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태 [칼럼]

현대판 노예로 전락된 파견 근로자/정성태

시와 칼럼 2010. 9. 29. 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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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외환위기 당시 IMF의 고용유연화정책 권고를 받아들여 입법시행된 근로자보호법이 명목상으로는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그러나 나타나고 있는 속내를 들여다보면 오히려 노동자의 고혈을 빨아먹고 있는 아주 악랄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

특히 파견직 근로자가 처한 현실은 공권력이 용인한 새로운 형태의 인신매매 수준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동일한 노동을 하면서도 갖가지 형태의 차별을 겪고 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근로자와 고용주를 연결해 주는 파견회사의 중도 임금착취는 합법을 가장한 신종 노예제도란 것이 지배적인 분석이다.

물론 노동시장의 지나친 경직을 방어할 필요도 일정 부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질병, 출산, 휴가, 계절적 요인 또는 일의 특성에 맞춰 부득이하게 비정규직 근로자를 채용해야 한다거나 또는 한시적인 기간만 근로자를 고용해야 되는 경우도 있으리라 판단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에 따른 노동력을 적시에 공급받고 그러다 수요가 없어졌을 때 다시 내보내야 되는 불가피한 측면에 대해서는 이해가 된다.

그러나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사업장이 그 필요에 의해 비정규직 근로자를 고용함에 있어 사업주의 악용을 확실히 막을 방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비정규직 근로자의 비율을 일정이상 넘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규제하는 방안이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이와 함께 똑 같은 일을 하는 정규직에 비해 임금차별을 두어서도 절대 곤란하다.

여기서 더 크게 관심을 두어야 할 부분은 사실 따로 있다. 바로 파견근로자 문제다. 사업장이 직접나서 근로자를 채용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중간에 파견회사가 끼어들어 타인의 노동에 대한 대가를 적지 않게 떼어 먹고 있는 실정이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시대에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파렴치한 일이 합법적으로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한 생산성 저하는 물론이고 노동자간의 심각한 갈등양상마저 낳고 있다. 이는 국가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음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이에 관련법의 손질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물론 문제해결에 있어 가급적 이해 당사자간의 자율적 합의를 도출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재계의 입장이 워낙 완고한 상태여서 양자간의 원만한 해결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심각한 상태로 치닫고 있는 노동현장의 갈등과 근로의욕 감퇴로 인한 사회병리 현상을 이대로 방치해서도 안되는 상태에 놓여 있다.

결국 정부가 직접 나서서 해법을 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노사 양측으로부터 다소간 이견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 하더라도 각계의 전문가와 우리 사회의 공감대를 바탕으로 정부가 지혜롭고 합리적인 결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근로자가 일에 대한 의욕을 상실하게 되고 그로 인해 자신의 삶에 대한 미래를 담보할 수 없게 된다면 이는 더 큰 사회적 비용을 국가가 감당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도 정부 당국과 집권 여당은 기존의 파견제 근로자에 대한 시한을 더 연장하고 대상범위 또한 거의 모든 영역으로 확대하겠다는 발상을 하고 있다. 과연 참여정부와 집권 여당이 당초 표방했던 이런 저런 개혁 구호에 걸맞기나 한 것인지 도무지 의아스럽기만 하다. 국내외의 굵직 굵직한 사안들로 인해 정작 노동자의 고단한 눈물이 가려져서는 안될 것이다. 인간적 삶의 가치를 존중할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야말로 국가가 국민을 위해 취해야 할 중요한 정책적 과제임을 명심했으면 한다. 

시인 정성태 

2004년 11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