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태 [칼럼]

종교인 과세, 반대할 사안 못돼/정성태

시와 칼럼 2014. 12. 4.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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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약 성서의 많은 부분을 저술하고 또 예수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고행과 고난을 주저하지 않았던 사도 바울이 그의 생활을 위해 따로 월급을 받았다는 기록은 접한 바 없다. 개종 전 바울(사울)의 직업은 율법 학자였으며 또 형의 집행을 명령하는 사람이었다. 제정일치 사회였음을 고려할 때, 오늘날의 검사와 판사를 겸하는 고위 관료였던 셈이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 사건을 통해 회심한 이후, 그는 천막을 지으며 자신의 생계 수단을 삼았다. 아울러 선교 사역까지 감당했다.

 

최근 종교인에 대한 과세 문제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사실 해묵은 논란이지만 그간 종교계의 반발, 특히 적잖은 개신교계의 반발에 의해 계속 미뤄져왔던 사안이기도 하다. 이는 OECD 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우리만 비과세 수혜를 주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그러나 이 또한 2013년 11월, 시행령을 통해 기타소득 가운데 사례금으로 이미 규정하고 있어서 향후 납세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물론 그 훨씬 이전에도 과세 방침을 밝힌 경우가 몇 차례 있었으나, 그 때마다 종교계의 반발과 또 표를 의식한 역대 정부 및 정치권이 이를 유야무야 여겼을 뿐이다. 그러던 것을 종교인 소득으로 그 명칭을 수정해 자진 납세토록 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생각해 볼 일이다. 가령 군에 입대해야 할 어떤 사람이 그가 종교를 갖고 있다는 이유로 인해 병역 의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듯, 납세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고 또 집행되어져야 할 문제다. 특히 고소득 종교인의 경우에는 더더욱 이론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특별히 대형 종교 시설과 관련해 온갖 비리와 추문이 끊이지 않고 있음을 감안할 때, 자신의 소득에 대해 비과세 혜택을 누리겠다는 발상은 매우 몰염치한 처사에 불과하다. 최소한의 염치마저 내팽개친 작태라 아니할 수 없다.

 

만일 종교 영역의 신성 때문에 납세를 거부하는 것이라면, 혹여 그렇게 강변한다면 매우 저급한 단견으로 논리 박약에 해당된다. 왜냐하면 그 자신이 받는 금품 자체가 세속의 온갖 잡다한 피에 젖은 돈일 수 있기에 우선 그렇다. 아울러 그러한 돈으로 자신의 영달만을 꾀하겠다는 생각을 담고 있으니 애초 그 검은 속내를 가리기 위한 한낱 비루한 수사에 불과할 뿐이다. 그리고 종교 활동으로 인해 발생한 자신의 소득에 대해 세금을 내기 싫은 경우에는 무급 종교단체 봉사자로 활동하면 되는 일이기도 하다.

 

다른 한편 자신의 종교적 신념 때문에 병역을 극구 원치 않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실제 그러한 일이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경우에는 대체 복무를 통해 병역을 이행하는 사람과의 형평성을 맞추면 되는 일이다. 개인의 그러한 점을 국가 권력이 일방적으로 강제한다는 것 자체로 그에게는 죽음과 같은 일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득에 대한 세금 문제는 다르다. 달라도 확연히 다른 영역이다. 이에 대한 우리 사회의 성숙한 공론이 모아져서 국가와 개인이 상호 협력적인 관계로 더욱 증진될 수 있기를 기대하는 마음 크다.

 

시인 정성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