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태 [칼럼]

정치꾼과 정치인/정성태

시와 칼럼 2010. 9. 29. 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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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그 흐름이 결코 요란스럽지 않다. 그러나 제 가야 할 길을 향해 부단한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때로 길이 막히게 되면 새로운 모색을 강구하거나 또는 장애물을 넘어 설 때를 기다릴 줄 안다. 그렇다고 그의 근본철학이 바뀌는 일은 없다. 다만 타인에 대한 배려를 잃지 않는 가운데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성취해 낸다. 이것이 물이 갖는 연속성이며 현상에 대한 보다 겸손하고 따뜻한 시각이다.

아울러 물은 정직하다. 그 깊이에 따라 가장 알맞은 것을 찾아 내 이를 사용할 줄 안다. 꽃잎을 띄울 곳에 나룻배를 놓으려 한다거나 또는 나룻배를 띄워야 할 곳에 항공모함을 운항하려 드는 억지를 부리지 않는다. 항공모함이 제 아무리 좋고 또 성능이 뛰어난 것이라 할지라도 그러나 이를 받쳐 줄 수 있는 물의 깊이를 고려할 줄 안다.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이 연일 시끄럽다. 여당의 어느 의원은 최근 행정수도이전에 대한 헌재의 위헌 결정을 놓고 살의가 느껴질 정도의 막말은 내뱉고 있는가 하면, 열린당이 주도하고 있는 4대 입법안에 대해, 한나라당은 여전히 색깔시비를 불러 일으키는 구태의연한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모두 듣기 민망할 정도의 수준으로, 정치인보다는 정치꾼이 득세하고 있다는 씁쓸한 생각을 떨굴 길이 없다. 여야의 극단에 가까운 쌈박질로 인해 여론 또한 각 정당에 대한 호불호와 상호 이해관계에 따라 소용돌이치고 있다. 국론을 하나로 모아야 할 대통령마저 정쟁의 중심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상황이다. 이러다보니 국민정서는 날로 피폐해지고 있으며 서민의 삶 또한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되고 있다.

정치가 이래서는 안된다. 어떤 정책을 놓고 서로 상대방 헐뜯기에만 깊이 매몰되어 있어서는 절대 곤란하다. 진정으로 국리민복을 위한 길이 무엇인지 정부 여당은 물론이거니와 제 1 야당인 한나라당 역시 그에 대한 진지한 자기성찰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상호 허심탄회한 대화의 광장을 통해 필요한 지혜를 모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한나라당은 지나친 냉전주의적 사고와 관료주의적 틀에서 속히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시대상황과 동떨어진 극보수적 모습을 탈피하고 진정한 보수세력으로 거듭나야 한다. 국정최고책임을 지고 있는 대통령에 대한 예의 또한 갖춰져야 한다. 그러는 가운데 어떤 문제점이 있다면 그에 대해 따져 물을 수 있어야 한다. 개발독재의 낡은 역사관에 기대려는 자세로는 결단코 폭넓은 국민의 사랑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여당인 열린당 역시 민의를 보다 폭넓게 살피려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설혹 자신의 주의 주장이 제 아무리 옳은 것이라 할지라도 그에 대한 독선적 태도보다는 상대를 설득하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여론이 충만할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여유와 안목없이는 자칫 매사를 그르치게 되는 어리석음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과도한 정치공방을 자제하는 가운데 필요한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지금 우리 정치권에 있어,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되돌려 놓으려 하는 한나라당의 자세도 문제지만 이와 함께 오늘만 살다 죽을 것처럼 일거에 모든 것을 얻으려 하는 정부 여당의 정책추진 역시 국민적 동의를 얻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어서도 안되는 일이다. 오늘의 개혁이 자칫 내일의 개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제 정치권 모두가 자기 안의 가득찬 적의를 거둬내고 가급적 국민화합을 이룰 수 있는 가운데 내일을 열어 갈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국가와 국민에 대한 정치인의 본분이며 마땅히 갖춰야 될 도리다. 우리정치의 후진성이 일정 부분 해소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시인 정성태 

2004년 10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