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태 [칼럼]

문재인 정권은 실패했고, 진보는 몰락한 것일까?

시와 칼럼 2021. 1. 11. 22:23
728x90

전두환 신군부 출현과 함께 핏빛 낭자한 광주5.18항쟁이 일어났다. 그 처참했던 광주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억압당하는 공포사회는 여과없이 연장되고 말았다. 그러한 국가권력의 폭력성이 더할수록, 거기 자유와 평등을 향한 열망과 투쟁도 더욱 강렬하고 뜨거웠다. 이른바 86세대 전반을 지배하던 시대적 숙명이 되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과 기회 또한 열려 있던 시대였다.

그렇게 점철된 80년대, 누군가는 검붉은 꽃잎으로 죽어갔고, 거기 무명 용사들의 피눈물도 지천이었다. 이후 그것을 발판 삼은 86 운동권 출신이 정치무대 중심에 대거 등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시계의 추가 반세기를 향하는 오늘, 이제 그들은 한국정치의 중진으로 자리하고 있다. 금배지를 달았거나 더러는 각료로 임명돼 권세도 누릴만큼 누렸다. 그러나 그들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거기서 모두 멈추어 섰다.

군부독재에 항거하며 숨져간 사람, 또한 숱한 무명용사의 헌신에 비하면, 어쩌면 그들은 분수에 넘치는 호사일 수도 있다. 그런 그들이 권력에 깊이 취하고, 사익에 눈멀더니, 서민대중이 처한 극한 고통과 고단한 눈물은 도외시하고 말았다. 그들 자신이 기득권층으로 함몰되면서 시대와 역사적 책무를 짓밟은 채 사익 챙기기에 급급한 행태를 유감없이 보이고 말았다. 그러한 86들의 무능과 위선, 그 파렴치한 죄업이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러면서 그들은 선출된 권력임을 마치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른다. 그러나 그들 선출된 권력에게 법을 유린하고 비위를 일삼을 것을 허락한 유권자는 그 누구도 없을 듯싶다. 국회 180석을 차지한 막강 힘으로, 고작 자신들 연봉이나 인상하는 꼴을 바라지는 않았을 것이기에 그렇다. 국민 다수는 역병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극심한 생활고를 겪고 있는데, 자신들의 뱃속 채우는 일에는 재빨랐던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의 무능과 무책임은 지난 4년여의 기간을 통해 익히 목도하는 바와 같다. 그도 부족해 허위와 위선의 낯뜨거움마저 여과없이 대면해야 했다. 그럴 때마다 '뭐, 어쩔거냐'는 식의 대국민 협박성 언행으로 여겨지는 그런 추태마저 일삼았다. 심지어 문서위조는 별반 문제될 것이 아닌 것으로 치부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된 입장에서 갖는 모멸감은 참담함 그 자체로 각인되기에 결코 부족하지 않았다.

진중권 전 교수는 새해 벽두들어 "문재인 정권은 실패했고, 진보는 몰락했다"라는 주장을 폈다. 그러나 이를 달리 짚자면, 진보를 참칭한 가짜 진보세력의 실패와 몰락으로 규정하는 것이 보다 더 타당한 진단일 듯싶다. 따라서 대대적 객토를 통해 건강하고 합당한 인물로 교체되지 않고서는 한국사회 자체가 길을 잃은 채 표류하게 되는 절박한 상황에 이르렀다. 이대로가면 진보가 그 빛을 잃고 냉대의 대상으로 전락될 수도 있겠다는 심각한 위기상황 가운데 처해 있다. 다시말해 무늬와 패션만 걸쳐진 이른바 강남진보, 그들 입진보의 폐해에 다름 아닌 것이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진보정치의 지평을 열지 않고서는 결코 희망이 없다.

남북문제 또한 문재인 정권이 선거전에 활용하면서 압승을 거두었다. 그런 이후 개성공단을 폐쇄했던 박근혜 정권 때로 급속히 퇴보해 있는 상태다. 그런가하면 주택을 다량 보유한 부동산 부자들에게 종부세 혜택까지 안겨준 탓에 아파트 매입에 더욱 마구잡이로 나서도록 했다. 그로인해 무주택자들이 겪는 주거문제는 극심한 고통과 불안 가운데 내몰려졌다.

아울러 검찰의 증권범죄 전담 기구인 합수단을 해체하면서, 그와 관련된 범죄가 나날이 기승을 부리며 대담해지는 추세에 있다. 검찰수사 자체를 무력화시킨 집권세력의 합수단 해체, 도대체 누구를 위해 그랬던 것인지 적잖이 의문스런 지점이 아닐 수 없다. 그런 가운데 민중의 몽둥이 비난을 받아왔던 경찰에게는 안전장치 강화없이 더욱 막강한 권한행사를 부여했다. 향후 예견되는 경찰의 부패와 타락을 어떻게 통제하고 제어할 것인지 무척 난감하지 않을 수 없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도 누더기가 된 채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동일한 원인이거나 또는 동시에 2명 이상의 사망자 발생이 아니면 중대산업재해에 해당되지 않게 됐다. 이를테면 태안화력발전소, 구의역 사망 사건 등과 같이 1명만 사망하게 된 경우엔 관련법을 적용할 수 없게 만들어 버렸다. 그마저 50명 미만 사업장은 전면 유예됐다. 더욱이 인과관계 추정 및 발주처가 책임범위에서 제외됐다는 점은, 법률의 실효성 측면에서 사실상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산업재해 방지에 적극 나서야 할 재벌에게 여기저기 빠져나갈 길을 활짝 열어준, 그야말로 재벌보호법이 된 셈이다.

이런 가운데 동국제강 포항공장에서는 새벽시간에 식자재를 배송하던 50대 가장이, 화물용 리프트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영하의 날씨에 다섯 시간 이상 사고 현장에 방치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살기 위해 혹한의 추위를 무릅쓰고 나선 새벽길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이 되고 말았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노동자가 끔찍한 참변을 당해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이를 용인하는 정치 집단을 어찌 진보라고 이름할 수 있을까?

시인 정성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