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태 [뉴스]

정성태 시인의 연시집 해설 [사랑의 가치에 매혹당하다]/이승철 시인

시와 칼럼 2010. 1. 22.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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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저기 우는 것은 낙엽이 아니다]를 출간한 이후, 그간 써 놓았던 시들을 한데 모아 [나이 마흔 넘은 진짜 총각이 쓴 연애시]라는 제목으로 시집을 엮습니다.  이승철 시인께서 해설을 써 주기로 하셨는데, 그간 공적 일정이 바쁜 관계로 애초 약속했던 기일보다 다소 늦게 원고를 넘겨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늦음이 오히려 제게는 매우 뜻 깊은 일이 되고 있습니다. 제 생일을 조금 앞둔 시점에서 책이 나오게 되기 때문입니다. 일부러 생일과 맞춰서 책을 내려는 뜻은 전혀 아니었습니다만, 그간 이승철 시인의 바쁨으로 인해 원고가 늦게 도착한 것이 개인적으로는 좋은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기꺼이 해설을 써주신 이승철 시인께 심심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시집이 출간되면 탁배기라도 함께해야겠습니다. 무엇보다도 독자 제위의 애정어린 관심과 질책을 당부 드리며, 세상 가운데 따뜻히 호흡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 큽니다. 끝으로 그간 제 블러그와 함께 해 주신 이웃 블러거분들과 그리고 사랑하는 현이, 사랑했던 옥이 또 사랑하는 조카들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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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사랑의 가치에 매혹당하다
정성태 시인의 연시집에 대하여


이승철(시인)




  인간은 왜 사랑을 하는가, 사랑의 정체는 무엇인가?



정성태 시인이 이번에 선보이는 신작 시집은 사랑의 출발(만남)과 그 참된 의미, 사랑이 인간에게 안겨주는 환희와 욕망과 고통의 과정, 그리고 사랑이 필연적으로 야기하는 남녀 간의 맺음과 파탄(이별)이라는 주제를 끈질기게 천착한 연시집(戀詩集)이다.

  더구나『나이 마흔 넘은 진짜 총각이 쓴 연애시』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으로 출간하는 이 연시집은 우리에게 사랑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진진한 성찰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눈길을 잡아끌고 있다.


우리는 지난해 KBS 드라마 <아이리스>를 통해 탤런트 이병헌과 김태희, 정준호와 김소연 등이 펼쳐낸 사랑의 의미와 본질에 대해 흥미진진하게 들여다본 적이 있다. 우리는 이때 남녀 간의 사랑이란 참으로 복잡 신묘한 것이고, 그것은 신분과 이데올로기를 뛰어넘어 자신의 목숨과도 바꿀만한 일생의 중대한 사건임을 목격한 바 있다.

그리고 2010년 신년 벽두에 우리는 당대를 대표하는 팜므파탈적 여배우 김혜수와 독특한 캐릭터를 지닌 성격파 배우 유해진과의 뜨거운 열애설로 후끈 달아오른 적이 있다. 두 사람과의 열애설을 접한 세간의 사람들은 남녀 간의 사랑이란 보통사람들의 상식을 뛰어넘는 신묘한 그 어떤 것이 있으며,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 여자의 마음이구나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성 간의 사랑의 본질은 언제 어디서나 똑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 수많은 인연 중에서 한 남자가 한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는 연애는 그러므로 필연적 선택이다. 그 선택은 사람 마음의 깊은 밑바닥의 알 수 없는 심연에서 비롯된다. 어느 두 사람이 서로 불이 붙었다는 것은 그가 사랑하는 상대에 대해 어떤 세밀한 특장을 발견하고 거기에 마음이 온전히 끌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즘처럼 외모 지상주의 시대에도 특정의 남녀가 사랑의 감정으로 결합하게 되는 것은 그 상대가 잘생겼느냐 못생겼느냐, 라는 외모적 판단도 전혀 간과할 수 없는 일면이겠으나 그보다는 상대의 사회적 위치, 지성, 취미, 동작, 성격, 말소리, 행동 등 그 어떤 세밀한 부분이 상호 작용하여 남녀 간의 사랑을 만들어낸다.

