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태 [칼럼]

도전과 응전/정성태

시와 칼럼 2009. 3. 26.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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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그의 저서 [역사의 연구]에서 “도전과 응전의 조우 속에서 창조가 이루어진다.”고 밝히고 있다. 개인이나 조직에게 직면한 갖가지 형태의 도전과 시련 앞에서 이를 어떻게 대응하고 극복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굳이 토인비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참으로 중대한 일임에 틀림없다. 이를 통해 어떤 개인이나 조직의 흥망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척도가 될 수 있음도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사실 인간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그의 삶을 살아가면서 숱한 고난과 역경에 처하게 된다. 이는 조직에 있어서도 결코 예외가 아니다. 인간사회 전반에 거쳐 적용될 수 있는 피할 수 없는 과정인 것이다. 그러나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현재 스스로가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분명한 목적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리고 고통을 참고 견디어 내는 의지력과 함께 실천역량이 뒤따라야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그 개인과 조직의 성패가 결정되는 것이다.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진리 역시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는 점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생성과 소멸의 반복 앞에서 어떤 이는 위기를 기회로 삼을 줄 아는 지혜로움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이는 좋은 기회를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우두커니 날려 보내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경우도 있다. 성공에 이른 사람이나 조직은 늘 변화하는 세상 구도를 간파하고 그러한 변화 속에서 혼신의 힘을 경주해 스스로를 방어하거나 또는 쟁취해 내는 것이다.


영국 속담 가운데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말도 있다.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말 가운데도 이와 유사한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란 것이 있다.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다한 후에 하늘의 도움을 바래야 함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한결같을 것이다. 특히 조직의 경우에는 상호 유기적인 의사소통과 함께 이를 통한 원활한 협력체계가 이뤄져야 함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개인이나 조직이 당면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고서 어떤 좋은 결과를 기대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바람이며 아울러 그만큼 어려운 일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때로 쓰라린 패배를 맛보아야 하는 경우에 처하기도 한다. 이럴 때 느끼는 상실감은 대부분의 경우 크고도 깊게 각인되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점이 있다. 그것은 지금 눈에 보이는 현상에만 너무 지나치게 매몰되어서는 곤란하다는 사실이다. 패배 앞에서도 새로운 용기와 희망의 끈을 다시금 발견할 줄 알아야 한다. 어떤 고난과 시련 앞에서도 이를 극복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과 강인한 의지로 임하게 되면 지금의 불행이 오히려 더 큰 행복으로 바뀔 수도 있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세상만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도 하질 않던가? 오늘의 불행이 또 어떻게 내일의 희망이 될 수 있을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이러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오늘 자신에게 닥친 불행에 대해 너무 집착하는 우를 범하지는 말아야 한다. 실패했다고 무한정 의기소침해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오히려 좌절의 아픔을 겪은 사람이 다시금 새로운 의지를 다질 때, 이는 강력한 힘의 원천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역경과 고통을 잊지 않고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계기로 삼는 자세를 통해 더 큰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뒤집기라는 기묘한 씨름 기술도 있지 않는가? 우리의 인생 여정에 있어서도 언제나 가능한 일임을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한다. 상황을 반전시키는 뒤집기야말로 참으로 짜릿하고 황홀한 기쁨으로 다가서게 된다. 인류사에 있어 결코 오늘만 존재하거나 또는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깊이 자각하고 도전과 응전의 변화에 스스로를 적극적으로 내어 맡겨야 한다. 그리고 최선을 다하는 가운데 하늘의 도움을 구해야 하는 것이다. 고난과 역경에 굴하지 않고 이에 맞서 싸우는 불굴의 자세를 지녀야만 비로소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기회에 한층 가까이 다가설 수 있게 된다는 점을 깊이 새겨야 한다.


시인 정성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