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태 [칼럼]

구천과 범려/정성태

시와 칼럼 2009. 5. 3.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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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월나라 범려는 오늘날에도 인구들 사이에서 널리 회자되고 있는 인물이다. 의리와 지조가 굳고 충성심이 강하며 지략이 뛰어난 인물로 현대인에게도 귀감으로 삼을만한 흠모의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자신의 이해득실만을 좇아 아무렇지도 않게 이리저리 정당을 옮겨 다니는 우리의 정치 현실과 비춰 볼 때 참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범려는 어려서부터 총명하였을 뿐만 아니라 풍부한 학식과 경륜을 갖춘 사람이다. 정치와 군사는 물론 경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있어서 통달한 출중한 인재였다. 그럼에도 세상 사람들은 특출한 그의 재능을 정확히 헤아려보지 못하고 마치 미친 사람 취급하였다. 이에 세상에 대한 미련을 모두 버리고 미치광이 마냥 그저 강호를 떠돌아 다녔다. 이 때 월나라의 대부로 있던 문종의 눈에 띄어 구천에게 천거된다. 구천 역시 범려의 인물됨을 보고 곧장 대부로 중용한다.


때는 춘추전국시대 후기로 각 제국들 간에 패권을 다투던 시기다. 특히 오나라와 월나라가 서로 대치하며 두 나라간의 전쟁이 자주 발생하였다. 그러다 월나라의 국력이 차츰 오나라보다 약해져 급기야 월나라는 오나라에 조공을 바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 무렵 월나라 왕으로 구천이 즉위하면서 오나라에 대항하기 위한 군대 양성에 힘을 쏟게 된다. 이를 불쾌하게 여기던 오나라 왕 부차는 더욱 강력한 군대를 육성하여 월나라를 공격할 기회를 엿보게 된다. 그러자 초조해진 월나라 왕 구천은 오나라로부터 공격을 당하기 전에 먼저 공격할 것을 결심하게 된다.


당시 오나라 왕 부차는 그의 아버지 합려가 월나라와의 전투에서 손가락에 화살을 맞고 부상을 당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악화돼 끝내 사망한 상태인지라 끓어오르는 치욕과 원한이 사무쳐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에 대한 복수의 칼날을 갈면서 전쟁을 준비해 왔던 터라 병사들의 사기는 드높고 용맹하기 그지없었다.


이를 잘 알고 있던 범려로서는 지금 당장의 무리한 공격보다는 이를 잠시 피하여 방어를 견고히 하면서 때를 기다릴 것을 건의하였으나 일언지하에 거절당하고 만다. 그런 범려의 말을 듣지 않고 오나라 공격을 감행한 구천은 결국 대패하게 되고 얼마 남지 않은 군사와 함께 오나라 군대에 포위당하고 만다.


범려의 전략을 따르지 않은 구천은 그제야 때늦은 후회를 하며 범려에게 대책을 숙의한다. 그러자 범려는 지금의 상황은 죽음을 면하는 것이 우선 급한 일이라며 지금 당장의 치욕이 따른다 할지라도 그러나 최대한 자세를 낮추고 후일을 도모할 것을 권한다.


다른 뾰족한 수가 없는지라 구천은 문종을 파견하여 오나라에 화의를 청하지만 실패로 돌아가게 된다. 이에 구천은 죽음을 각오하고 오나라와의 마지막 결전을 불사할 것을 작정한다. 그러자 범려와 문종은 그러한 구천에게 현재의 정세를 냉정하게 분석해 주며 다른 방법을 모색할 것을 강력하게 권한다. 하는 수 없이 구천은 오나라 왕 부차와 신하들에게 많은 미녀와 무수한 금은보화를 바친 후에 오나라 군대의 포위망에서 겨우 풀려나게 된다.


오나라 군대의 포위망에서 풀려난 구천은 남은 군사를 데리고 월나라로 돌아가게 된다. 그러나 구천은 국가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음을 한탄하며 범려에게 모든 국정을 맡기고 오나라의 인질로 길을 나서고자 한다. 그러자 범려 또한 국정을 문종에게 맡기고 자신도 함께 오나라에 따라갈 뜻을 밝힌다.


그리하여 구천은 범려와 함께 오나라의 왕 부차에게 미녀와 갖은 재물을 바치고 최대한 신하의 예를 갖춰 부차의 환심을 얻는다. 그러자 부차는 그들을 죽이지 않고 석실에 가두어 말을 기르는 노역을 맡긴다. 그리고 부차가 수레를 타고 사냥을 떠날 때마다 구천은 채찍을 들고 부차의 마차를 호위하며 따라다니게 하는 수모를 겪게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부차가 구천과 범려를 함께 부른 자리에서 범려를 회유하고자 한다. 그러나 범려는 지금의 생활에 지극히 만족하고 있다며 구천의 청을 완곡히 사양한다. 물론 지조를 지키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구천의 경계심을 허물기 위함이기도 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구천과 범려는 인질로 잡혀 온 이래 아무런 불평불만도 하지 않고 오로지 마부 일과 마당 쓰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고 맡은 바 일을 성실히 수행하였다.


