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태 [칼럼]

그들의 이름은 부부... 이혼보다 치유 먼저 생각해야

시와 칼럼 2023. 5. 31. 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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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배경이 서로 다른 남녀가 만나 사랑을 하고 가정을 꾸린다. 아울러 소망을 함께 키워간다. 여기서 이 둘의 관계는 믿음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그것은 사회적 규범에 따른 인위적인 것만을 뜻하는 게 아니라, 보다 풍만하고 깨끗한 형태의 인간적 신뢰를 아우른다.

결혼은 진정한 의미의 성인이 됐음을 선포하는 행위이기도 하며, 동시에 생활인으로서 보다 책임 있는 자세를 요구 받기도 한다. 아울러 새로운 울타리 내의 행복을 향한 첫 여행길이기도 하다. 설혹 슬픔과 미움의 터널을 지나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결코 곁눈질하거나 포기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한국 사회도 날로 이혼율이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마치 이혼이 유행되는 풍속도를 보는 것만 같은 혼란에 빠지게 된다. 파경을 맞게 된 그 깊은 속사정이야 다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때로는 쉽게 이해되지 않고 또 용납하기 어려운 경우도 종종 접하게 된다. 물론 당사자들로서야 남의 속도 모른 채 왈가왈부한다고 항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기억할 일이다. 살다보면 매사 좋은 일만 생기는 것은 아니다. 장밋빛 그늘에 가린 가시도 함께 공존하고 있는 까닭이다. 특별히 주의해야 할 점은, 상대의 약점을 들추어서 깊은 상처를 준다거나 또는 ‘이혼해’ ‘너와는 못 살아’ 등과 같은 결정적인 말은 삼가하는 자제력을 갖춰야 한다.

한국 속담에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이 있다. 부정적인 언행이 지속되게 되면, 그 탁한 기운 대로 고스란히 귀결될 소지를 다분히 안게 된다. 이때 요구되는 덕목이 스스로를 우선해서 살펴보는 일이다. 그리고 인내하는 가운데 보다 낮은 목소리로 실마리를 풀어가는 지혜로움이다.

물론 무분별한 외도, 견디기 힘든 폭력성, 알콜 또는 마약 중독, 도박을 비롯한 사행성 중독, 성격 파탄 등과 같은 경우에는 불가피하게 이혼을 고려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역시 이혼에 앞서 상대의 치유를 먼저 생각하고 적극 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선결되어야 한다. 그들의 이름은 부부이기 때문이다.

* 필자 :  정성태(시인 /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