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태 [칼럼]

정동영-천정배, 선명야당 재건 시대적 책무/정성태

시와 칼럼 2015. 7. 9.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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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가장 안타깝고 또 죄스러운 무게가 있다면, 이는 필경 부모된 마음과 자식된 도리일 듯싶다. 무릇 정치가 있어야 할 본연의 자리 또한 그러하리라 여긴다. 국민을 대하는 자세가 부모된 마음, 혹은 자식된 도리여야 한다는 뜻이다. 정치의 본령이 고난 받는 민중에 대한 헌신이어야 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으리라 여긴다. 그런데 이러한 소명 의식없이 그저 정치 권력을 자신의 사적 욕망을 충족하기 위한 공중 부양 엘레베이터 쯤으로 여기려는 자들이 있다면 이는 철저히 배격할 수 있어야 한다.

 

세계 어느 나라의 역사를 막론하고, 정치권력이 자신의 치부 쌓는 일로 치환될 때 그 국가는 쇠락하고 또 국민은 불행에 처하게 된다. 비근한 예로 지난 이명박 정권 5년과 현재 박근혜 정권을 통해서 목도하게 되는 극명한 우리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와 맞물려 자신의 보신과 안위만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문재인 대표 체제의 새정치민주연합 또한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다. 그만큼 한국 정치가 국민에게 희망이 되지 못한 채 오히려 크나큰 근심거리로 작동하고 있음을 따갑게 질책하지 않을 수 없다.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이야 본디 재벌과 슈퍼부자 도우미 역할에 충실한 집단임을 자처하고 있으니 차라리 그 어떠한 기대조차 없다. 그렇다면 거대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라도 서민과 약자의 곁에 충실히 서야 옳은 일일 테다. 그래서 집권세력의 반서민적이고 반인륜적인 행태에 대해 제동을 걸고 또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세상이 보다 변화되기를 바라는 제 세력의 한결 같은 소망일 것이다. 또 그러한 임무를 잘 수행하라고 야권 지지층에서 새정련을 믿고 기꺼이 표를 줬을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전혀 그렇지 못하고 있다. 새정련 내의 친노, 비노 가리지 않고 시대적 소명과는 상당히 괴리되어 있다. 다만 자신들의 밥그릇과 관련된 행태는 마치 사냥감 앞에서 으르렁대는 하이에나 떼를 방불케 한다. 눈앞의 먹잇감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은 매우 치열해도 정작 애민의 자세는 도무지 찾아 볼 수가 없다. 오히려 집권세력 눈치 보기에만 급급한 것도 모자라 속된 표현으로 질질 끌려 다니기 바쁜 모습이다. 도대체 무엇이 거대 야당을 한없이 무기력하게 짓누르는 것인지 참담한 심경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새정련 내 최대 계파인 친노 수장 문재인 대표의 표리부동한 행각이야 비단 어제 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원내 과반 이상을 점하며 기세등등하던 지난 노무현 정권을 몰락시킨 핵심 세력이 친노 진영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그 중심에 청와대 왕실장으로 군림하던 문재인 대표가 자리하고 있다. 입술로는 허구한 날 개혁타령이었으나, 실상 내용에 있어서는 완전히 이율배반적인 행태를 취했음이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오죽했으면 인구 사이에서 ‘개혁 피로 증후군’이란 말까지 유행처럼 나돌았겠는가.

 

그렇다고 문재인 대표를 비롯한 새정련 내의 친노세력만 제거되면 야권이 제 구실을 잘하게 될 것으로 착각하는 이들이 있다면 이는 큰 오판이다. 냉철한 안목으로 사안을 들여다보기 보다는 감정적 작용이 보다 크게 지배하고 있는 까닭이다. 물론 친노세력의 패권적 행태로 인한 폐해가 막심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기실 따로 있다. 바로 자신들의 주된 지지 기반인 서민과 사회적 약자의 욕구에 전혀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측면에서 비노세력 또한 극명한 한계를 안고 있기는 매양 다르지 않다.