남성의 입장에서도 어떤 여성의 공인된 미모, 표준적인 아름다움만 가지고는 한 남성의 개인적 열정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어느 여성의 미모가 그 아무리 감탄할 만한 것이라 해도 거기에는 하나의 예술품을 감상할 때와 마찬가지로 적당한 거리가 가로놓여지게 된다.

연애 감정의 전위노릇을 하는 것은, 말하자면 내가 어떤 상대에 접근하고 싶다, 그와 사귀고 싶다는 욕망의 핵심에는 내가 그 상대를 통해 무엇을 발견했느냐? 일반적인 표준이나 공인된 미모에서 벗어나 그 어떤 특장을 발견했느냐에 달려 있게 마련이다. 다시 말해서 남녀가 만나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은 얼굴이나 자태의 객관적 미모를 뛰어넘는, 어떤 독특한 특질로 대변되는 심미적 인상에서 비롯된다고 심리학자들은 진단한다.

가령 세상의 여자들이 남자를 선택함에 있어서 언제나 가장 우수한 타입의 남성만을 선택해 왔느냐 하는 문제에 있어 대개의 경우 그렇지만 않다.

연애의 역사를 통해 돌이켜보면 참으로 천재적인, 우월적 위치에 있는 어느 한 남성에 대해서 여성이 감격하고 흥분을 느낀 사례는 거의 드물다. 어떤 남성이 위대한 예술가이고 정치가이고 혹은 돈 많은 사업가라는 사실이 어느 한 여성의 사랑을 견인해 내는 데 있어 어떤 결정적인 의미를 가지는가에 대해 설명하기 어렵다. 물론 요즘처럼 물질만능주의 시대, 모든 것을 돈의 가치로 평가하는 시대에도 그 누가 어떤 상대에게 절실한 사랑의 감정을 느꼈다는 것은 재력(財力)의 유무(有無)와는 상관없다는 이야기다.

다시 말해 문화를 창조하고, 이를 계승하고 인간의 위엄을 각성시킨, 역사상 모든 남성적 재능과 행위는 그 자체로서 여성을 강력하게 끌어당기는 아무런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 남자들의 세계에서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어느 일면이 오히려 여자들의 마음을 잡아끌고 있기 때문이다.

위대한 남성에 대한 여성들의 무관심에 대한 뚜렷한 예로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을 들 수 있겠다. 이 세기적 영웅은 젊은 날부터 수많은 여성들에게 열렬한 구애를 했지만 한 번도 여성의 사랑을 받은 일이 없다. 그의 아내 조세핀마저 처음엔 그를 외면했다. 끈질긴 구애 끝에 결혼에 성공했지만, 그가 지닌 야성적 인상과 남성적 매력이 그토록 많은 화가, 시인, 음악가, 조각가 등 당대의 예술가들에게 크나큰 영감을 주었을망정 수많은 여성들에게는 특별한 매력과 흥미를 불러일으킨 적이 없다는 사실이 남녀 간의 사랑이 갖는 신묘한 현실이다.

사랑만큼 인간을 온전케 하고, 사랑만큼 인간을 무지몽매하게 하고, 사랑만큼 인간에게 줄담배를 피우게 하고, 사랑만큼 인간에게 술을 적시게 하는 것이 또 있을까? 그러기에 사랑은 문학의 영원한 테마이자 주제였으며, 그것만큼 인류에게 큰 감동을 안겨줄 수 있는 문학적 테마는 있을 수 없었다. 인류가 생긴 이래 가장 강력한 문학적, 예술적, 철학적 테마는 사랑이었다.

독일의 저명한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그의 저서『인생론』에서 인간이 왜 사랑을 하는가, 그 사랑의 존재 이유와 의미에 대해 이렇게 설파한 바 있다.


