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태 [칼럼]

이유 있는 안철수 쇠락/정성태

시와 칼럼 2014. 3. 21.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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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의 역사 인식이 얼마나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는지는 이미 드러난 바 있다. 교학사의 역사 교과서 왜곡마저 양비론적 시각으로 접근할 때 뚜렷한 한계를 보였다. 급기야 새로 태동되는 새정치민주연합의 정강•정책에 4.19 혁명, 5.18 광주민주화운동, 6.15 선언, 10.4 선언 등을 빼자고 주문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에 따른 문제가 크게 확산되자 한 발 물러 서기는 했지만, 이는 그의 몰락을 재촉하는 핵심적 자충수로 읽힌다. 실로 경악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기실 안철수의 역사 인식과 시대 상황에 대한 성찰 부재 그리고 회색적 정치 좌표를 그간 적잖이 파악했던 터라 새삼 놀랄 일은 아니다. 그의 거듭되는 우편향적 행보로 인해 날로 지지율이 빠져 나갔다. 현재는 그가 고공 행진을 할 때에 비해 반토막 이하로 떨어진 상태로 자칫 한 자릿수로 내몰릴 개연성마저 다분하다. 그에게 암울한 시대를 의탁하려 했던 이들에게는 매우 허탈한 심정일 것이다. 그야말로 하나의 뜬구름이 되고 만 셈이다.

그간 거듭되는 민주당의 우편향성과 무기력한 모습에 반발한 전통 지지층이 대거 안철수 지지 대열에 나섰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그들이 어느 시점부터 안철수 비토에 차츰 가세하고 있다. 잠시 잠깐 새 정치라는 구호에 현혹되었으나, 실상 내용 없이 울리는 공허한 메아리였음을 자각하게 된 것이다. 최근 들어서는 그나마 민주당이란 말이 인구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으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민주당이 처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이제라도 강력한 자기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노무현 정권의 몰락과 안철수의 쇠락 그리고 김한길 체제의 민주당이 왜 퇴보하게 되었는지를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그 주된 지지층의 개혁에 대한 열망과 그러한 가치를 농간한 데 따른 배경이 결정적으로 자리하고 있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민주당은 자기 정체성 복원을 통해 전통적 지지층을 재규합하는 길에 총력을 쏟아야 한다. 입으로만 민생과 공의, 개혁과 민주주의를 차용해서는 곤란하다. 혼신의 힘을 다해 실천해 나가야 하는 당면 과제다. 거기에 민주당의 존립 기반과 제 1야당으로서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안철수와의 통합에 있어서도 굳이 넋 놓고 달려들 필요가 없다. 근본 문제는 결코 그것에 있지 않다. 민주당이 자기 구실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데 있다. 그렇다면 해법은 보다 분명해진다. 제 1야당으로서 자기 역할을 충실히 이행할 때 지지율 반등을 기대할 수 있다. 이 점을 민주당이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 통합 이후에도 이를 이행치 않는다면 지지율 하락은 필연적으로 예고되어 있다.

 

여기서 차제에 몇 가지 짚고 싶은 게 있다. 적잖은 사람이 어떤 특정 정치인을 하나의 숭배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그가 지지하는 정치인이 한 점 오류도 없고 또 흠도 없는 경배의 대상이라도 되는 듯 착각하는 부류다. 이들의 경박스러움으로 인해, 그들에게 일종의 신앙적 대상이 되고 있는 듯한 정치인이 오히려 더 가치 없게 취급될 수 있음을 경고하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과 박근혜를 신의 반열에 올려 놓은 일베 및 극우 세력에 대해서는 논할 가치도 없다. 그런데 그 비슷한 행태를 보이는 무리가 자칭 진보 혹은 개혁 또는 민주주의자라도 되는 듯 둔갑술을 펼치고 있다. 그들 교주격인 정치인이 하는 말에 따라, 여차하면 4.19 혁명 및 5.18 광주민주화운동도 북한의 사주에 의한 폭동이라고 강변할 태세다. 6.15 및 10.4 선언도 빨갱이들의 농간이라고 왜곡할 기세를 보이고 있어서다.

굳이 그들의 빈곤한 철학을 거론하지는 않겠다. 유시민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던 헛개비들의 소행과 한 치도 다르지 않으니 말이다. 그러한 일단의 사람으로 인해 우리 사회의 변혁이 얼마나 어려운 과제인가를 거듭 확인하게 되는 것 같아서 씁쓸할 따름이다. 참으로 이해되지도 않거니와, 그 비루한 것들에 대한 불쾌한 마음자락만 차곡차곡 쌓여 간다. 도무지 뒷맛이 개운치 않다.

 

시인 정성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