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태 [칼럼]

김대중 '통일론'의 현재성과 평화체제/정성태

시와 칼럼 2015. 7. 10.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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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은 대박이다”, 박근혜 정권 들어 뜬금없이 터져 나온 말이다. 그것도 대통령 입을 통해 직접 흘러나왔다. 그간 통일을 위해 노력하고 헌신하는 이들을 향해 온갖 형태로 폄훼를 일삼고 고통을 안겨줬던 직접 당사자가 행한 말이기에 적잖이 생뚱맞게 들린 측면이 크다. 어느 집에서 난데없이 벌어지는 무당 굿거리 소음쯤으로 여기는 국민이 상당했으리라 여긴다.

 

물론 우리 민족 모두에게 통일은 대박이 되어야 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이론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통일은 추상적이거나 또는 관념으로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더욱이 언어유희의 대상으로 전락되어서는 마른하늘에 벼락 맞을 일이 따로 없을 것이다. 통일에 다다르기 위한 지난한 노력과 그러한 과정 없이는 통일이 자칫 재앙이 될 수도 있겠기에 그렇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해당 발언은 극도의 자기모순을 안고 있다. 왜냐하면 통일을 위해 선행돼야 할 일은 전무한 채 오히려 남북한 간의 갈등과 적대감을 조장하기에 여념이 없는 까닭이다. 남북문제를 다분히 정략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이율배반적이다. 어쩌면 그것은 남북문제에 대한 박 대통령 스스로의 박약한 철학을 여실히 드러낸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리고 ‘통일은 대박이다‘의 말에 내장된 또 다른 불순한 혐의점이다. 그게 만일 북한 체제의 붕괴를 노린 점령군 식 통일을 염두에 둔 것이라면 그야말로 씻기 어려운 망언에 다름 아니다. 더욱이 북한 지하자원에 대한 남한 대기업의 탐욕을 북돋기 위한 발상에서 기인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통일은 대박이 아닌, 걷잡기 어려운 재앙이 될 개연성이 높다. 자칫 통일은 쪽박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오늘 날 남북한 사이에 가로 놓인 것은 비단 38선만이 아니다. 서로를 향해 겨누고 있는 총구만도 아니다. 대량 살상과 파괴를 수행하는 무시무시한 미사일만도 아니다. 물론 그러한 점도 남북한 국민 모두에게 깊은 우려와 불안 그리고 경계의 대상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보다 오히려 더 어렵고 힘든 장벽이 놓여 있다. 바로 남북한 상호 단절된 상태로 진행된 체제의 이질성이다.

 

여기에는 경제를 대하는 상반된 인식과 부의 격차가 우선 대두된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힘든 장벽이 정서적인 차이다. 이는 금전적으로 쉽사리 환산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가장 치명적인 요인으로 작동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요될 것임은 너무도 자명하다. 지난 70여 년 가량 쌓여온 서로 다른 생태계를 극복해야 하는 일이기에 그렇다.

 

따라서 통일은 결코 낭만적인 것이 될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은 대박이다‘는 발언이 그래서 철부지의 망동쯤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통일을 이루어가기 위해서는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산적한 문제에 대한 부단한 노력과 끈질긴 인내가 요구된다. 아울러 북한을 주적으로 여기고서는 진척될 수 일이 그리 많지 없다. 북한을 통일의 직접 당사자로 인식할 수 있을 때 문제의 실마리가 풀리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적 교류를 지속해서 확대 추진할 수 있어야 한다. 문화 공연 및 스포츠 교류를 우선 들 수 있다. 금강산 관광 재개는 물론이고 휴전선을 남북 합작의 대규모 평화 생태 공원으로 적극 조성해 운영할 필요가 있다. 세계적인 관광 자원이 될 수 있도록 면밀한 계획을 수립할 수 있어야 한다. 북한 당국으로서도 적잖이 큰 수입원이 될 수 있기에 충분히 설득하면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으리라 여긴다.

 

아울러 경제 협력이다. 북한의 경제적 자립 없이는 그로인한 통일 후의 후유증이 결코 간단치 않을 수 있다. 따라서 현재 가동되고 있는 개성공단 뿐만 아니라, 북한 전역으로 공단 건립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북한산 공산품에 대해 일정 비율을 남한 공공기관에서 의무적으로 구매하는 방안도 법제화 될 수 있다면 보다 좋을 일이다. 그리고 이것은 미래 세대를 위한 긴요한 투자임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남한 당국으로서도 북한의 절대적 협력이 요구되는 점이 있다. 당장 북한 전역으로의 육로 개통은 어렵다 하더라도, 철길을 통한 중국 및 러시아 그리고 유럽으로의 진출은 우리 경제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크다. 이는 비단 물류의 이동만이 아닌, 문명의 이동까지를 함께 뜻한다. 특히 러시아에서 공급되는 가스 및 송유관 연결 등에 있어서 반드시 북한을 경유해야만 하는 현실적 문제도 대두된다.

