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태 [칼럼]

집회를 통해 본 문재인 대표의 기만적 작태/정성태

시와 칼럼 2015. 12. 6.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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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집회를 열고 시위를 벌이는가? 이에 대한 철학적인 물음이 전제되어야 한다. 아니다, 현실적 갈급함에 대한 처절하고 근원적인 몸부림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상황을 반전시킬 동인이 될 수 있겠기에 그렇다.

 

12월 5일, 2차 민중총궐기 집회가 광화문 및 백남기 선생이 생사를 다투며 입원해 있는 서울대병원 주변 등지에서 열렸다. 평화집회 운운하며 도하 언론은 물론이고 명색이 거대 야당이라는 새정련도 자화자찬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그런데 과연 그래도 되는 것일까? 목적 달성을 위한 실효성 측면에서 그것은 박근혜 정권에게 사실상의 백기 투항을 뜻하는 것이기에 씁쓸한 마음 금할 길 없다.

 

강추위를 뚫고 현장에 몰려든 직접 이해 당사자인 노동자, 농민은 물론이고 평범한 일반 시민들까지 대거 합세해 그들은 왜 거기 모여야만 했을까? 그것은 명확하다. 자신들이 처한 절박한 사정을 알리고 또 그것을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의 소산이고 그러한 열망의 표출이다. 거기에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 또한 굳게 담겨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국회에 제대로 된 야당이 있었다면, 과연 엄동설한 집회가 필요했을까? 물론 야당이 사력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역부족인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문재인 대표는 국회 차원에서 모든 역량을 결집 시켰던가? 이에 대해 극히 회의적인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불행하게도 이러한 일련의 문제와 관련해,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박근혜 정권 및 새누리당과 협력관계를 의심케하는 정책적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는 불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주요 현안이 되고 있는 노동개악 저지, 농어민 생존권 보장 등에 있어서 여야가 한통속인 듯한 인상을 안겨주기에 결코 부족하지 않았다. 심지어 멀쩡한 사람마저 언제든 테러범으로 몰 수 있는 테러방지법까지 매우 사이 좋게 합의해줬다.

 

그러다보니 새정련 문재인 대표에 대한 야권 성향 유권층의 비난이 연일 쇄도하게 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일 테다. 바로 그것을 의식한 듯, 평화집회라는 미명 하에 생색내기용 집회 참가에 이르렀다. 함께 참여한 일단의 의원들 손에는 장미꽃도 한 송이씩 들려 있었다. 그리고 고작 자신들이 할 일을 다했다는 식의 사진찍기 행사가 대미였다. 그걸 끝으로 이내 허망한 퇴장으로 마무리하고 말았다.

 

그야말로 눈가리고 아웅하는 기만적 작태가 아니고 무엇이랴. 그러한 점이 오늘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재인 대표 체제의 어용 야당 새정련이 처해 있는 명징한 현주소라 아니할 수 없다. 바로 이러한 거대 야당의 야합을 끝장내지 않는한 작금의 치욕스런 시대상은 더욱 심화될 뿐이다. 신당에 대한 기대심리가 바로 이로부터 연유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대세로 굳어지고 있기도 하다. 

 

시인 정성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