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태 [칼럼]

노무현 대통령께 드리는 편지

시와 칼럼 2005. 8. 8.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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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이상호 기자에 의해 X-파일 문제가 처음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역대 군사 정권에 의해 자행되었을 것으로 추측만 무성하던 도감청 문제가 이제 국민들 사이에 가시적으로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국민의 눈과 귀가 이 문제에 쏠리고 있는 상황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대통령께 여쭙고자 하는 것은 기실 따로 있습니다. 문제의 발단이 된 X-파일을 처리함에 있어 저로서는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께서도 주지하시는 바와 같이 관련된 음성 기록의 가장 큰 몸통으로 의심받고 있는 곳은 삼성 그룹과 김영삼 전 대통령 하의 도감청 전문 정보팀인 미림입니다.

따라서 그에 대한 수사가 깊이 있게 이뤄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청와대와 국정원 그리고 검찰의 행태는 자꾸 핵심을 피해가고 있다는 판단이 듭니다. 지금 세간에서 회자되고 있는 말을 그대로 빌리자면, 대통령과 가장 친한 것으로 일컬어지고 있는 기업이 막강 재벌 그룹인 삼성입니다.

여기에 전 중앙일보 회장이자 그리고 대통령께서 친히 주미 대사로 임명하셨으나 정경 유착의 핵심적 브러커 역활을 담당한 충격적인 사실이 X-파일을 통해 밝혀짐으로써 얼마 전 도중 하차한 홍석현 씨에 대한 문제입니다.

사실 홍석현 씨의 정경 유착이란 검은 커넥션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대외적으로 얼마나 크게 나라 망신을 시켰는지 모를 일입니다. 언론과 금력을 통해 국가의 최고 지도자를 선출하는 문제에 깊숙히 개입, 국민의 눈과 귀를 오도하려 했다는 사실은 실로 커다란 충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대통령께 단도직입적으로 여쭙겠습니다. 현재 삼성 그룹과 미림팀 그리고 홍석현 씨에 대한 수사는 잘 진행되고 있는지요?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온 매스컴을 비롯한 청와대와 국정원까지 총 동원돼, 자꾸 문제의 본질을 흐리게 하는 도감청 쪽으로만 사건을 몰아가고 있는 것인지 의아스럽기만 합니다.

참으로 유감스런 상황이 연일 계속되고 있습니다. 도대체 진짜 해야 될 수사는 한 치도 진척되지 않고 있으니 저로서는 그 연유가 무엇인지, 도무지 아리송하기만 합니다. 아울러 대통령께서 표방하고 계시는 참여 정부 하에서는 진실로 정보 기관에 의한 도감청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그에 대해 하늘을 두고 맹세할 수 있으신지요?

기왕 편지를 쓰게 되었으니 하나만 더 여쭤 보겠습니다. 지금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정보 기관에 의한 도감청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미국은 물론이고 서구 유럽 사회에서도 매양 사정은 같습니다. 그리고 이는 어린 초등학생들도 훤히 알고 있는 듯 하더군요. 이러한 마당에 확실히 파악되고 있는 외국 스파이들의 활동에 대해서도 도감청을 하지 않고 있다면 이는 정보 기관의 직무 유기에 해당된다고 생각하는 데 대통령께서는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그렇다면 문제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우리가 회복해야 할 양심과 진실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결국 국가의 안보와 안위를 지키기 위한 그런 차원에서의 도감청은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 아니겠는지요? 그렇다고 다른 오해는 마시기 바랍니다. 일반인에 대한 무분별한 도감청마저 허용하자는 뜻은 결단코 아니니 말입니다.

물론 일반인에 있어서도 부득이 필요한 경우에는 적법 절차를 통해 도감청을 실시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럴 때라도 엄격한 법적 제한을 통해 도감청이 남발되는 것은 철저히 막아야 하겠지만 말입니다. 또한 이를 정략적으로 악용하는 비열한 짓도 당연히 없어야 하겠지요.

이제 대통령의 임기가 앞으로 2 년 반 가량 남은 듯 합니다. 그 때가 되면 모든 국민이 속 시원하게 진실을 알게 되는 때도 오겠지요. 그럼 부디 강건하셔서 국정을 잘 이끌어 주시기 바라며 이만 소생의 편지를 가름하겠습니다.

2005년 8월 7일

시인 정성태 拜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