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태 [칼럼]

美 대선 결과와 민족 문제

시와 칼럼 2010. 9. 29. 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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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 선거가 초미의 국제적 관심 속에서 치뤄진 가운데 공화당 부시의 재선으로 막을 내렸다. 이에 따른 세계 각국의 반응도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미국 내의 패권주의 물결을 재차 확인하게 된 아랍권 국가들은 한결같이 우려섞인 분위기가 역력하다. 독일과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국가들도 축하 메시지를 띄우고는 있지만 결코 밝은 모습은 아니다. 그런 반면, 영국과 일본의 최고 지도자는 크게 환호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러시아의 푸틴 역시 기대하는 자세가 뚜렷하다.

세계국가의 이러한 양태는 사실 이데올로기적인 요소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종교 및 문화적인 영역과도 결정적인 상관관계에 놓여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개별 국가간의 이념이나 종교 또는 문화적 충돌을 전적으로 부인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그러나 보다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은, 역시 자국의 이익과 어떻게 결부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그리고 이는 싫든 좋든 초강대국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가 직면한 냉엄한 현실이기도 하다.

이번 미 대선결과를 두고 국내여론도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민주당 케리 후보의 당선을 바라던 사람들은, 공화당 부시 정권의 힘에 의한 일방적 외교노선이 지속될 것으로 염려하고 있다. 이로 인해 민족문제가 진척되지 못할 것이란 전망과 함께, 남한사회 내의 극우세력이 탄력을 받게 될 것이란 초조함이다. 아울러 이를 등에 업은 미국의 선제 북폭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다. 한편 부시의 재선을 반기는 이들은, 미국의 보호주의 통상무역 정책이 케리보다는 상대적으로 덜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따라서 대미 의존도가 높은 우리 수출무역에 있어 지금보다 별다른 악재는 없을 것이란 점을 들고 있다.

그러나 이런 저런 관점의 차이를 떠나 씁쓸한 생각이 드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우리와는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의 대통령 선거결과를 놓고 다양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처한 입장과 그에 따른 분분한 해석 또한 다들 국익을 위한 나름대로의 충심이란 점에서는 긍정적으로 이해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의 나라 대통령이 누가 되었느냐에 따라, 우리 정치권은 물론이고 국민여론도 상호 기대와 염려가 엇갈리고 있다는 측면에서는 불편한 마음 가눌 길이 없다. 이는 비록 우리나라만의 문제에서 국한되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날 초강대국 미국이 안고 있는 명암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제 우리가 보다 크게 주목해야 할 점은, 공화당의 부시든 또는 민주당의 케리든 그들 모두가 미국의 정치 지도자란 엄연한 사실이다. 다소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누구라도 결코 우리의 이익을 일방적으로 대변해 주지는 않는다. 결국 미국의 대통령 당선자 또는 낙선자인 것이지 결코 한국을 위한 정치지도자는 아닌 까닭이다. 우리는 이 점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된다.

따라서 우리는 미국과의 선린 우호관계는 지속하되, 그에 따른 완급조절은 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의 부당한 요구에 대해서마저 무작정 응할 것이 아니라, 우리 의사를 명확히 전달해야 될 경우에는 분명한 태도를 취해야 된다. 양자간의 상호존중에 바탕한 이해와 협력을 한층 조화롭게 펼쳐나갈 수 있을 때, 진정한 의미의 한미 선린우호를 지속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특별히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서는 우리 정치권이 여야를 막론하고 초당적으로 적극 대처해야 할 필요가 있다. 집권 2기를 맞는 부시 정권 내의 강경파가 지금과 같이 정국을 계속해서 주도하게 될 경우 남북문제가 여전히 난항을 겪게 될 것임은 분명하다. 만에 하나 미국이 북폭이라도 감행하게 되고 이로 인해 한반도에서 전쟁이라도 발발하게 되면 이는 민족 모두의 공멸로까지 이어지게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불안해 할 필요는 없다. 세계의 많은 국가가 미국의 일방주의적 패권주의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군사, 외교, 경제라는 외형적 요인도 작용하고 있지만 그러나 보다 심층적인 것은 심리적 요인에 의해 더 크게 영향받고 있다. 미국에 의한 소외감과 함께 그들에게 주어졌던 일정 부분의 기득권 상실에 따른 감정적 반감이 그리 만만치 않은 수준이다.

미국 내의 여론도 공화당 부시 정권에게 그리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부시가 비록 재선에 성공했다고는 하지만 그러나 투표에 참여한 유권자 가운데 겨우 절반을 조금 넘는 득표율을 기록했다는 데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미국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부시의 강경한 대외정책으로 인한 국제사회에서의 위상 추락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국내외적 여론의 따가운 질책에 대해 부시가 언제까지 귀를 닫고 있을 수는 없다. 파괴와 살륙으로 실추된 미국의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 우선 이라크 문제에 있어서 종전의 폭압적 태도에서 벗어나 일부 수정된 온건 해결을 모색할 가능성이 높다. 유럽을 위시한 국제사회와도 다각적인 협상을 시도하게 될 것으로 관측된다. 이를 반영하 듯, 부시가 그의 당선 인사말을 통해 미국사회의 통합을 위한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힌 대목이다.

이런 맥락에서 불 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미국의 북폭 가능성은 사실상 희박하다. 특별히 중국과 러시아의 코 앞에서 전쟁이 치뤄진다는 점과 함께 이들 나라와 북한과의 이해관계를 도외시 할 수만도 없다. 특히 중국 입장에서는 북한을 통한 대륙 방어라는 지리적 특수성을 결코 포기하기 어렵다. 또한 북한의 미사일 사거리가 남한은 물론이거니와 일본 본토를 정조준 할 수 있는 수준이다. 심지어는 미국까지 도달할 수 있을 정도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여기에 아프칸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으며, 이란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게 꿈틀거리고 있다. 이라크 또한 저항군과 미군 사이의 내전이 장기화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미국의 전선이 북한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다.

중요한 것은, 그간 고착화된 미국이란 울타리와 그 환상에 가까운 믿음에서, 보다 전향적인 사고를 갖추지 않으면 안된다. 모든 것이 미국으로만 집중되었던 종래의 행태에서 벗어나 다각적으로 운신의 폭을 확대해야만 한다. 오래된 친구와도 좋은 관계를 지속하면서 아울러 새로운 친구와도 적극적인 활로를 찾아 나서는 부단한 발길이 요구된다. 대북문제와 관련해서는 정부당국의 확고한 의지가 더욱 절실히 필요하다. 우리가 주도권을 갖고 민족문제에 임할 수 있도록 가용한 모든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아울러 우리사회가 각별히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극우세력의 고전과도 같이 통하는 한반도에서의 전쟁 시나리오가 그것이다. 이를 마치 기정사실화 해서 정략적으로 이용하려 드는 정치세력도 문제지만 여기에 고장난 축음기마냥 잊을만 하면 틀어 대는 일부 언론의 보도 태도도 한심하기는 매양 마찬가지다. 귀가 따가울 정도의 말과 문자가 갖는 공해 홍수를 뚫고 어떻게 하면 민족의 확고한 평화정착을 통한 공동번영을 이뤄 갈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으면 안된다. 정부 당국은 물론이고 국민 모두의 합리적이고 냉철한 이성이 더욱 요구되고 있다. 

시인 정성태 

2004년 11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