 

거듭 김대중 정부에 의해 추진됐던 햇볕정책의 당위가 새삼 주목되지 않을 수 없다. 그에 대한 주요 골자는, 안보를 굳건히 하는 가운데 북한과의 평화정착과 상호교류 및 협력을 통한 이익의 극대화에 있다.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은 차치하고라도, 새정치민주연합의 문재인 대표로는 결코 범접할 수 없는 철학적 사유와 현실적 인식에 깊게 뿌리를 두고 있는 견고함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남북한 모두 만만치 않은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 더욱이 한국전쟁을 통해 서로가 서로에게 총을 쏘아대며 살육전을 펼친 바도 있다. 그로인한 양측의 지속된 적대적 교육과 사상 검증은 사실상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통일은 그만큼 지난한 여정이 될 수밖에 없다. 북한의 열악한 인권 현황도 그렇거니와 남한 당국 또한 걸핏하면 종북타령으로 내모는 실정이 이를 잘 반증한다.

 

그와 맞물려 통일 이후에 예견되는 여러 문제점 또한 실로 가볍지 않다. 서로 다른 두 체제에 의해 길들여지고 익숙해진 간극 때문이다. 따라서 이를 최소화 할 수 있는 선결 과제가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바로 그 대안이 햇볕정책에 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설혹 남북 당사자 모두에게 충분한 만족을 안겨 주지는 못할지라도 길은 거기에 있다. 그게 아니라면 공멸을 자초하게 될 전쟁을 불사해야 한다.

 

우선적으로 남북한 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편차와 이질감을 점진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이 절실히 요구된다. 특히 정서적 측면은 더욱 그렇다. 거듭 강조하지만 인적, 물적 교류를 대대적으로 활성화해야 하는 이유다. 더불어 북한의 경제 성장을 통한 북한 주민의 생활수준 향상이다. 북한 당국 또한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가운데 개혁 개방의 길로 꾸준히 물꼬를 터야 한다.

 

그럼에도 미국과 일본의 악의적 방해가 집요할 것으로 예견된다. 중국 또한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결코 신뢰할 수준은 못된다. 이것이 국제사회의 이해관계에 얽힌 숨길 수 없는 이기적 국가주의다. 따라서 그 무엇보다도 남북 당사자 간의 긴밀하고 적극적인 협력이 긴요하게 요구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시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바로 자주적 관점의 굳건한 신뢰 형성인 것이다.

 

국제무대의 스포츠 대회에 남북 단일팀 출전은 민족 공동체로서의 정서적 공감대를 극대화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바람직하다. 설혹 서로 따로 출전하더라도, 북한이 다른 나라와 경기를 치를 때는 남한 응원단이 북한을 응원하고, 마찬가지로 남한이 다른 나라와 경기를 치를 때는 북한 응원단이 남한을 응원하는 모습을 통해 우리는 하나라는 의식을 대내외적으로 고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유엔이 지난 2014년 11월 18일, 유엔총회 제3위원회를 통해 북한 인권 상황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넘기고 또 책임자 처벌을 권고하는 내용의 '북한 인권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는 다시 말해, 국제형사재판소를 통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를 비롯한 핵심 권력층을 직접 처벌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물론 미국과 일본의 주도로 이루어진 일이다. 그에 더해 박근혜 정권 또한 적극적으로 일조했다. 우리 국회 역시 새누리당 주도로 북한인권법 제정을 가시권에 두고 있다. 명색이 제1야당이라는 문재인 새정련 대표 또한 새누리당과 별반 다르지 않은 입장이다. 이는 북한 당국을 극도로 자극하는 일로서, 남북 관계가 나락으로 내몰리는 지경에 처할 수 있음을 뜻한다.

 

이를 방증하듯 북한 당국의 태도가 그 어느 때보다 강경했다. "우리 군대와 인민은 이미 선포한 대로 극악무도한 대조선 인권 광란극을 무자비하게 짓뭉개버리기 위한 미증유의 초강경 대응전에 진입하게 될 것이다.", "핵전쟁이 터지면 청와대가 안전하리라 생각하는가?"라는 논평 등이 그것이다. 통일의 직접 당사자인 북한 당국을 자극해서 우리가 얻을 게 무엇인지 되묻고 싶은 대목이다.

 

그보다는 오히려 북한 스스로가 보다 책임 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외교적 무대에 등장할 수 있도록 돕고 또 유도하는 길이다. 그와 맞물려 남북 신뢰 구축과 인적 교류 및 경제협력 강화다. 그간 북한 당국의 태도에서도 상당 부분 그러한 점이 읽혔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난데없이 유엔마저 앞장 서 북한을 더욱 봉쇄하겠다는 발상에 대해 납득되지도 않을뿐더러 그 저의 또한 매우 의심스럽게 읽힌다.

