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태 [칼럼]

새정련, 어용성 버릴 때 회생 가능/정성태

시와 칼럼 2014. 9. 28.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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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새정련에는 배우 김부선 씨와 같은 저돌적인 투사가 요구되고 있다. 불의에 대항하며 공의를 세우는 일에 어찌 좌고우면, 또는 하는 척 적당히 쇼나 하며 손익 계산에만 분주할 수 있겠는가? 박근혜 정권 눈치 보기와 보신주의로 일관하는 졸렬한 작태로는 만 년 하청이다.

혹자는 정치를 통한 해법 모색이 무슨 만고의 진리라도 되는 듯 입이 마르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원론적인 얘기는 법과 상식이 통용될 때 가능한 일이다. 상대는 권력을 이용해 야당과 국민 일반을 능멸하고 있는데, 거기 무슨 얼어 죽을 정치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주장은 야성을 상실한 나약한 자들이 내뱉는 한낱 궤변에 불과하다.

그에 더해 어떤 이들은, "새정련 의석이 부족해서 뜻을 이루기 어렵다"라고 강변한다. 이는 야권 지지층에 대한 참담한 기만이며 혹세무민의 극치다. 원내 130석이 어디 적은 의석이란 말인가? 그러한 말장난이나 하려는 작태로는 설혹 국회의사당을 모두 새정련 의석으로 채운다한들 상황은 결코 다르지 않다. 문제는 의지며 철학이다. 아울러 실천하는 데 있다.

굳이 실명을 거론하지는 않겠다. 다만 뱃살 가득 늘어난 비열한 군상들이 새정련 내에도 우글거린다는 점이다. 정직해지자면, 이러한 어용 집단에 폭탄을 던지는 심정이다. 그런 식으로 백 날 곁다리 긁어봐야 야권 지지층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 야당답게 목숨 걸고 민초들과 함께 싸워야 한다. 그래야 집권의 발판도 마련될 수 있다.

이는 비단 친노, 비노, 반노 등과 같은 계파적 패권 문제만으로 구획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은 아니다. 야당으로서 응당 지녀야 할 자기 존재감을 완전히 상실하고 있는데서 사태의 심각성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뜨끄미지근한 갈짓자 행보로는 나날히 지지층의 외면만 가속화시키게 됨을 속히 깨달을 수 있어야 할 일이다.

시인 정성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