“모든 사랑은 비극이든 희극이든 가장 엄숙한 것이며, 가장 많은 사람들이 악착같이 추구하는 인생 최대의 이슈이다. 그 이유는 사랑을 통해 자신들의 후계 세대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인류가 가진 종족 보존 본능의 행위가 바로 사랑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남녀 간에 엄숙하고 뼈에 사무친 사랑의 고뇌와 환락은 바로 인류의 종족 유지라는 대전제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남녀 간의 사랑은 반드시 애욕적일 수밖에 없다.

인간의 사랑은 절대적인 생존의지, 그 자체이다. 생존의지라니! 이 얼마나 대단한 말인가! 그것이 바로 내가 늘상 말하는, 살려고 하는 의지 그 자체이다. 그리고 살려고 하는 의지는 인간의 성욕을 통해서 그 분명한 의지를 드러낸다. 아울러 그것은 교묘하게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위장되어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에 목숨을 건 사람들의 위대성을 찬미하고, 노래하고 추앙하는 이유는 그것이 바로 절대적인 생존의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바로 그 뒤에는 인류의 종족 유지라는, 신이 인간에게 안겨준 절대적인 사명감이 함께 들어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의 연인에 대한 절대적인 사랑과 찬미가 그 아무리 훌륭하고 아름다운 시(詩)라고 해도 그 최종 목적은 오직 인류의 종족 유지라는 사명감을 완수하는 데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신은 인류가 지상에 오래 오래 살아남게 하기 위해서 인간에게 환상이라는 묘약을 심어주었다. 그것이 바로 사랑이다.”


쇼펜하우어의 주장에 따르면 남녀 간의 사랑은 우선 건강하고 체력이 뛰어나며 아름다움을 갖춘 상대를 선호하고 존중한다. 사람은 개성에 따라 이성에 대한 선호도가 다르겠지만 아름다운 상대를 원한다는 점에서 똑같다. ‘아름답다’는 것은 미적 감각을 말하고, 주관적인 경향도 강해서 한마디로 무엇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남자들이 예쁜 여자를 원하듯 여자들도 강건한 남자를 원한다. 그 이유는 이성이 종족 보존이라는 가장 순수한 형태를 간직하고 싶은 본능 때문이다.

또한 이성에게 작용하는 것은 자기에게 결핍된 부분을 채우려는 인간의 본능이다. 김혜수와 유해진 커플의 열애가 암시하듯 여자는 남자에게서 남자는 여자에게서 자신이 갖지 못하는 약점을 보완하고 싶어 한다. 따라서 이성은 자기와 정반대되는 결함(조건)을 찾아내어 기꺼이 매혹되어 버린다. 그것이 이해할 수 없는 남녀의 신비이다. 남자는 자신의 개성과 특질에 가장 잘 적응하는 여자를 바라며, 그런 여자가 나타났을 때 목숨을 바칠 각오로 희생적 사랑의 전사(戰士)가 된다. 남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를 발견하면 강렬한 애정의 욕구에 사로잡혀 결혼을 통해 그 여자와 누릴 수 있는 행복의 환상에 빠져 버린다.

그가 이루려는 욕망의 의지는 대단하다. 따라서 그 뜻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는 파멸도 서슴지 않는다. 남자는 사랑하는 여자를 손에 넣기 위해서는 어떤 무리한 결혼도 사양하지 않으며, 어떤 불명예를 초래하더라도 자신의 사랑을 쟁취하려고 노력한다.

그 이유는 인간의 생존의지가 본능적으로 종족 보존이라는 ‘기능’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이 조건이 잘 갖추어질수록 사랑은 더욱 강렬해지나 허나 세상은 남녀가 꼭 이상적인 커플로 서로 만나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그렇다 하더라도 남자는 자신의 특질을 가장 잘 적응할 수 있는 여자를 찾아내려고 은연중에 애쓴다. 수벌이 암벌에게 목숨을 바쳐 죽는 이유가 종족 유지의 본능인 것처럼 인간도 여기서 예외일 수 없다. 인간이 본능에 좌우되는 것은 거의 성욕뿐이다. 그것은 인류를 지상의 무대에 계속 존속시키려는 신의 의지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쇼펜하우어 생각과는 다른『인생론』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도덕주의자인 톨스토이는 쇼펜하우어의 ‘사랑론’과는 사뭇 다른 논조로 참된 사랑이란 이런 것이어야 함을 주장한다.



