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태 [신작]

이별을 위한 변명

시와 칼럼 2022. 11. 13.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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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을 위한 변명


이제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하자.
더는 아무런 약속도 하지 않기로 하자.
너와 나누던 끝 모를 밀어와
그 단정한 믿음도 그만 지우기로 하자.

우리가 불 밝혀 세우던 순결한 고백이
여기 한낱 의문으로 환치되는 지금,
내 안의 걷잡을 수 없는 회한이 밀려든다.
더는 견디기 힘든 비루한 상황이
힘든 나를 더욱 힘들게 다그쳐 세운다.

너와 함께 했던 짧으나 긴 시간,
숱한 언약과 애틋함을 공유했다.
그러나 매번 고비마다 터져 나오는
알 수 없는 미묘한 단절의 연속 앞에서
홀로 무너지는 가슴을 쓸어안아야 했다.

이제 우리 사이에 캄캄히 놓인 그것을
한나절의 지루한 꿈이라 위로하자.
더는 너를 향한 애증의 파편도,
혹은 내게 남겨진 처참한 얼룩도
그 순박한 이름을 후벼파고 싶지는 않다.

만일 우리의 사랑이 운명되어진 것이라면
굳이 인연을 서두르지 않아도 좋을 일이다.
때가 되면 오고야마는 봄날의 숨결과 함께
서로의 가슴에 곱고 따사로이 물들어 오리니
지금은 다만 서로를 묻어두는 연습을 하자.


詩 정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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