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태 [칼럼]

미개한 정치, 미개한 국가, 누가 만드나?/정성태

시와 칼럼 2014. 11. 20.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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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집단학살 만행이 어느 것 하나 시원스레 규명되지 않은 채 역사의 시계 속으로 함몰되고 있다. 고작 촉탁직 혹은 비정규직 선원들만을 대상으로 사법적 심판이 진행되고 있을 뿐이다. 능히 전원 구조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무슨 속사정이 깊었기에 수백 명의 무고한 어린 학생의 목숨을 여객선 선실에 가둬 그대로 바닷물에 수장했는지 도무지 납득되지 않는 대목이다. 더욱이 그것을 조종한 것으로 의심되는 배후 세력에 대해서는 정치권이 오히려 앞장 서 깜깜히 차단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낳기에 충분한 상황이다. 거기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여야가 따로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모름지기 그 날 이후 대다수 국민의 가슴에 심각하고 의문스런 물음이 자리하게 됐으리라 여긴다. 그렇다, 국가란 무엇인가? 정치가 있어야 할 자리와 또 누구를 위해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 오늘 우리가 절절히 체감하며 직면하고 있는 치욕스런 민낯 그대로의 모습을 담고 있다. 국민된 입장에서 실로 두렵고 떨리는 나날이 아닐 수 없다. 집권 세력인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의 간교하고 흉포한 야만성은 물론이거니와, 제 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의 무기력과 어용성에 대해서도 공히 뼈저리는 각성의 계기로 삼을 수 있어야 할 일이다. 

 

주권자인 국민이 정치를 방기했을 때, 특정 정치인 또는 정당에게 맹목적인 찬사와 지지를 보냈을 때, 자신과 같은 고향 출신이라는 이유로 묻거나 따지지 않고 표를 줬을 때, 바로 거기 국가 운명의 향배가 어떻게 잘못 전개될 수 있는 것인지 여실히 목도하고 있다. 아울러 우리 모두에게 심각한 성찰을 요구하고 있기도 하다. 특히 가난하고 힘없는 다수 대중에게는 더더욱 그러한 측면이 강하다. 권력에 대한 비판과 견제가 마비된 곳에 돌아오는 건 감당키 어려운 착취와 서슬 퍼런 독재의 칼날이란 교훈을 오늘 우리 모두가 혹독한 대가를 지불하며 치루고 있는 셈이다. 

 

각별히 명심해야 할 점은, 유능하고 훌륭한 국가 지도자를 갖는 것은 고스란히 국민 개개인의 몫이라는 사실이다. 학연 및 지연 그리고 혈연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는 일이라 할지라도, 그러나 거기 최소한의 양심에 바탕을 둔 변별력은 갖출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라야만 비로소 강한 나라, 선진화된 나라, 안정된 나라, 살기 좋은 나라가 되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뜨거운 애국심 또한 발현되는 것이다. 문명의 발전은 물질적 혹은 기술적인 것에만 의존하지 않는 것으로, 사회 구조적 혁신 없이는 결코 미개 사회를 면치 못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국민적 선택에 의한 것임을 하시라도 잊어서는 아니 될 문제다. 

 

시인 정성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