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태 [칼럼]

너희의 섹스 파트너는 민중이다/정성태

시와 칼럼 2014. 1. 23.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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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혹은 외국의 유수 대학 졸업장이 정치를 규정하지 않는다. 사법시험 또는 이런 저런 고등고시 합격이 정치를 규정하는 것 또한 아니다. 오직 국가에 대한 뜨거운 충성심과 다수 국민과 인류에 대한 애틋함, 그리고 그것을 현현하려는 실천적 헌신에 있다.

한국 정치가 비루한 것은, 책상머리에 오래 버틴 시간만을 자랑질 삼으려는 데 있다. 그리고 그 알량한 화장발을 무기 삼아 권금의 창녀로 전락된다는 점이다.
참으로 역겹고 저급한 일이다. 그런데 오늘도 그 싸구려 대열에 끼고자 옷을 벗는 이가 적잖다.

그러나 기억할 일이다. 기꺼이 너의 속살을 바쳐야 할 대상은 양심과 양선이며 그러한 사랑의 본체여야 한다. 거기 맨살의 대중이 있다. 바로 너의 신부고 네가 끝까지 아끼고 보호해야 할 순결한 자다. 그것이 네가 감당해야 할 마땅한 사랑의 본령이다.


따라서 섹스는 거룩한 성품에 맞닿아 있어야 한다. 너의 온 몸과 마음 그리고 정성을 둘 곳에서 만나는 눈부신 합치이며 그러한 행위인 까닭이다. 그런데 어찌 화대를 받고 몸을 팔아 스스로를 욕되게 할 수 있겠는가. 피 묻은 거래에 영혼마저 도륙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근래 우리 정치판에서 도무지 그 실상이 명료하지 않은 채 회자되는 말이 있다. 박근혜 정권의 창조 경제, 민주당의 자기 혁신, 안철수 신당의 새 정치, 정의당의 종북 타령이 그것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말은 있는데 도무지 그에 걸맞는 실체가 없다란 점이다.


한국 정치가 여전히 진부하고, 사람들을 질식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박근혜 정권의 기만적 독선에 강력히 맞서 싸우고 또 그의 거수기인 새누리당을 압도하는 진취적 면모와 혁신성이 결여되어 있다. 서민 대중의 굴곡진 삶의 현장과도 현저히 유리되어 있다.

처참히 짓밟힌 민주주의 앞에서, 삶의 막장에서 신음하는 서민 대중의 피눈물 앞에서, 왜곡되기를 강요하는 역사 문제 앞에서 야당은 보다 더 치열해야 하고 또 그러한 절망의 한복판으로 밀접히 다가 서야 한다. 애끓는 민의에 충실히 응답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다 솔직해지자. 민주당, 안철수 신당, 정의당 공히, 지금 이들을 한국 정치판에서 야당이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사상 최악의 사이비들이 야권인 듯 행세하고 있는 작금의 현실이 역겹다 못해 구토가 날 지경이다. 그만큼 우리 안의 양심과 진실도 헛되이 부유하고 있다.

 

야당이 야당으로서 취해야 할 본연의 임무와 역할을 방기한다면 혹독한 심판만이 따를 뿐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이비 야당은 또 다른 진골 야당에 의해 대체되는 것이 자연스런 이치다. 이것이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담백한 교훈이다. 거기 진보당이 아직 여리나 강한 싹을 틔우고 있다.

시인 정성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