“남녀 간의 성적인 애정을 사람들은 모두 사랑이라고 이름 짓고 있다. 큰 잘못이다. 남녀 간의 애정은 그저 동물적인 소리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는 육욕(肉慾)이 우리들을 얽매어서 파멸로 이끌고 간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이에 대한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다. 동물로서 인간은 다른 여러 가지 종류의 존재와 투쟁하며 자기들의 종족을 번식시키기 위해서 자식을 만드는 일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성에 빛나며 사랑에 불타고 있는 인간은 다른 존재와 투쟁하지 말고 사랑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자기 종족을 번식시키기 위해서 자식을 만드는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청정결백(淸淨潔白)한 몸가짐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리하여 이러한 상반되는 두 가지 경향의 결합으로 말미암아 투쟁과 육욕에 기울어지는 본능과 사랑과 청정결백으로 기울어지는 두 가지 본능의 결합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생활은 필연적으로 오늘과 같이 되어 있는 것이다. 동물로서 인간이 필연적으로 지니고 있는 성적인 욕망과의 투쟁은 가장 어려운 투쟁임이 분명하나 우리 자신이 영적인 존재임을 끊임없이 자각하고, 이 강적에 대해 항상 경계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아무튼 톨스토이는 종족 보존이라는 인류의 보편적 기능을 인정하되, 남녀 간의 사랑은 성욕을 뛰어넘은 좀 더 고결한 형태이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왜 시인들은 저토록 끈질기게 사랑을 노래하는가?


한국 시문학사(詩文學史)를 살펴보면 그간 숱한 시인들이 사랑의 연시(戀詩)를 써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용운, 김소월, 이용악, 백석 시인 등이 주옥 같은 사랑의 시를 남겼으며, 지금도 시인들은 계속해서 사랑을 주제로 한 시를 창작하고 있다. 남녀 간의 사랑은 그 아무리 낡아빠진 통속적인 테마라고 해도 결코 버릴 수 없는 문학적 테마이자, 인류 공동의 자산이자 유산이기 때문이다. 또한 사랑은 인간이 인간으로 살게 하는 원동력이자, 가장 강력한 생존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동서고금의 역사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듯이 누구나 사랑에 눈뜰 때 그는 시인이 된다. 어느 날 사랑은 꽃잎처럼 눈보라처럼 왔다가 먼 기적소리처럼 애잔한 흔적을 남기고 사라져 간다. 젊은 날, 혹은 불혹(不惑, 나이 40세)과 지천명(知天命, 나이 50세), 때론 이순(耳順, 나이 60세)과 고희(古稀, 나이 70세)의 나이에 이른다 해도 사랑은 문득 찾아와 가슴을 설레게 만들고, 우리를 잠 못 이루게 한다. 나이 고희에 이른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스무 살도 안 된 샤롯데에게 자신의 명예를 내던지고 사랑을 고백했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랑이 어떻게 너에게로 왔는가.


햇살이 빛나듯이
혹은 꽃보라처럼 왔던가
기도처럼 왔던가.
말해보렴!

사랑이 커다란 날개를 접고
내 꽃 피어 있는 영혼에 걸렸습니다.
―릴케의 시「사랑이 어떻게 너에게로 왔는가」중에서




내 이마를 관통하는
순간의
고압 전류


온몸의
피가 빠진듯
막막한 현기 속에


아슬한
별빛이던가
그대 홀연히 있다
― 이승은의 시「그리움의 시」전문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의
그윽한 눈을 들여다볼 때
어느 겨울인들
우리들의 사랑을 춥게 하리
외롭고 긴 기다림 끝에
어느 날 당신과 내가 만나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 정희성의 시「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중에서




