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태 [칼럼]

국보법 존폐 논의에 부쳐/정성태

시와 칼럼 2010. 9. 29.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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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계는 좌우 이념으로 인한 냉전체제가 상당 부분 와해되었다. 이와 함께 도래한 것이 국가주의 또는 민족주의의 심화다. 물론 개별국가들이 비록 표면적으로는 지구촌시대를 외치고 있지만 그러나 그 심연에는 철저히 자국의 이익과 결부시키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와 함께 개별국가 내에서의 개인에 대한 가치를 우선시 하고 있는 양상이 더욱 높아지고 있는 현실이다.

북한의 경우도 유럽과 미국 심지어는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을 날로 증대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남북관계도 평화공존이란 기본틀을 중심으로 민족문제에 대한 전향적 합의가 상당 부분 강화되어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이념적인 요소가 국가간 또는 남북간에 완전히 없어졌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예전에 비해 그 영향력이 현저히 약화되었다는 것이며 이는 종전의 이데올로기에 의한 국제사회 질서에서 오늘날에는 자국의 실리추구와 국민의 삶의 질 향상 위주로 날로 탈바꿈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라크 문제를 통해서도 국제사회의 움직임이 어떠하다는 것을 극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의 전통적 우방이었던 프랑스는 오랫동안 불편한 관계에 놓여 있던 중국과 오히려 같은 목소리를 낸 바 있다. 또한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선진국가들도 미국의 이라크전에 대해 야만적인 침략전쟁으로 규정하고 이에 대해 노골적인 비난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국제관계가 자국의 이익에 따라 다각적으로 암중 모색되어지고 있으며 그에 따라 널뛰고 있다는 명확한 반증인 것이다.

그간 한국의 혈맹으로까지 자리매김되어 온 미국에 대한 인식도 남한 사회의 민주주의에 대한 의식수준 향상으로 인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받고 있다. 그런가하면 북한에 대한 태도 역시 상당한 변화를 나타내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로 햇볕정책에 대한 수구진영의 일방적 매도에서 벗어나 오늘날은 이에 대한 필요성을 상당 부분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을 민족의 공동번영과 평화통일을 위한 대화와 협력의 동반자로 인식하고 있다는 좋은 본보기라 할 수 있다. 북한 역시 러시아와 중국에 대해 일방적인 지지를 보내던 종래의 태도에서 벗어나 다각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국제사회의 움직임에 어떻게든 동참하고자 고심하고 있는 흔적이 적잖이 목도되고 있다. 최근 개성공단 조성에서 보여주고 있는 북한 당국의 전향적인 노력 역시 이의 일환으로 해석되어 질 수 있다.

근래 국가보안법 존폐문제로 인한 국론분열 양상이 심각한 수위를 나타내고 있다. 국가보안법의 모체는 일제가 독립운동가를 처벌하기 위해 활용한 '치안유지법'에서 연유하고 있다. 해방이 된 후에도 일제 부역자를 정당화하고 또 이들을 중용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지속해서 악용되던 것이 이후 군부 독재권력이 정권을 착취하면서 자신들의 권좌를 지키기 위한 방편으로 그대로 활용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끈질긴 방해에 의해 오늘날까지 크게 개선되지 않은 채 흘러오고 있다. 친일부역자 자손이 3대를 두고 권세를 누린다는 말이 결코 괜한 비아냥이 아닌 것이다.

국가보안법이 갖는 가장 큰 맹점은 어떤 특정인에 대한 구속과 처벌의 기준을 사법당국이 자의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사법부의 악의적 잣대에 따라 얼마든지 고무줄 식으로 적용될 수 있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으로써 정치권력의 눈밖에 벗어나면 누구든 국가보안법에 의해 죽임을 당할 수 있거나 또는 징역살이를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결국 국가보안법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죄형 법정주의를 정면으로 거스르고 있는 것이며, 법의 이름을 빌어 국민의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탄압하고 있는 일종의 국민에 대한 테러인 셈이다. 실제 남한 사회에서 그간 수많은 사람이 정부에 대한 비판적 활동을 하다가 구속되거나 심지어는 목숨을 잃게 된 무수한 사례를 통해 이를 충분히 입증할 수 있다.

현재 우리 형법에서도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할 수 있는 범죄를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다. 그런지라 국가보안법 폐지로 인한 안보 공백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염려되는 점이 있다면 이를 현실에 맞게 꼭 필요한 조항만 형법에서 보완하면 되는 일이다. 국가의 안위를 심대하게 해칠 수 있는 명백한 간첩행위에 대해서는 엄벌하되, 자신의 양심에 따른 사상의 자유는 철저히 보장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오늘 날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민주주의는 견해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가운데 상호 보완적인 점을 찾아 나서는 긴 여정을 토대로 하고 있다. 국민 누구나 자신의 양심에 따른 사상의 자유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지극히 상식적인 일로 통한다. 이는 자신의 크고 작은 생각 뿐 아니라 스스로의 사유 또는 교육에 의한 깨우침을 하나의 사상으로 승화 발전시키며 이를 전개하고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근본원리가 되고 있는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는 그 어떠한 사슬도 국가가 국민을 대상으로 한 기만행위이며 동시에 죄악인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고민해야 할 점도 분명히 있다. 가령 일단의 결사체가 떼거리로 인공기를 흔들며 일방적으로 북한의 주의 주장을 펼치며 선동한다거나 또는 전국 곳곳에서 북한노동당 가입을 받는 등과 같은 일은 차단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대한민국의 안보를 위해하거나 또는 와해시킬 목적의 명백한 반국가적 형태의 조직적인 지휘통솔 체제를 갖춘 단체에 대해서는 마땅한 처벌 규정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국가권력의 불필요한 인권유린도 차단하면서 동시에 우리사회의 건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지혜로운 선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안보공백에 대한 국민의 막연한 불안심리 해소와 함께 국가보안법 폐지라는 실질적인 성과도 낳을 수 있는 까닭이다.

사실 국보법에 대해서는 국제 앰네스티나 유엔 인권위원회로부터 이미 수차에 거쳐 폐지 권고를 받은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보법 폐지에 대한 한나라당과 일부 수구언론의 몰상식한 여론 호도는 참으로 볼썽 사나운 작태라 아니 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변화를 거부하고 낡은 국가관에 사로잡혀 있는 수구적 태도로는 결단코 미래를 도모할 수 없다는 점이다. 결국 좌우 이념을 막론하고 우리민족 모두가 치열한 국제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가피한 선택의 기로에서 수구진영의 진일보한 자세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는 미래의 복지사회 구현에 대한 국가의 막강한 동력원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있어서도 함께 명심해야 할 대목이다. 이제라도 국가안보라는 허울 좋은 미명 아래 존속되어져 온 국가보안법은 반드시 폐지되어야 한다.

시인 정성태

2004년 10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