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태 [칼럼]

징기스칸이 띄우는 편지/정성태

시와 칼럼 2009. 6. 28. 17:02
728x90

- 만인에게 꿈을 주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앞장 서는 지도자가 아쉬운 때 -


인류 전쟁사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정복한 사람이 징기스칸이다. 특별히 그의 군대인 몽고군이 서양인에 비해 체구가 작은 동양인이란 점 그리고 병사의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놀라운 성과를 일궈 냈다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유럽의 알렉산더나 나폴레옹이 이끄는 체격 좋은 서양 군사들에 의한 영토 침탈을 모두 합한 것보다 더 광대한 땅을 징기스칸이 접수했다는 것은 그에게 뭔가 특별한 다른 점이 있다는 뜻임에 분명하다.


징기스칸의 무용담을 얘기하다 보면 대체로 사람들은 그가 지녔던 불굴의 용기와 신념을 빼놓지 않고 말하게 된다. 물론 올바른 인식이고 또 사실이 그렇다. 징기스칸은 남다른 용기와 신념을 지닌 사나이 중에 사나이였음에 분명하다.


그러나 용기와 신념만 있다고 해서 누구나 징기스칸과 같은 뛰어난 성과를 이룰 수 있을까? 물론 그렇지 않다. 용기와 신념은 필수 불가결한 사항임에 분명하지만, 그러나 이와 함께 다른 요인을 충족시켜야만 한다.


지략과 덕망이 있어야 하고 또 충심 있는 주변인이 함께 할 수 있어야 한다. 징기스칸에게는 이러한 여러 장점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에게 있어 가장 눈 여겨 볼 수 있는 대목은 그와 함께 한 부하 중에 단 한 명도 그를 배신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단서를 발견하게 된다. 징기스칸은 그와 평생을 함께 한 8명의 부하 가운데 어느 누구도 배신하지 않았으며 아울러 그의 부하들 역시 징기스칸과 함께 죽을 때까지 고난과 영광을 함께 했다.


아울러 그는 명분을 중시했다. 명분이 있어야 확고하게 지배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또한 그는 자신의 실패를 다른 사람에게 돌리지 않았다. 그런지라 자신의 실패를 복기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으며 이를 통해 실수를 최소화 할 수 있었다.


작금의 우리 정치판을 보면서 새삼 징기스칸의 신의와 현상에 대해 책임지는 자세가 돋보이는 연유는 무엇일까? 온갖 배신과 패륜적 음모가 판치는 정치판의 한 복판에서 새삼 그의 지도력이 부러운 까닭이리라.


남 탓 하느라 허송세월 보내는 이가 만일 우리 시대에 있다면 그는 필히 징기스칸을 되돌아보았으면 하는 바람 크다. 사악한 거짓이 자신에게 닥친 당장의 위기는 모면할 수 있을지 모르나, 결국 스스로를 더욱 곤경에 처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으면 한다.


"적은 밖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란 그의 유명한 말이 왠지 정교하게 날아가는 부메랑처럼 우리 사회 곳곳을 암울하게 떠돌아다닌다. 만인에게 꿈을 주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앞장 서 모범을 보였던 징기스칸, 그의 사내다운 모습이 오늘의 정치 상황에서 그 어느 때보다 그립게만 다가온다.


2005년 8월 10일


시인 정성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