너에게 가려고
나는 강을 만들었다


강은 물소리를 들려주었고
물소리는 흰 새떼를 날려보냈고
흰 새떼는 눈발을 몰고 왔고
눈발은 울음을 터뜨렸고


울음은 강을 만들었다
너에게 가려고
― 안도현의 시「강」전문




너를 사랑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차마, 사랑은 여윈 네 얼굴 바라보다 일어서는 것, 묻고 싶은 맘 접어 두는 것, 말 못하고 돌아서는 것 하필, 동짓밤 빈 가지 사이 어둠별에서, 손톱달에서 가슴 저리게 너를 보는 것
문득, 삿갓등 아래 함박눈 오는 밤 창문 활짝 열고 서서 그립다, 네가 그립다, 눈에게만 고하는 것 끝내, 사랑한다는 말 따윈 끝끝내 참아내는 것


숫눈길,
따뜻한 슬픔이
딛고 오던
그 저녁
― 홍성란 시「따뜻한 슬픔」전문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 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 기형도의 시「빈 집」전문

자줏빛 꽃그늘에 앉아

한잔 술에 취하여
그대 고운 살결을 보노라면,
내 가슴 가득 차오르는
까닭 모를 슬픔.


아득한 봄날 저녁
나 이대로 죽어도 좋아!
― 김영현의 시「등꽃 아래의 사랑」중에서



어느 날 사랑은 문득 나에게로 찾아온다. 그것은 마치 햇살이 빛나듯이 혹은 꽃보라처럼 찾아왔고, 혹은 오랜 기도의 결과처럼 찾아왔는지도 모른다. 사랑을 노래한 음유시인 칼릴 지브란은 죽음과 마찬가지로 사랑 또한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고 말했다. 죽음처럼 강력한 새로운 생의 탄생의 결과로 다가오는 것이 바로 사랑이란 존재다. 사랑 없는 사람이란 꽃이나 열매 없는 나무와 같다. 또한 아름다움 없는 사랑이란 향기 없는 꽃이나 씨 없는 열매와 같다. 삶과 사랑과 아름다움, 이 세 가지는 한 몸이며 바꿀 수도, 나눌 수도 없는 무한하고 자유로운 존재들이다.

사랑이란 어느 순간 내 이마를 관통하는 고압전류와 같은 것이며, 온몸의 피가 다 빠져 나간 듯 막막한 현기증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그것은 아스라한 별빛처럼 내 영혼을 점령하고 만다. 그리하여 그것은 외롭고 긴 기다림 끝일망정 어느 날 나와 당신이 하나가 될 수 있다면, 매섭고 사나운 눈보라가 몰아치는 겨울인들 우리들의 사랑을 춥게 만들 수가 없다고 노래한다.

오직 사랑하는 그로 인해 그 아픈 시련 속에 흘린 울음은 결국 하나의 강을 만들어 오직 사랑하는 그에게로 도착하려고 한다. 오직 그 사람만을 사랑함으로써 상대를 온전히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사랑은 절망과 슬픔의 또 다른 이름이되, 그것은 더없이 따뜻한 슬픔이다. 사랑이란 사랑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사랑받는 사람까지도 고귀하게 만드는 신묘한 마력(魔力)을 지니고 있다.

사랑은 어느 날 갑자기 나를 성숙시키지만 또한 한없는 절망 속으로 빠뜨리기도 한다. 사랑을 상실하는 순간 삶에의 의지는 일순간에 꺾여 버린다. 이 때문에 사랑을 잃어버린 시인은 빈 집에 앉아 시를 쓸 수밖에 없다. 사랑의 상실은 모든 것을 잃어버린 그것이며, 사랑을 떠나보낸 집은 집이 아니다. 그것은 빈 집과 빈 몸이고, 빈 마음이다. 사랑의 열망이 사라져버린 나는 그러기에 ‘텅 빈 집’에 눈물로 살고 있으며, 그 빈 집은 그러기에 ‘죽음의 집’을 뜻한다.

기형도 시인은 우리가 사랑을 잃었을 때 그 모든 것들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으로 환원되어 버린다고 주장한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한때 찬연히 빛나던 사랑이 왜 일순간에 물거품이 되어 우리를 텅 빈 집에 가두어 두고 마는가?

