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태 [칼럼]

기뻐할 수 없는 한국의 WBC 준우승

시와 칼럼 2009. 3. 25. 02:17
728x90

- 공은 둥글다지만 밋밋하게 한 가운데로 던져서야 -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결승전이 일본의 우승과 한국의 준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아시아 야구가 세계 야구의 최정상에 서 있음을 보여준 쾌거이기도 하다. 한국 야구 또한 세계 야구의 최정상으로 평가 받을만한 장족의 발전을 이루었음을 보여준 빛나는 성과이기도 하다.


그러나 칭찬만 하기에는 한국 야구가 안고 있는 분명한 맹점이 들여다보인다. 결승까지 올라오는 과정에서 지적된 주루 플레이 실수와 같은 사안은 차치하고라도, 특별히 일본과의 결승전만을 놓고 볼 때에는 그 심각성이 더하게 된다.


24일 열렸던 결승 경기의 연장 10회 초, 일본 공격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일본 주자가 2루와 3루에 나가 있었고, 1루는 비어 있었으며 아웃 카운트는 2아웃이었다. 타석에 나선 선수는 일본이 자랑하는 1번 타자 ‘이치로’였다. 볼 카운트는 2스트라이크 1볼로 한국의 임창용 투수가 무리한 투구를 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는 상황이었다.


일본 선수 가운데 가장 정교한 타력을 갖추고 있는 1번 타자 ‘이치로’가 타석에 나섰고, 또 2스트라이크 1볼까지 잡아 놓고 있는 상태여서 무려 3개의 유인구를 더 던질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더욱이 1루가 비어 있는지라 최악의 경우 사사구로 내보내도 되는 시점이었다. 그런 후 만루 작전으로 끌고 가도 하등 이상할 게 없었다.


그런데 TV 화면 속에 비친 포수의 자세는 정 중앙이었다. 그리고 글러브도 스트라이크존 한 가운데로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이를 보는 순간 불길한 예감이 번뜩 머리를 스쳤다. 이내 투수의 공이 정직하게 포수의 글러브로 향하는 것을 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를 일본 최고의 교타자가 그냥 놔둘 리 만무했다. ‘이치로’의 방망이가 돌아감과 동시에 한국이 졌다는 예단을 하게 됐다. 그리고 결과는 클린 히트로 이어지며 2점을 내줬다.


WBC 결승전에서 한국이 패배한 단적인 이유를 들라면 임창용 투수의 생각 없는 야구에서 기인한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그것을 제대로 견인해내지 못한 포수 강민호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그것이 차라리 투수의 실투에서 비롯된 것이거나 또는 투수의 훌륭한 투구를 타자의 뛰어난 타력에 의해 이뤄진 것이었다면 오히려 쉽게 패배를 인정할 수 있다. 그리고 한국의 준우승을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다.


문제는 ‘이치로’에게 안타로 허용된 그 밋밋하기 짝이 없던 임창용 투수의 공이야말로, 야구 동호회 수준의 타자라 할지라도 좋은 타격으로 연결 지을 수 있을 정도였다. 적어도 야구 경기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임창용 선수이고, 일본 프로 무대에서까지 활동하는 실력을 갖추고 있는 그가 왜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지른 것일까.


한국이 준우승에 머문 결과를 책망하고자 함이 결코 아니다. 그 내용에 있어서의 무모하고 어리석기 짝이 없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타자가 공격하기 용이하도록 헌납한 바나 다름없는 그 한 개의 공에 대해 임창용 투수는 어떠한 변명으로도, 또 어떠한 구실로도 자신을 합리화 할 수 없다. 오히려 한국 야구팬 모두에게 깊은 상처를 안겨줬음을 기억해야 한다.


시인 정성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