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태 [칼럼]

각주구검(刻舟求劍)/정성태

시와 칼럼 2009. 3. 24. 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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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방의 치료법 가운데 하나인 침술이란 것이 있다. 우리 주변에서 간혹 얼굴이나 입이 돌아가고 비뚤어지게 되는 구안와사란 질병을 침으로 손쉽게 치료하는 것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중풍으로 오랫동안 거동이 불편한 환자가 뛰어난 침술사의 도움으로 많은 차도를 나타냈다는 보도도 접하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침술법이 오늘날에는 서양에서도 하나의 학문 분야로 자리 잡고 있다.


한방의 주장에 따르면, 인체는 늘 기혈(氣血)의 순환이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기가 모여드는 곳을 경혈이라고 일컫는다. 이러한 경혈이 고장 나고 기혈의 순환이 막히게 되면 병이 된다. 물론 교통사고와 같은 급격한 외래적 요인에 의한 것은 예외다. 그러나 대부분의 질병이 차츰차츰 진행 과정을 통해서 생겨난다.


그런데 정작 주의해야 할 점은 기혈의 잘못된 흐름으로 인해 생긴 질병을 역으로 추적해 이를 바로 잡아가는 과정이다. 인체에 기혈의 흐름을 바로 만들어 줌으로써, 병이 되고 있는 근본 원인을 침법으로 해소시켜 이를 통해 본래의 건강을 회복시켜줘야 한다. 양방의 해부학이나 신경계와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오늘날에도 사람들로부터 꾸준한 호응을 얻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침을 놓는 자리가 정확해야 한다. 자칫 침을 잘못 찌르게 되면 그야말로 선무당이 사람 잡는 꼴이 된다. 정확한 자리에 침을 찌르지 않고서는 질병을 치료하기 보다는 오히려 질병을 악화시키거나 또는 사망에 이르게 하는 엄청난 부작용을 낳게 된다.


따라서 질병을 치료하고 인명을 살리는 뛰어난 침술사가 되기 위해서는 그만큼 각고의 노력이 뒤따라야 함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런지라 침술사로써 충분히 검증된 사람이어야 함은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어떤 조직을 운영하는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의 자세도 당연히 그러하다. 현상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해법을 찾지 못하게 되면, 그로 인해 그 조직 구성원 전체가 큰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이와 딱히 정확한 비유는 아니겠지만 각주구검(刻舟求劍)이란 고사성어가 있다. 판단력이 둔하여 세상일에 어둡거나 또는 어리석게 구는 사람을 일컫는다. 아울러 시세의 추이도 모르고 눈앞에 보이는 하나의 현상만을 고집스럽게 주장하는 처사를 빗대어 부르는 말이기도 하다. 사회 환경의 변화를 인식하지 못한 채 어떤 고정관념만을 지나치게 내세우는 사람을 지적할 때에도 같은 말이 사용된다.


이와 관련한 우화를 살펴보는 것도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하나의 삶의 지혜가 될 수 있겠다. 춘추전국시대의 일로 초나라의 한 청년이 배를 타고 양자강을 건너고 있었다. 배가 강 한복판에 이르렀을 때 그만 실수로 손에 들고 있던 보검을 강물에 떨어뜨렸다. 청년은 허겁지겁 자신의 허리춤에 차고 있던 단검을 빼 들고 보검을 떨어뜨린 그 뱃전에다 표시를 해 두었다. 이윽고 배가 나루터에 닿자 청년은 표시를 해 두었던 뱃전의 물밑으로 뛰어 들어가 보검을 열심히 찾았으나 배는 이미 멀리 이동해 온 상태였다. 당연히 그 자리에 보검이 있을 리 만무하다.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자신의 주장에 대한 적절한 때와 장소 또는 나아가고 들어 올 때를 구분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된다. 욕심이 앞서다 보면 생각과 판단력이 마비되고 그로 인한 일탈과 부침만 드세게 나타나게 된다. 지금 혹여 내 자신이 각주구검의 어리석음을 자초하고 있지는 않는지 깊이 살펴 볼 일이다. 


2004년 8월 11일


시인 정성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