사랑과 의심(오해)은 결코 가까워질 수 없는 사이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소유하지 않고, 또 누구의 소유가 되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사랑은 오직 사랑만으로 충족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고, 다만 사랑 자체를 갈망할 따름이다. 허나 두 사람의 사랑을 가로막는 암초들은 이 세상 곳곳에 파편처럼 널브러져 있다. 사랑을 가시밭길로 인도하는 파탄과 장애를 잘 견디어내고, 끝내 사랑을 오롯하게 완성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랑의 날갯짓 속에 숨어있는 예리한 칼날이 우리에게 견딜 수 없는 상처를 안겨주고, 그 신열의 아픔을 앙버티며, 상처뿐일망정 자신의 사랑을 믿고 간직해야 하나, 나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갈대처럼 흔들리며 자신의 사랑을 의심한다. 이 때문에 사랑하는 이의 얼굴과 그 고운 살결을 보노라면 이루지 못할 사랑 때문에 가슴속에 까닭 모를 슬픔이 차오른다. 사나운 폭풍우가 몰아쳐 저 뜰이 폐허가 되듯 사랑의 장애물은 우리가 간직해온 꿈의 알맹이를 산산이 흩어놓게 만든다.

사랑은 우리에게 더없는 기쁨과 환희만을 안겨주지 않는다. 가시면류관을 씌워주고, 혹은 그 사랑을 십자가에 못 박히게도 한다. 허나 아득한 봄날 저녁, 그게 사랑이라면, 나 이대로 죽어도 좋아!라고 외치게 만든 것이 또한 사랑의 마력인 것이다.




 정성태 시인이 노래하는 사랑법에 대하여 


  이제 우리는『나이 마흔 넘은 진짜 총각이 쓴 연애시』를 만나보자. 이 시집에 관통하고 있는 사랑의 미학은 플라토닉한 사랑이다. 사랑의 지고지순(至高至純)함을 노래하고 있으며, 사랑은 상대에 대한 동질적, 동량의 신뢰를 지닐 때 지속될 수 있음을 설파한다. 이 때문에 사랑에 대한 그의 기본적인 인식은 청정결백(淸淨潔白)한 몸과 마음가짐을 주창하는 톨스토이 류의 사랑법에 가깝다. 어찌 보면 교과서적인 이런 사랑에 대한 철학은 그가 나이 마흔이 넘도록 그만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찾아 왜 지금껏 헤매고 있는지 그 이유를 알 것도 같다.  





그대가 사랑을 꿈꿀 때
그대 삶은 보다 단순하고
그대 생각은 조촐한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대 사랑의 현란함과
사랑의 열락만을 갈망한다면
그때는 그대 차라리
저잣거리를 이리저리 떠도는
그 아무렇지도 않은 영혼을 찾는 게 옳으리.
(중략)


사랑은 결코 번잡함과 사변이 아닌
그대 스스로의 구체적 진실에 도달하기 위한
깨끗하고 담백한 것들의 총아임을
그리하여 그대 스스로가
온전히 녹아들기 위한
깊고 내밀한 일체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 「사랑을 꿈꾸는 그대에게」중에서


정성태의 이번 연시집은 우리에게 사랑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성찰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눈길을 잡아끈다. 그에게 사랑은 “신이 베풀어준 소중한 선물”이며, “당신 없이는 호흡조차 할 수 없는 운명의 영속성”이다. 아울러 그것은 “일상의 첫순간을 적시는 아침햇살”이며, “더없이 선하고 부드러운 천상의 선율”로 인식되며, “어느 순간에도 결코 마르지 않는 샘”이라고 그는 단정한다. 이 때문에 그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다짐한다.



