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태 [칼럼]

DJ라 할지라도 사악한 자 편에 서면 필망 면치 못해/정성태

시와 칼럼 2007. 7. 22.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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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분을 잃게 되면 천하의 제왕이라 할지라도 그 위상이 추락하게 된다. 근래 DJ의 행보를 두고서 터져 나오는 세간의 따끔한 지적이다. 이는 호남 내에서조차 그 비판의 강도가 날로 비등해지고 있다는 데 그 심각성은 더한다.

지난 17대 총선 이후 일단의 열린당 의원이 DJ를 찾은 바 있다. 그 자리에서 DJ가 말하기를 "총선에서 열린당 후보를 찍었다"라는 뉘앙스의 발언을 한 바 있다. 몇몇 정치 조무래기들에 대한 덕담이겠거니 생각하며 치솟는 울분을 꾹꾹 눌러 참았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노무현 정권 들어서기 무섭게 DJ가 그 자신의 임기 내내 심혈을 기울여 추진했던 햇볕정책을 난도질함으로써 민족문제에 심각한 퇴행을 초래했다. 그런가하면 DJ의 팔 다리가 되어 주었던 이들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줄줄이 감옥행을 당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와중에서도 DJ의 처신은 참으로 안타까운 것의 연속이었다.

민주당이 두 동강 날 때는 아무런 발언도 하지 않은 채 집안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선 숨어버린 DJ였다. 노무현이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이니 뭐니 하며 구걸질 할 때도, 다수 열린당 의원도 그러했지만 DJ 역시 그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했다.

사실 그간 DJ를 진정어린 시선으로 아끼고 또 지켜 준 정당과 그 지지자들을 들라 한다면 당연히 민주당과 그 구성원들이었음을 숨길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된 영문인지 민주당에 대한 DJ의 태도는 지극히 실망스런 처신뿐이었다.

그런데 더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어떤 정치적 사안에 대해 DJ 자신이 손 벌릴 일이 생기면 꼭 민주당을 향한다는 점이다. 이는 민주당과 호남을 자신의 들러리쯤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단적인 반증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 무안, 신안 지역 보궐선거를 돌이켜 보자. 지역민의 반대가 과반을 웃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둘째 아들을 출마시키는 강수를 둔다. 아들에게 국회의원 자리는 안겨 주었을지 모를 일이지만 그러나 자신에 대한 지지기반의 붕괴가 상당 부분 진행되고 말았다. 바로 국민적 신망을 잃게 된 것이다.

물론 국민의 정부 5년을 거치면서, 그간 적체되었던 인사 문제에 있어서는 해갈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지역 예산문제를 비롯한 경제적 측면에서는 호남이 오히려 역차별을 당했음을 기억할 일이다. 도대체 호남이 무슨 천형의 땅이라도 된다는 말인지 서글픈 마음 금할 길이 없다.

최근에는 국가를 나락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노무현을 비롯한 그 정치적 사생아들과 함께 묻지 마 통합을 하라고 민주당을 향해 아예 내 놓고 종용한다. 노무현 정권과 열린당을 향한 국민적 불신과 적개심이 어느 정도인지를 뻔히 알고 있을 터인데도 말이다.

이래서는 안 된다. 자신의 잇속만을 �아 아무렇지도 않게 정당을 쪼개고 만드는 일이 반복되는 3류 정치가 지속되어서는 결단코 아니 될 말이다. 이는 국민을 기만하고서도, 또 이런저런 쇼만 거창하게 한 탕 하고 나면 된다는 썩어빠진 근성을 심어주게 되는 까닭이다. 그리고 그러한 잘못된 정치적 악순환의 고리가 연이어 계속됨으로써 국가적 손실과 국민적 폐해만 극심해지는 연유에서다.

DJ의 위상이 세워지게 된 것은, 그가 지난 날 혹독한 군사정권의 온갖 위협 앞에서도 자신의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꿋꿋하게 지켜나간 때문이다. 바로 그 정신의 산물인 셈이다. 그리고 DJ가 대통령이 된 이후엔 민족애에 기반을 둔 깊은 통찰력과 혜안으로 햇볕정책을 추진한 것에 대한 아낌없는 박수인 것이다.

그런 그가 근래엔 호남에서조차 극렬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간 존경해 오던 DJ라 할지라도 그의 잘못된 처신에 대해서는 단호히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호남의 자존을 지키고 또 DJ 자신의 명예를 온전히 지키는 길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결코 호남은 DJ 한 사람만을 위한 봉이 아니란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호남은 민족의 평화 협력을 통한 통일 지향적 가치를 신봉하며, 각자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가운데 민주주의적 가치를 따르고, 또 불의 앞에서는 그 어떤 회유와 위협 앞에서도 굴하지 않는 올곧은 정신을 목숨처럼 아는 까닭이다.

바로 이것이 광주 정신으로 대변되는, 그리고 오늘 날 비록 미진하지만 민주주의의 기틀을 마련한 시간적 공간적 토대가 바로 호남인 것이다. 이런 호남을 향해 그 누구라 할지라도 거짓됨을 강요해선 아니 될 말이다. 천하의 DJ마저도 사악한 자의 편에 서면 결코 그 위상이 온전치 못하게 됨을 깨달을 일이다.

시인 정성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