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태 [칼럼]

피 묻은 손을 닦으며/정성태

시와 칼럼 2009. 5. 3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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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새벽,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골이 그의 고향인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의 사저 뒤편 봉화산 정토원에 안치됐다. 49재를 마치게 되면 사저 부근에 조성된 묘역에 비석과 함께 안장될 것으로 보인다. 가난이 뼈에 사무쳤을 그 유년의 땅에 한 줌 재로 영원히 잠들게 되는 셈이다.


그를 사랑했던 이들에게는 실로 애석하고 비통한 일임에 분명하다. 설혹 그를 비판했던 이들이라 할지라도 인간적인 측은지심은 지녔으리라. 아울러 그에게 냉담했던 이들 또한 공히 같은 마음이었으리라 여긴다. 그 직위 여부를 떠나 한 사람의 생명이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은 누구에게나 슬픈 일이기 때문이다.


우선 검찰의 수사 태도를 질책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누구든 잘못이 있으면 그 신분 여부를 막론하고 만인이 법 앞에서 평등해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그럼에도 검찰에 대한 세간의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는 데는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직접적 문제가 되고 있는 640만 달러를 비롯한 이런 저런 사안들에 대해, 이를 언론에 시시각각 흘림으로서 피의자에게 인격적으로 견디기 힘든 상황으로 내몰았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에 대해 법무부 장관은 물론이고 검찰총장 그리고 중수부장과 수사기획관에 대한 책임 여부는 명확히 따져 물어야 하는 대목임에 분명하다. 이명박 대통령 또한 도덕적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는 것이 대체적인 국민 정서로 읽히고 있다. 피의자의 인격적 측면도 적절히 고려하는 가운데, 불거진 의혹에 대해 철저히 조사해서 수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그에 상응하는 법적 책임을 물었다면 족할 일이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검찰에 있는 중수부 폐지도 다시금 심도 깊게 논의되어야 할 상황이다.


문제는 또 있다. 언론의 보도 태도에 대해서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무슨 가십 기사 다루듯 혹은 스포츠 중계하듯 릴레이식 기사를 남발했다는 점에서 비판 받기에 충분하다. 아울러 언론이 그 역할을 수행함에 있어서 검찰의 시간 끌기 수사가 어떤 정치적 의도에 따라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일제히 모르쇠로 일관한 채 그저 흥밋거리 위주로 시종일관했다는 점이다.


이쯤에서 지난날을 되돌려 본다. 진보적 유권자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제 16대 대통령에 당선된 노무현, 그의 정치적 원칙과 소신 그리고 민주주의와 정의에 대한 불타는 열망 아울러 서민과 약자에 대한 따뜻한 시각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의 행적은 그를 열렬히 응원하고 사랑했던 지지자들에게 뼈에 사무치는 배신감과 끝없는 절망을 안겨주었던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민족문제의 진일보한 성과로 평가 받고 있는 햇볕정책을 한나라당과의 공조를 통한 특검으로 난도질한 점. 6.15 선언 3주년 기념식이 열리던 날,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데도 불구하고 골프 삼매경에 빠진 채 참석하지 않았던 점. 기상관측 이래 가장 강력한 태풍 ‘매미’가 온 나라를 할퀴고 있는 와중에서도 가족과 함께 태평하게 오페라 관람을 하였던 점.

 

부안방사선폐기장 부지선정과정에 있어서 이를 반대하는 지역민들에 대한 폭압적 진압은 지난 군사독재 시절로의 회귀를 의심케 할 정도였다는 점. 이라크에 전투병을 파병한 것도 모자라, 김선일 씨가 인질로 잡혀 있는 상황에서도 서둘러 추가 파병을 약속해줌으로서 젊은 목숨이 죽음을 맞아야 했던 점. 집권 3년여 만에 수도권 아파트 값이 3배가량 오름으로서 서민에게 끝없는 상실감을 안겨다준 점.

 

국보법 개폐논의에 있어서 일점일획도 개선시키지 못한 채 지금에 이르고 있다는 점. 각종 사치품에 대한 특소세를 폐지함으로 발생되는 세수부족을 서민의 애용품인 담뱃값과 소주가격을 올려 충당했다는 점. 청년실업자 문제가 큰 사회적 갈등으로 대두되자, 이는 개인의 능력 문제라며 청년 실업자의 가슴에 대못을 두들겨 박았던 점. 집권 중반기를 거치면서 지지도가 바닥을 보이자, 인터넷 종량제를 통해 네티즌들의 입을 봉쇄하려들다 거센 항의를 받고 미수에 그쳤다는 점.

 

권력을 통째로 내주겠다며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을 추진하려 함으로서 도대체 무엇 때문에 대통령에 당선되었는지를 의심케 했다는 점 등과 같은 크고 작은 일련의 정치적 행보들을 통해 그를 지지했던 이들이 차츰 이탈하게 되었고, 이는 그에 대한 적극적 비판자로 돌아서게 하였던 결정적 요인들이 되었음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진보적 유권자 혹은 뭔가 세상이 크게 불평등하고 또 어긋난 형태로 이행되고 있다고 여기는 이들의 깨끗한 분노와 울분이 헛된 것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오늘을 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 우선 요구되는 것은 지난날의 실수와 오만으로부터 보다 겸허한 마음으로 이를 복기하며 또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우리사회의 각기 다른 이해 당사자 간의 반목과 충돌에 대해 이를 어떻게 해소하는 가운데 국민통합을 이뤄나갈 것인지를 함께 고민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진보적 유권자는 물론이거니와 또 여전히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애정을 보내는 이들이 해야 할 일이며, 이를 통해 우리 정치가 보다 선진화되고 또 민주주의가 보다 성숙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래서 다시는 우리 역사에 작금의 사태와 같은 막다른 선택이 강요되는 불행한 일은 사라져야하기 때문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시인 정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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