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태 [기타]

추석 끝자락에 불현듯 드는 생각

시와 칼럼 2014. 9. 10. 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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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무척 곱다. 의도하지 않게 담배 연기에 휩싸인 달을 담게 됐다. 갑자기 내 소년 시절의 아버지가 떠오른다. 그가 내뿜던 담배 연기와 함께.

 

초등학교 2학년 무렵으로 기억된다. "성태야, 장래 꿈이 뭐냐?"라는 예기치 못한 아버지의 질문 앞에 대답을 망설였다. 그러던 이내, "판사가 되거라, 판사는 억울하거나 약한 사람을 도와줄 수 있단다"

 

그 날 이후로 막연하게나마 판사가 되는 게 꿈이 되었다. 사실 그 무렵엔 판사가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잘 알지 못했다. 단지 억울하고 약한 사람을 도와주는 좋은 일인 줄만 알았다.

 

그러나 내심 나만의 꿈이 없었던 건 아니다. 검을 잘 쓰는 선비가 되고 싶었다. 고결한 품격과 기상을 갖춘 선비의 모습이 좋아 보였고, 거기 더해 검으로 악당까지 제압하는 멋진 모습을 상상했으니 말이다.

 

어쩌면 판사는 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꿈이었을 테다. 세무 공무원이 적성에 맞지 않아 전매 공무원으로 자원해 옮긴 이력을 보면, 필경 여린 성품의 소유자이기도 했을 터다.

 

어느 쪽이든 내 어린 날의 꿈은 이루지 못했다. 그것은 이제 까마득한 옛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아버지에게는 불효요, 내 자신에게는 기망인 셈이다.

 

돌이켜 보건데, 유년 자식의 손을 잡고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어여쁜 기생집에 들었던 아버지의 마음자락은 지금도 여전한 의문이다. 젓가락 장단을 하며 한 판 거나하게 취하셨던 그 아버지가 내게 들려 주고자 했던 언어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북망산 그곳에서도 여전히 주색을 탐닉하고 계실까? 엄하나 한편 자비로왔던 그 아버지가 불현듯 담배 연기와 함께 그리워진다. 추석 끝자락이어서 그런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