그러자 부차는 이를 기분 좋게 여기고 마침내 구천과 범려를 석실에서 나오게 하여 근처 민가에 살도록 하였다. 그리고 인질로 삼은 지 3년여 만에 부차는 구천과 범려를 풀어 줘 월나라로 돌아가게 한다. 오나라에서의 인질생활을 마치고 월나라로 돌아 온 구천은 와신상담하며 범려에게 월나라를 발전시키기 위한 방법을 구한다.


이에 범려는 무슨 일을 하기 위해서는 미리 각종 정책과 전략을 세워 대처해야 하며 무엇보다 먼저 백성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며 구천에게도 직접 들에 나가 백성들과 함께 농사를 짓도록 청했다. 구천의 부인에게도 직접 베를 짜면서 백성들과 고통을 함께 나눌 것을 권하며 이런 가운데 백성이 기쁜 마음으로 국가의 동원에 응할 수 있도록 하였다.


아울러 인재를 널리 등용하고 군대를 양성하는 일에도 나태함이 없어야 한다며 부국강병을 이룰 수 있도록 하였다. 대외관계에 있어서도 약소국에게는 친절하게 대하고 강대국에게는 표면적으로만 유순한 입장을 취함으로써 적국으로부터의 경계심을 최소화했다. 그리고 오나라에 대해서도 그들의 힘이 쇠약해질 때를 기다렸다가 일거에 멸망시켜야 한다는 책략을 세웠다. 그 결과 월나라는 점점 백성의 생활이 안정되고 국력도 강해졌다. 이에 때가 이르렀다고 판단한 구천은 지난 날 오나라에 대한 치욕과 원한을 씻고자 하였다. 그러나 범려는 아직 상황이 무르익지 않았다며 좀 더 기다릴 것을 간청한다.


그러던 어느 날 범려는 구천에게 오나라의 국력을 쇠퇴하기 위한 계책을 내 놓는다. 오나라를 쳐부수기 위해서는 일단 금은보화와 미녀로 오나라 왕을 안심시켜 월나라에 대한 경계심을 허물어트리고 내부적으로는 월나라의 군사력을 더욱 정예화 시켜 나라를 부강하게 할 것을 간했다. 구천은 범려의 의견에 지금의 조급함을 잠시 뒤로 미루고 범려로 하여금 세간의 미인을 찾게 하였다. 범려가 이 때 찾아 낸 절세미인이 바로 서시란 여인이다. 범려 자신이 직접 찾아 낸 미녀 서시는 월나라에 대한 애국심이 매우 뛰어난 여인이었다. 범려는 그런 서시로 하여금 온갖 금은보화와 함께 오나라 왕 부차에게 헌상하도록 하였다. 서시의 빼어난 미모에 흠뻑 빠진 부차는 매우 만족해하였다.


부차의 마음을 사로잡은 서시는 온갖 감언이설로 제나라를 공격할 것을 부추긴다. 한편 월나라 왕 구천은 오나라가 제나라와의 전쟁으로 인해 많은 국력을 소모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오나라의 경계심을 허물어트리고자 직접 여러 예물을 가지고 오나라를 방문한다. 이에 안심한 오나라 왕 부차는 제나라 공격을 감행하게 되고 결국 이로 인해 오나라 국력은 급격히 쇠퇴하게 된다. 드디어 구천은 오나라를 공격할 기회를 얻게 되고 마침내 오나라의 왕 부차를 생포하여 지난날의 원한과 치욕을 갚고 부차를 자결케 한다.


이렇듯 범려는 구천을 도와 그를 패왕의 반열에 오르게 한 일등공신이다. 그러나 범려는 구천의 인간됨이 환난은 함께 할 수 있으나 즐거움은 함께 누릴 수 없는 인물이라는 것을 알고 제나라로 건너가 초야에 묻히고 만다. 범려는 이미 목적을 달성한 구천 밑에서 오래 함께 한다는 것이 그 자신의 목숨을 보존키에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 몸을 숨긴 것이다.


월나라에서 정치를 그만두고 제나라로 이주한 범려는 이후 장사로 큰돈을 벌게 된다. 그러나 그는 그마저도 온 재산을 던져 가난한 사람을 도와 나눔과 베품의 인간애를 몸소 실천한다.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알았으며 크게 벌어 크게 쓸 줄 알았던 범려를 통해 우리시대의 진정한 지도자의 모습을 그려보는 마음 크다.  


시인 정성태

 

정성태 정치칼럼집 "창녀정치 봇짐정치" 중에서 발췌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989580006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