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태 [칼럼]

세월호 학살 만행과 풀리지 않는 의혹/정성태

시와 칼럼 2014. 5. 13.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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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에 이상 징후가 포착된 가장 앞선 시각은 침몰 당일인 16일 오전 7시 20분이다. 이는 KBS 아침 방송을 통해 세월호 사고 소식이 자막으로 보도된 것에 근거한다. 같은 시각, 세월호가 정선 상태로 있었다는 사고 해역 인근 거주 어민의 증언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안전행정부와 소방방재청 상황실에는 8시로 기록된다. 같은 시각, SBS 아침 방송을 통해서도 사고 소식이 전파를 탄다. 단원고 상황판에는 8시 10분으로 표기된다. 진도군청은 8시 25분, 국립해양조사원 홈페이지에는 8시 30분으로 나타난다.

이 또한 탈출한 생존 승객의 증언을 통해서도 능히 읽히고 있다. 즉, 이미 그 전에 선박에 큰 이상 징후를 감지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는 기사가 삭제됐으나, 그 게재 흔적은 포털 검색창을 통해 조회된 화면이 고스란히 복사되어 있다. 이는 통신의 기사 입력 시간을 고려한 정황 판단에서 그렇다.

이를 종합해 볼 때, 아무리 늦게 잡아도 침몰 당일 오전 7시 20분 이전에 구조 요청이 있었을 것이란 추론이 자연스레 가능해진다. 국민은 결코 바보가 아니다. 다만 명문대 출신들이 득실대는 청와대만 모른다. 그리고 무슨 이유 때문인지 관계 기관에서는 한결같이 변명 일색이다. 그와 함께 증거 인멸만 잽싸게 이뤄지고 있다.

정부 당국이 지금까지 공식 확인해 준 최초 사고 접부 시각은 침몰 당일 오전 8시 57분이다. 그것도 희생된 학생이 119를 통해 구조 요청을 직접 알려 온 시각에 불과하다. 그로부터 1시간 가량의 구조 가능한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탈출로 인한 생존자는 있어도 구조된 승객은 단 한 명도 없다. 이후 선수가 완전히 잠기기까지 또 적잖은 여유 시간이 있었으나 오히려 구조를 막았다.

그런데 여기서 더욱 당혹스런 사실이 포착됐다. 사고 지점으로 통영호를 급파해 인명 구조에 나서라는 해군참모총장의 긴급 지시가 묵살됐다는 점이다.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군의 특성상 도무지 납득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막후 실력을 지닌 또 다른 누군가에 의해 차단됐다는 뜻일까? 

500여 명 가량되는 여객선에 문제가 발생했다. 그야말로 초대형 사고다. 해수부, 안행부, 해경 수뇌부는 물론이고, 청와대와 국정원에도 보고가 있었을 것으로 관측된다. 그렇다면 왜 구조를 방치한 것일까? 도대체 무엇 때문에 300명이 넘는 생목숨이 바닷속에서 고통스레 숨지도록 끔찍한 만행을 저질렀을까?

이번 세월호 집단 학살로 인해 사라진 건 비단 꽃보다 더 어여쁜 어린 학생들의 죽음만이 아니다. 그로 인해 국정원의 부정 선거 개입과 간첩 조작 사건 또한 실종되고 없다. 참으로 묘한 시점이 아닐 수 없다. 거기 신도 사살 당했거니와 인간됨의 최소 양심마저 함께 죽음을 맞았다.

시인 정성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