 

국가 권력에 의한 구조적 불평등에서 기인하는 불균형의 심화는 사회불안의 핵심 요체로 자리하고 있다. 상대적 박탈감에서 파생되는 존재감 상실의 위기는 국가 발전의 동력을 저해하는 주된 요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정치권 전반이 이에 대한 해결 의지를 갖고 있지 않다는 데 그 심각성이 더한다. 전체 국민 가운데 70%를 차지하고 있는 서민과 사회적 약자의 피눈물과 호곡에 대해 귀 기울이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정치 집단이 전무한 상태라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국가적 비극이 잠재돼 있다.

 

이에 대한 하나의 명징한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야권 재편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날로 거세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야권의 최대 거점이라 할 수 있 는 호남 민중들 사이에서 더욱 뜨겁게 일고 있다. 특히 광주 지역의 이러한 욕구 분출은 문재인 대표 체제의 새정련이 이미 임계 상황을 넘어선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그간 어용적 행태로 일관해 온 새정련과 문재인 대표로서는 자업자득인 셈이다. 집권 세력의 어긋난 행태에 대해, 시민 세력이 대거 촛불을 들고 광장과 거리에 나섰음에도 정작 새정련은 거기 없었다.

 

바로 그 지점에 신당이 자리해야 한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시대적 요청과 그러한 대의를 모아 야권이 재편되어야 하는 당위가 되고 있다. 이는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거대한 흐름 가운데 놓여 있다. 이의 성공을 위해서는 참여하는 각인의 자세가 우선 중요하다. 정치를 왜 하려는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자기 철학이 정립되어 있어야 한다. 그것은 사적 이익으로서의 권력이 아니라, 국가적 공의를 바로 세우고 아울러 고난에 처한 다수 국민의 삶을 안정시키겠다는 철저한 자기 무장에 근원을 둔 것이어야 한다.

 

그럴 수 있을 때라야만 야권 지지층으로부터 인정받게 되는 것이고 또 환영 받을 수 있게 된다. 도탄에 빠진 국민 일반의 피눈물 흘리는 생활상과 유리된 정치 행태로는 결단코 성공할 수 없음을 뼈에 새길 수 있어야 한다. 조직 구성원 모두가 속속들이 낮은 곳으로 임하며, 그러한 삶의 현장을 진솔한 자세로 살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거기 지치고 상한 심신을 어루만지며 치유할 수 있는 정치가 바로 야권발 신당이 지향해야 할 한결같은 좌표다. 서민과 사회적 약자를 위하는 낮은 곳으로 스미는 정치가 바로 그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내부 사정을 고려할 때 야권발 정계 개편이 사실상 초읽기에 들어가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거듭 강조하지만 이러한 배경에는 새정련, 특히 문재인 대표 및 친노세력 스스로가 초래한 자업자득의 성격이 짙다. 그간 폐쇄적 정당 운영은 물론이고 지속된 우향우 행보에 따른 호남 민심과 민주개혁진보적 성향의 전통적인 야권 지지층이 대거 이탈하면서 빚어지는 양상이다. 이는 다시 말해 어용 야당 취급 받고 있는 문재인 대표 체제의 새정련을 갈아엎고 선명 야당을 재건하라는 들끓는 요구이기도 하다.

이러한 현상은 민주와 인권의 메카라 할 수 있는 광주를 기점으로, 차츰 호남 전역으로 깊고 광범위하게 퍼지는 추세에 놓여 있다. 아울러 충청 및 수도권으로까지 확산되는 기류 또한 포착되고 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우리 사회의 공통된 위기의식을 방증하듯 작금 인구 사이에 유행되는 말 가운데 “국회에 제1여당인 새누리당과 제2여당인 새정련만 존재할 뿐 정작 야당은 실종되고 없다”는 비아냥거림과 거센 질타가 그것이다. 바로 이로부터 신당이 있어야 할 명확한 자리와 그 의의가 마련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그것을 이끌 중심 인물로 정동영 전 장관과 천정배 의원이 유력하게 지목되는 상황이다. 이는 호남 출신의 여타 정치인들과는 달리 정동영, 천정배 두 사람이 갖고 있는 차별화된 정치적 신념과 그러한 행보가 높은 평점을 받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아울러 전북을 비롯한 광주와 전남지역에서 두루 신망을 얻고 있다는 강점도 지니고 있다. 이들이 전면에 나서 호남 정치 자강은 물론이고 서민과 사회적 약자를 위한 야당 본연의 정치를 펼쳐 주리라는 기대 심리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파악된다.