설혹 모든 것이 변하여 간다 해도
비록 꽃이 피었다 속절없이 진다 해도
또 세월이 도리 없이 낡은 수레를 돌린다 해도
당신 곁에서 결코 처음 기도를 잊지 않겠습니다.
―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중에서


사람은 누구나 사랑하고 있는 이 앞에서 기꺼이 노예가 된다. 사랑하는 그를 위해 숱한 나날을 마음 졸이고, 내 사랑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절대자에게 눈물의 기도를 하면서까지 절대 무너질 수 없는 자신만의 견고한 사랑의 바벨탑을 쌓으려고 한다. 정성태 시인은 사랑이란 상대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함을 강조한다. 한 남자가 한 여자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이후 서로 육체적 관계를 갖게 되면 그 여자에 대한 호기심이나 집착력이 이전보다 현저히 떨어지게 된다. 그리고 그 여자를 진정으로 사랑한다 하더라도 한편으론 다른 여자에 대한 매력과 호기심이 생기기도 한다. 인간의 사랑이란 것도 한편으론 동물적 본능과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자는 다른 여자에 관심을 두고 그녀를 사랑하고자 했던 첫 마음을 잃어버릴 수 있다.

정성태 시인은사랑은/전 우주의 창고이며/결코 셈할 수 없는/거기 사랑이 머물 때/그 사랑은 숭고하다.”라고 단정 짓는다. 아울러 그는“사랑만이 오롯하여/믿음으로 충만할 때/사랑은 경이롭게 빛나며/다다르지 못할 것에 도달하는/위대한 힘의 원천이 된다.”라고 인식한다. 바로 이러한 인식은 하나의 상식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표정은 매우 진지하다.


사랑은 깊어갈수록
감사한 마음만 오롯이 자리합니다.
감사가 없는 사랑은
한낱 육체의 탐닉에 불과할 뿐입니다.


진실로 생명이 없는 사랑은
필연코 감사도 없는 까닭입니다.
―「사랑은 감사를 낳는 것」중에서



사랑은 상대에게 “감사한 마음” 을 갖지 않을 때 그 사랑은 필연적으로 파탄을 몰고 올 거라고 그는 주장한다. 그러나 사랑은 슬프고, 고독한 것이기에 “시린 바람결에 어디로 갈지를 몰라 허둥댄다. 답안 없는 미증유의 몽환 속에 오고 간다”(「내 사랑에 내리는 안개비」중에서).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도대체 한 남자(여자)가 한 여자(남자)와 평생을 같이 살라는 것은 누구의 법이냐?”라고 되묻지만 정성태 시인에게 그런 사랑법은 용납이 불가하다. 그에게 사랑은 순진무구한 본체이며, 한결같이 당신 하나만을 사랑하겠노라는 다짐이며, 그것은 “미리 쓰는 유서”와 같은 것이다.




당신 무릎에 내 머리 눕힌 채

한결같이 당신만을 사랑했노라는
내 이승에서의 마지막 말을 미리 전하노니


사랑하는 이여,
어느 훗날 당신과 내 사이를 가르는
신의 내밀한 부름을 받게 될 때


그리하여 설혹 내가 정신을 놓고
잠자듯 그대에게서 멀어지게 될지라도
다만 내 사랑의 깊이와 무게만은 기억해 주오.


내 눈금 없는 잣대로
가늠할 수 없는 사랑이기를 구하노니
부디 당신 무릎에 기대어 눈 감게 하오.

