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태 [칼럼]

참여시와 순수시 논쟁의 이분법적 오류에 대한 견해/정성태

시와 칼럼 2008. 9. 27. 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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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시와 순수시 논쟁의 이분법적 오류에 대한 견해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참여시와 순수시 논쟁이 문단 안팎으로 뜨겁게 전개된 바 있다. 입장차에 따라 마치 서로를 잡아먹을 듯 거친 기세로 목청 돋우던 때가 꼭 엊그제만 같다. 화석화된 일부는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앵무새 노릇을 그칠 줄 모르는 것도 현실이다.


이는 문학적 논쟁과는 사뭇 별개의 방향에서 전개되고 또 설전이 오간 측면이 다분하다. 지극히 정치적 입장에 따라 진영이 갈리고, 더 나아가 자신들 편리에 맞춰 문학을 오도한 경향이 뚜렷하다. 이에 대해 책임 있는 당사자들은 진영 어느 쪽을 불문하고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기실 시를 쓴다는 행위는 그 자체로 순수한 몸짓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담고 있는 사상적 배경이나 이데올로기적 측면이 어떠한 것이냐 하는 문제는, 곧 시를 쓰는 시인 자신의 몫이지 다른 어떤 외부적 요인에 의해 강제되어 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울러 시를 발표한다거나 또는 시집을 내는 일련의 일들은, 시인 스스로의 순수성에 기초한 그의 크고 작은 세계를 누군가에게 드러내고자 함이다. 이는 설혹 그가 의도한 바가 아니라 할지라도, 필경 그 자체로 세상일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며 혹은 분명한 자기 의지의 표명이 되는 것이다.


때문에 시인은 자기의식 세계의 가장 순수한 관찰자이며, 동시에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부단한 참여자인 것이다. 되묻거니와, 어찌 인간이 빵으로만 살 것이며, 아울러 정서적으로만 살 수 있단 말인가? 문학은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소임이 함께 부과되어 있음을 결코 간과해서는 아니 될 일이다.



시인 정성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