여기에는 또 다른 요인도 작동하고 있다. 특별히 이들은 호남 출신의 유력한 야권 정치인임에도 불구하고, 그간 영남 출신 문재인 대표를 비롯한 친노세력에 의해 철저히 배제되고 또 핍박 받고 있다는 인식도 크게 한 몫 하는 것으로 읽히고 있다. 즉, “정동영, 천정배가 저들에 비해 도대체 무엇이 부족해서 걸핏하면 따돌림 받아야 되느냐”는 호남인의 자존감과 연계된 측면도 강하다. 정치적 신념의 문제와 함께 정서적인 측면 또한 문재인 대표와 친노세력에 대한 극단적 반감으로 나타나고 있는 분명한 현주소라 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복합적 요인이 맞물리면서 야권발 신당 요구가 강력하게 대두되고 있다. 그러나 한편 선결되어야 할 점도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조직 구성원 간의 작은 차이를 극복하고 상호 유기적 소통을 이루어야 하는 점 또한 이론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이는 조직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관건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은 서민과 사회적 약자를 위한 것에 있음은 굳이 재론이 필요치 않다. 이를 위한 거대한 하모니를 이루지 않고서는 또 다른 실패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점 또한 깊이 새길 수 있어야 한다.

거기에는 정동영, 천정배 두 정치인을 정점으로 새정련 탈당파 중 개혁적 인사를 비롯해 대중적 진보세력을 포함한 광범위한 자원이 포함될 수 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대의에 동의하는 세력으로, 전체 국민의 70%를 담당하고 있는 서민과 사회적 약자를 위하는 정치에 그 맥을 두는 일이다. 이의 성공적 임무 수행을 위해서는 아무래도 대중적 인지도 뿐만 아니라, 정치적 소신과 개혁적 측면에서 평점이 높은 정동영, 천정배 두 사람이 주도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보다 큰 설득력을 획득할 수 있다. 이는 불필요한 헤게모니 다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호남을 기점으로 민주개혁진보 진영 사이에서 노도처럼 일고 있는 야당다운 야당의 탄생에 대한 열망이 그것이다. 이의 성공을 위해서는 그것을 추동할 수 있는 정동영, 천정배 두 정치인의 굳건한 동맹과 강인한 실천적 의지가 각별히 요구된다. 서민과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치를 강화하겠다는 핵심 키워드를 그들이 잘 담고 있어서다. 이는 거국적 관점에서 볼 때, 국가의 존망과 미래가 걸린 문제이기도 하다. 날로 심화되는 불평등 구조를 혁파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시대정신이 바로 거기에 있다.

 

이는 다시 말해 새정련 문재인 대표의 지속된 우향우 행보와는 확연히 다른 차별적 정치지형을 그려가겠다는 분명한 목적성이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우리사회의 급박함에 응답할 수 있는 애민의 정치를 뜻한다. 즉, ‘서민과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치 그리고 민족의 공생공영 통한 평화통일의 대의에 동참할 수 있는 자원이라면 누구에게나 열린 정치다. 여기에는 굳이 새정련 자원이어야만 할 필요도 전혀 없다. 새로 쓰는 야당사가 이제 그들 두 사람의 행보에 따라 운명될 수 있는 막중한 시기다. 이점을 하시라도 잊어서는 아니 될 일이다.

 

시인 정성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