닌 오욕과 수난이다.

때문에 전쟁 억지 차원의 국방력 강화는 반드시 요구되는 덕목이다. 중립국을 표방하고 있는 스위스 그리고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못한 국가들도 거의 예외없이 국방력 강화에 힘쓴다. 전쟁을 수행할 수밖에 없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게 됐을 때, 상대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안겨 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북한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그것을 탑재해 미국 본토까지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도 성공했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북한이 남한을 쑥대밭으로 만들 것이라며 선동을 일삼는 경우도 있다. 극도의 공포감을 조장하며 북한을 악마화하기에 여념이 없는 듯한 모습이다.

돌이켜 볼 때 인류 이래 핏줄보다 상위되는 개념은 없다.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또는 그 어떤 나라를 막론하고 그들이 민족의 이름보다 우월적 위치에 있지는 않다. 그런 맥락에서 북한을 대하고자 한다면 지나치게 낭만적인 것일까? 통일한국 이후 전개될 한반도 문제를 조망하며, 보다 큰 그림을 그릴 수는 없는 것일까? 물론 북한의 내장된 위협 또한 철저히 인식하는 가운데 말이다.

여기서 거듭 중국과 일본을 상기하게 된다. 우리에게는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요주의 국가들이다. 이는 통일한국 이후에도 사정은 다르지 않을 듯싶다. 한국의 지정학적 여건을 감안할 때, 우리와 언제든 위험한 관계에 처할 수 있다. 외교로만 풀리지 않는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동맹국인 미국만 쳐다본다고 만사능통이 되지 않는다.

그런지라 우리를 지킬 수 있는 분명한 카드가 반드시 마련돼 있어야 한다. 자위권 차원의 그것은 우리의 생존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와함께 민족적 통찰없이 그저 외세에 의존하려는 자세도 버려야 한다. 더욱이 그들의 첨병으로 이용되어서는 결단코 아니될 일이다. 분명한 점은, 우리는 더욱 강해져야 한다는 점이다. 평화통일의 노력을 어느 한순간도 놓아서는 안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 필자 : 정성태(시인 /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