―「미리 쓰는 유서 」전문


사랑을 하지 않으며, 더는 상처 입지도 않고, 혹은 아픔을 겪지 않아도 되건만 인간은 기꺼이 그 고통을 감내하고 사랑을 하게 된다. 그러기에 인간은 주위의 환경과 조건에 의해 그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목숨까지도 버리려고 한다. 사랑이란 아름다운 묘약으로 인해 세상의 모든 가치를 희생해서라도 그것을 얻고자 한다. 원하던 사랑이 이루어지면 무한한 행복으로 여기며, 그 뜻을 이루지 못하면 가장 큰 비애로 고통을 받는다. 하지만 짓밟힌 사랑으로 인한 슬픔과 절망, 죽음마저도 정성태 시인은 “그 모두가 거룩한 이름이다”(「황혼」중에서)라는 깨달음에 도달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사랑은 불완전한 인간이 하는 것이기에 ‘사랑의 종언(終焉)’을 출현시키기도 한다. 한때 두 사람 간에 찬연히 빛나던 사랑이 왜 일순간에 물거품이 되어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가? 사랑의 파탄을 정성태 시인은 상대에 대한 ‘오해’ 때문에 비롯된다고 진단한다. 의심(오해)은 결코 사랑과 가까워질 수 없는 사이이며, “너와 나 사이에 놓여진 사악한 세력의 주술”이며, “사랑의 감미로움도/ 삶이 갖는 내밀한 울림마저/ 어느 한순간 파국으로 내몬다”고 그는 말한다. “진실은/ 황량한 공터에 내걸린 채/세상과의 소통을 거부당”하는‘오해’라는 악마는 끝내“믿음이 가차 없이 몰락하고/ 견디기 힘든 한낮의 현기증이/ 우리에게 남은 종언이 되고 있음을……” (「오해 그리고 슬픈 종언 」중에서) 그는 애달파 한다.


완전한 사랑은 그 무엇도 소유하려 하지 않고, 또 누구의 소유가 되지도 않는다. 사랑은 사랑 그 자체만으로 충만하기 그지없기 때문이다. 사랑은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고, 다만 사랑 자체를 채울 때 완전한 사랑에 우리는 도달한다. 허나 두 사람의 사랑을 가로막는 암초들은 이 세상 곳곳에 존재한다. 내 사랑을 가시밭길로 내모는 그 모든 장애와 파탄을 극복하고, 끝내 사랑을 완성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때문에 사랑의 가치를 노래한 다음과 같은 시편은 우리에게 하나의 금언(金言)으로 다가온다.


때로 침묵의 시간을 지니라.
침묵이 주는 언어는 근원을 향한다.
그 속에서 우리는
신의 뜻을 가장 잘 깨달을 수 있게 된다.


세상은 평화롭지만 않다.
인생도 늘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어쩌면 슬픔과 괴로움을 견디어내는
숱한 인내의 여정이며 시험일 수 있다.


계절이 바뀌어 날이 풀리면
죽은 것 같던 줄기에서 새 싹이 돋는다.
맡겨진 시련을 견디어 낸
연단과 기다림의 결실인 것이다.


그대가 사랑을 할 때에도
사랑의 즐거움만을 탐하지 말라.
그대의 그 사랑으로 인해
오히려 상처 받을 수 있음을 기억하라.


그러나 사랑은 사랑의 이름으로
기꺼이 그대의 사랑을 도우리니
혹여 사랑의 슬픔이 깃들지라도
오직 그대 마음의 사랑만을 확신하라.
―「삶의 오솔길에서 」전문


대저 우리가 사랑이라 부르는 이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욕망의 끄나풀인가 혹은 살과 뼈들이 부딪혀 우는 한밤의 아우성 소리인가? 삶의 표정 뒤에 문문히 숨어 있고, 우리네 생활 깊은 곳에 살아있는 이 신비한 비밀은 무엇이란 말인가. 모든 결과에 대한 원인과 모든 원인에 대한 결과로서 주어진 이 엄청난 해방과 굴레는 무엇인가? 삶과 죽음과 내 못 다 한 일상을 온종일 끌어안은 채 거기서 꿈을 꾸게 해주며, 삶보다 더 오묘하고 죽음보다 더 깊은, 이 사랑이라는 존재…… 한 영혼이 사랑의 투명한 손길을 느낄 때 그 누가 이 지독한 삶의 굴레에서 문득 깨어나지 않겠는가?






이승철 약력
이승철 시인은 1958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나 함평에서 성장했다. 1983년 시전문지『민의』제2집으로 등단했다. 주요 시집으로『당산철교 위에서』『총알택시 안에서의 명상』『세월아, 삶아』등이 있고, 산문집으로『58개띠들의 이야기』등이 있다. 민족문학작가회의 사무국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한국문학평화포럼 사무총장, 한국작가회의 이사, 화남출판사 편집주간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