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태 [칼럼]

미개한 공권력과 참혹한 죽음/정성태

시와 칼럼 2009. 2. 8. 0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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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 전 무렵에 지리산 종주를 했던 적이 있다. 서울에서 오후 3시쯤 출발한 버스가 노고단에 도착할 쯤에는 해가 길었던 여름인데도 불구하고 칠흑 같은 어둠이 깔려 있었다. 일행은 각자 손전등에 의지하여 노고단 산장까지 20여 분 가량을 걸어 올라갔다. 이때 들었던 묘한 기분이란 지금에 이르러서도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노고단에서 시작하여 백무동 계곡으로 내려오는 3박 4일 간의 지리산 종주를 통해 참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지만, 지금도 뇌리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는 것은 자연 속에 충만한 질긴 생명력이었다. 그 생명력에 대해 말로는 이르지 못할 경외심이 출렁거렸다.


온통 바위덩어리 뿐인 그 위에 어떻게 된 일인지 신기하게도 뿌리를 내린 채 자라는 소나무, 그런가하면 정확한 학명을 알 수 없는 나무도 바위 위에서 꿋꿋하게 생명을 길러내고 있었다. 들의 풀 한 포기라 할지라도 창조주께서 그 생명을 기르신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이렇듯 20여 년 전의 기억을 장황하게 끄집어내는 데는 사실 다른 이유가 있다. 콩나물을 기르겠다고 의도한 바는 전혀 아니지만 필자가 거처하는 누추한 곳간 싱크대의 망으로 된 물 빠지는 곳에서 며칠 전부터 콩나물이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보면서 생명에 대한 전율 같은 것이 느껴진 때문이다.


가만 생각해보니 이유가 있다. 한 달 전쯤에 어느 분께서 콩(서리태)을 선물해 주셨는데, 밥할 때 넣기 위해서 씻는 중에 두 알이 그곳으로 떨어졌던 모양이다. 키가 무럭무럭 자라서 이제 더는 크고 있지 않지만 싱싱한 모습은 여전하다. 컵에다 옮겨줄까 생각하다, 그냥 제 자리에 두고 있다. 그곳이 녀석과의 인연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최근 서울 용산의 어느 재개발 지역에서 5명이나 되는 사람의 목숨이 불에 의해 참혹하게 숨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턱없이 부족한 보상비에 항의하다 끝내 목숨마저 잃게 되는 일이 대한민국 수도 한 복판에서 벌어졌다. 경찰의 무리한 진압작전과 용역회사에서 고용한 사람들의 개입이 있었음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문제는, 그 엄청난 비극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통탄스런 현실이다. 자연재해로 인해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고 할지라도 모두가 슬퍼하고 안타까워 할 일일 것이다. 그런데 그도 아닌 공권력에 의해 5명이나 되는 사망자가 발생했는데도, 이에 대해 정부 여당은 물론이거니와 경찰 당국에서도 진심어린 사과와 보상을 거론하기는커녕 오히려 사태의 본질 흐리기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가하면 이와는 대조적으로 서울 송파에서는 군 항공기 운항 시 충돌사고의 위험이 크게 도사리고 있는 곳에 초고층 건물을 짓도록 허가해주는 행정 당국의 어처구니없는 결정이 있었다. 전역한 공군 장성 대부분과 현역 조종사 다수가 그 위험성을 예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찌된 영문인지 그와 같은 결정이 내려졌다.


국방력 약화로까지 귀결될 수 있는 일을 롯데그룹이라는 재벌에게는 태연히 눈감아 주는 한없이 관대한 행정력이, 어찌하여 서민 중산층에게는 그토록 살벌한 공권력을 휘두르는지 참담한 마음이 앞서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 정치와 행정이 이토록 미개한 상태에 언제까지 놓여 있을 것인지 심각한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천하의 그 무엇으로도 사람의 생명과 그 영혼을 살 수 없다는 명백한 사실을 이명박 대통령을 위시한 청와대 그리고 정부 여당과 경찰 당국은 깨달을 일이다. 아울러 이명박 대통령의 명확한 사과는 물론이거니와 책임자 처벌 또한 필수 요건이라 하겠다. 또한 유가족에 대한 명예회복과 보상 등의 납득할만한 후속조치도 시급히 따라야 할 사안이다.


시인 정성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