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태 [칼럼]

울고 싶은 추석 명절/정성태

시와 칼럼 2010. 9. 27.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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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민족은 음력 8월 15일을 추석이라 해서 이를 명절로 삼고 있다. 한가위 또는 중추절이라고도 부르는 데, 이는 가을의 한 가운데 있는 큰 날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추석 무렵이 되면 여름의 땡볕 무더위도 완전히 물러가고 제법 서늘한 날씨를 보이게 된다. 논에는 벼 이삭이 튼실히 익어 빼곡한 황금빛으로 물들게 된다. 이른 경우에는 추수를 끝내고 비어 있는 논이 주는 삶의 무상을 깨닫게도 한다. 들판도 형형색색의 옷으로 갈아 입은 채 온갖 여문 알곡과 각종 과실 역시 그 마지막 단맛을 채우며 스스로가 풍성히 내어줄 채비를 다해간다.

추석이 되면 농사일도 거의 마무리 된 상태여서 마음의 여유도 회복되는 시기다. 날씨 역시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으니 오늘날과 같이 각종 문화시설이 없던 때로서는 놀이문화를 즐기기에도 딱 좋은 때다. 새로 수확한 과일과 곡식을 정성스레 차려 자연의 베품에 대해 감사를 표한다. 이처럼 추석은 즐겁고 신나는 날인 동시에 그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고 기리는 날이기도 한 것이다.

추석과 관련된 속담에 “덜도 말고 더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란 말이 있다. 추석이 되면 이웃과 떡이며 각종 나물을 나눠 먹게 되니 이 때만은 가난한 사람도 배고픔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먹고 사는 일이 궁핍하기만 했던 시기에도 추석 명절만큼은 서로 나눌 줄 알았던 우리민족의 자연과 이웃에 대한 감사와 배려를 여실히 나타내고 있는 내용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추석을 맞고 있다. 그러나 인심은 결코 넉넉하지 못한 채 오히려 흉흉하기만 한 것 같다. 수도이전 문제, 과거사청산 문제, 국보법개폐 문제 등 어느 것 하나 마무리되지 않은 채 연일 극심한 정치공방으로만 치닫고 있다. 민족문제도 딱히 어떤 돌파구가 보이지 않은 가운데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 남한 사회에서도 내수경제의 극심한 침체로 인해 서민의 삶은 고달프기만 하다.

나라 안팎의 대형 이슈들로 말미암아 독거노인, 소년 소녀 가장, 시설 장애인, 시설 고아 등은 물론이고 일용직 노동자를 비롯한 비정규직 근로자, 영세 상인 그리고 최저임금 직군의 추석을 맞는 심정은 결코 들뜨고 기뿐 마음만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더 막막하고 수심만 가득한 채 맞는 추석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길이 없어서 마음 한 켠이 답답하기만 하다.

정치권에서 마땅히 해야 될 입법활동은 착착 차질없이 진행하고 또 마무리 되어야 하겠지만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이 배고픔과 추위로부터 내 몰리는 일을 겪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국민 사이의 상대적 박탈감을 최소화하는 것도 국가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이들의 당연한 몫이지만 더욱이 헐벗게 한데서야 이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마땅히 직장을 구하지 못해 거리를 배회하고 있을 청년 실업자 그리고 이런 저런 불우한 상태에 처해 있는 우리 이웃들을 생각하니 다가오는 추석이 필자에게도 그리 달갑지만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함께 목 놓아 울고 싶은 조국의 슬픈 자화상 앞에서 무기력하기만 한 손짓이 그저 슬플 뿐이다.

시인 정성태

2004년 9월 25일

 

정성태 정치칼럼집 "창녀정치 봇짐정치"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