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태 [칼럼]

정동영, 그는 왼쪽일까? 상식일까?/정성태

시와 칼럼 2015. 5. 9. 09:50
728x90

정동영 전 장관에게 중도를 표방하라고 부추기는 이들이 더러 있다. 그가 왼쪽으로 너무 치우쳐 있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새정련 소속 정치인 가운데 일부가 그와 함께 하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끼거나 또는 싫어한다는 것이다. 일각에서 나오고 있는 이런 주장이 만일 사실이라면 새정련은 더더욱 빨리 문 닫아야 할 철면피 집단임이 분명하다.

사실 새정련의 이러한 모습은 결코 새삼스럽지 않다. 야권 지지층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채 몰락해 있는 근본 원인이 새정련과 문재인 대표의 보수화에 있음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중도타령을 주창하는 이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일까? 이들이 처한 인식의 틀이 그 얼마나 심각하게 굴절되고 또 쇠락되어 있는지를 극명히 들여다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단언하지만 정동영은 왼쪽이 아니다. 그저 우리사회의 상식을 그가 대언하고 있을 뿐이다. 국민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서민과 사회적 약자의 호곡과 피눈물을 끌어안고 잠든 세상을 향해 소리쳐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그런 그에게 중도를 강요하는 이들은 필경 판단이 혼미하거나 혹은 정동영 전 장관을 죽이기 위한 간교한 작태로 이해될 뿐이다.

바로 새정련의 그러한 한심한 작태 때문에 130석이나 되는 거대 야당이 어용 취급 받으며 성난 민중의 돌팔매를 맞고 있는 것이다. 중도타령 하기 좋아하는 이들의 관심사는 고난에 처한 다수 국민의 삶의 안정에는 별반 시선 두지 않는다. 모든 초점이 권력에만 귀속되고 있으니 시대정신을 정확히 읽어내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찌 이들을 믿고 대의를 도모할 수 있을지 참담한 생각이다.

바라거니와, 현상에 대한 성찰과 안목을 더 깊게 갖출 수 있어야 한다. 배부른 자들이 현혹하는 왜곡된 논리와 거짓된 주장에 그대로 경도될 일이 아니다. 거듭 아래로 스미는 물의 이치를 깨달아 이를 실천할 수 있을 때 힘 있는 정치도 가능해진다. 지표 밑으로 수맥이 있으면 설혹 가물어도 수목이 죽지 않고 버틸 수 있는 힘이 된다. 역으로 제 아무리 화려한 꽃일지라도, 주된 지지층의 정서와 유리되고서는 이내 시들고 만다.

전체 국민 가운데 70% 가량이 처한 간난의 삶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정치 지도자, 그러한 정당의 모습을 갖출 수 있을 때 야당이 야당으로서 존재 가치가 있는 것이다. 아울러 그 지지층으로부터 신뢰와 사랑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래야 그 힘을 바탕으로 제대로 된 정치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옳은 것인지 스스로를 깨우칠 수 있는 계기로 삼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시인 정성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