 

그럼에도 아직 기회는 남아 있다. '북한 인권결의안'이 유엔 안보리에 갔을 때 러시아와 중국이 반대할 가능성이 매우 크게 관측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 유엔이 미국의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할 때 결코 확신할 수 있는 여건만도 아니다. 따라서 그 무엇보다 가장 앞서야 하는 문제는, 남북문제가 결코 남의 일이 아닌 바로 우리의 생사와 미래가 달려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김대중 전 대통령의 ‘3단계 통일론’을 재론하지 않을 수 없다. DJ가 지난 70년대부터 주장한 자주, 평화, 민주의 대원칙에 입각한 철학적 기반과 현실 인식이 잘 담겨 있다. ‘통일은 대박이다’는 식의 탐욕적이고 지배적인 통일론과는 판이하게 다른 차원이다. 이를 오늘의 현실에서 상호 어떻게 결부하고 실행해 낼 수 있느냐 하는 점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첫째, 자주의 원칙이다. 통일 문제를 외세에 의존하지 않고 민족 자결의 원칙에 입각해 해결하자는 것이다. 둘째, 평화의 원칙이다. 통일을 위시한 민족의 제반 문제를 다룸에 있어 무력에 의하지 않고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하자는 것이다. 셋째, 민주의 원칙이다. 통일의 전 과정을 민주적 절차에 따라 민족적 합의를 도출하는 가운데 진행하자는 것이다.

 

이를 토대로 제시된 통일의 첫 단계는 남북연합 구성(1민족, 2국가, 2체제, 2독립정부)이다. 여기서는 2개의 남북한 독립국가가 서로 다른 체제를 그대로 유지한 채 국가연합을 형성하는 것이다. 통일 과정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것으로, 남북은 상호 화해 협력과 공생 공영을 추구하는 가운데 민족의 동질성 회복을 획득하는데 그 의의와 목적이 있다.

 

두 번째 단계는 연방정부 구성(1민족, 1국가, 1체제, 2지역자치정부)이다. 연방정부는 외교ㆍ국방과 주요 내정을 중앙정부가 관장한다. 그 밖의 내정은 2개의 지역자치정부가 담당하게 된다. 아울러 통일헌법에 따라 연방대통령을 선출하고 연방의회를 구성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는 북한의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설 방안’(이하 고려민주연방제)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형태다.

 

마지막 단계는 완전한 통일단계 구성(1민족, 1국가, 1체제, 1중앙정부)이다. 중앙집권제 또는 세분화된 여러 개의 지역자치정부를 포함하는 미국이나 독일식 연방제를 채택하는 것으로서, 통일국가의 이념과 체제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있다. 그러나 여기서 지칭하는 시장경제는 결코 시장 만능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제반 불평등 구조를 타파하는 가운데 사회복지에 방점을 둔 것이다.

 

DJ의 ‘3단계 통일론’은 남북한 간의 화해 협력을 촉진하는 제도적 장치로서, 그 첫 단계인 남북연합은 통일의 물꼬를 트는 매우 중요한 일이자 필수 조건이다. 이를 위해서는 남북한 당국의 정치적 결단이 급선무다. 그런 전제 하에서 국제사회의 여건이 조성된다면 언제라도 가능한 일이 될 수 있다. 문제는 남북 당사자 모두 남북문제를 정치적으로 악용함으로서 그 폐해의 심각성이 자리한다.

 

남북연합은 남과 북이 현존상태 그대로 상이한 이념과 이질적인 두 정부 체제를 유지하는 가운데 긴밀한 협력 기구를 형성하자는 것이다. 분단 상황을 평화적으로 관리하는 한편 통합과정을 효율적으로 이끌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의미한다. 이는 분단 구조의 영구화를 지향하는 사탕발림이 아니라, 남북 공히 통일 목적의 특수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의지의 소산인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결국 햇볕정책으로 돌아가야 한다. 남북한 간의 화해 협력의 성숙과 공생 공영을 통해 남북연합으로 자연스레 이행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경제, 외교, 사회, 문화 등 남북한 간의 상호 의존성이 제고됨으로써 자주적, 평화적, 민주적 통일로 향하는 하부구조적 기반이 조성될 수 있기에 그렇다. 그런 기틀 하에서 민족의 동질성 회복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 이를 통일을 향한 굳건한 반석으로 승화시킬 수 있을 때 통일은 손에 잡히는 명제가 된다.

 

다시금 강조하지만, 남북한은 지난 70여 년 가량 이질화되어 왔다. 따라서 남북한 주민의 일상생활 영역은 물론이고 가치관에 이르기까지 그에 따른 간극을 완화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반 조성이 그 무엇보다 우선 요구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 체제의 특수성과 북한 주민의 자존을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수십 년 전에 정립하고 다듬어 온 '3단계 통일론'과 대통령으로서 실행한 '햇볕정책'은 그것의 최후 보루이자 최선의 방안으로서 존재하는 당위를 지닌다 할 것이다. 따라서 요즘 다시 논의되고 있는 '1953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 문제'도 이를 기본으로 해야 할 것임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 본 게시물은 월간 [아시아 문화] 7월호에도 게재했음을 밝힙니다.

 

시인 정성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