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태 [칼럼]

미국의 패권주의와 참여정부의 졸렬함/정성태

시와 칼럼 2005. 5. 23. 0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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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이라크에서 종전을 선언하며 마치 자신들이 단기간에 거쳐 전쟁에서 승리한 것처럼 국제사회에 대고 선전하던 기억이 아직 새롭다. 언뜻 보면 참으로 그럴 듯하게 들렸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이라크 집권세력이던 후세인과 그 측근들을 제거했으니 외형상으로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미국의 오만에서 기인하는 대단히 큰 착각에 불과하다. 이와 관련해 개략적으로 살펴보고 향후 이라크 문제 뿐만 아니라 한반도 문제 더 나아가 국제사회의 변화에 따른 우리 정부의 대응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짚어보고자 한다.

지금 현재 이라크 국내 사정이 미국의 뜻에 따라 조속한 시일 내에 마무리 되리란 기대는 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미국의 당초 기대와는 달리 이라크 무장세력의 끊질긴 저항이 날로 악화되고 있으며 이에 미국은 물론이고 마지 못해 이라크에 파병을 감행한 몇몇 국가 역시 당황해 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를 반증하듯 이미 철군을 완료한 나라가 발생하고 있으며, 남아 있는 국가들마저 철군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다.

이라크전을 반대한 대부분의 세계국가 역시 미국의 일방주의적 패권주의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군사, 경제적인 외형적 요인도 작용하고 있지만 그러나 보다 심층적인 것은 그들의 심리적 요인에 의해 더 크게 영향받고 있음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미국에 의한 소외감과 함께 그들에게 주어졌던 일정 부분의 기득권 상실에 따른 반감의 표출인 것이다. 앞으로 이라크 내의 혼란 양상이 지속되게 되면 세계는 상당한 분열양상을 보이게 될 것이다. 세계 각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그야말로 국제질서는 격랑에 휘몰릴 가능성이 한층 높아진 것이다. 국제정세가 혼미하게 전개될 수록 인류는 더욱 불안한 상태에 놓이게 될 것이며 지구촌에는 우리가 미처 예상할 수 없었던 형태의 무수한 사태가 발생할 우려를 안고 있다.

이라크전이 종전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러나 그 내용에 있어서는 장기전 양상을 띠고 있음이 목도되고 있다. 이로 인한 미국의 패권주의는 그 어느 때보다 와해될 가능성이 한층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모든 것이 미국으로만 쏠리던 국제관계에서 그리고 그들에 의해 재편되던 국제질서가 앞으로는 개별국가들의 블럭화 양상으로 급속히 진행될 가능성이 한층 높아진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발언권은 지금보다 현저히 약화될 것이고 오히려 중국을 포함한 유럽의 반전국가들 목소리가 보다 커질 개연성을 안고 있다.

유엔 체제도 유명무실화 된지 이미 옛말이 되었다. 이와 관련한 유럽연합의 태동에서 보듯이 국제질서도 복잡한 양태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유럽연합도 이미 그 한계를 보이고 있다. 이는 유럽연합 내의 복잡한 이해관계에서 비롯되는 현상으로 향후 세계는 보다 더 다양한 형태로 합종연횡 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현재 미국의 외교적 움직임을 통해서도 파악되고 있다. 이라크전으로 인한 국내 여론의 따가운 질책과 그리고 국제사회의 차가운 눈총을 절감한 부시정권이 오히려 이라크 문제에 대한 평화적 해결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내의 철군주장이 갈 수록 커지면서 공화당 부시 정권의 입지도 그만큼 위축된 상황에 놓여 있으며 이와 함께 부시가 재선에 성공할 확률도 상대적으로 낮아지고 있는 것이다. 설혹 부시가 재선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그러나 미국은 그들의 실추된 국제위상을 회복하기 위해 다각적인 협상을 모색하게 될 것이다. 아울러 부시에 비해 보다 당선 가능성이 높은 민주당 케리 후보가 집권할 경우에는 더 분명하게 전개되리란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여기서 우리 정부가 깊게 생각해야 할 점이 있다. 설혹 이라크에 친미정권이 들어서게 된다 하더라도 그러나 우리가 그곳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이다. 미국 석유자본에 의해 이라크 석유가 통제될 것이 확실시 된다고 가정하더라도 그 석유를 우리가 값싸게 확보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참으로 어리석은 망상이란 것이다. 아울러 전후 이라크 복구사업에 우리가 우선권을 쥐고 참여하게 되리란 막연한 환상도 버려야 한다는 점이다. 설사 우리에게 일정 부분의 지분이 주어진다 하더라도 그래서 그것이 우리에게 실질적인 화폐가치를 제공해준다 하더라도 그러나 그 돈을 누가 우리에게 줄 수 있겠느냐 하는 점이다. 폐허더미에 주저앉은 이라크가 주리란 것은 만무하고 그렇다고 국제사회가 십시일반해서 대납해 줄 수 있는 사안도 아닌 것이다. 또는 미국 정부가 이라크를 대신해 우리에게 땀값을 줄 수 있는 것도 결코 아니란 사실을 직시해야 되는 것이다.

필자가 한사코 외치는 파병반대 목소리는 분명한 이유가 또 있다. 그간 관례처럼 이어져 온 한미간의 정치, 외교적 종속관계를 일정부분 해소하자는 것이다. 특히 국제여론이 좋지 않은 상태이고 아울러 우리나라의 국민 여론도 정부의 파병 결정에 대해 대단히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우리정부가 굳이 파병을 감행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미국으로부터의 압력은 최소화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민족문제와 관련해서도 매우 중대한 사안이다. 향후 미국이 북한의 핵문제를 빌미로 한 무력침공을 막을 수 있는 중요한 구실로도 삼을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성숙한 국민자세와 지혜를 필요로 하고 있다. 아울러 정부당국의 치밀한 정보력과 유연한 외교력을 요구하고 있기도 하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참으로 많은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어떤 일을 결정해야 되는 와중에서 무수한 고뇌와 고통이 따르는 경우도 발생하게 된다. 이는 필자를 비롯한 어느 누구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어떤 이는 자신의 이익만을 좇아 움직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이는 원칙과 소신을 비교우위에 두기도 한다. 진실이 어디에 기인하느냐 하는 내면의 울림에 귀 기울이고 이를 좇아 정직하게 말하고 행동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늘 새로운 친구를 사귀게 된다. 오래된 친구와도 지속적인 우정을 쌓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친구와도 좋은 만남을 갖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미국은 일정 측면에서 볼 때 우리와는 오래된 친구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이제는 그간 관례처럼 지속되어 왔던 한미과계를 재검점해야 할 때가 되었다는 점이다. 이제는 한국사회도 여러 면에서 발전하였고 또 상당 부분 성숙해져 있다. 그런데도 여지껏 한미간의 관계가 굴욕적인 형태를 나타내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러한 요인 때문에 우리사회 일각에서 불필요한 반미구호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필자는 미국과의 관계에 있어서 결코 판을 깨자는 사람이 아니다. 파병을 반대하고 있는 입장이지만 그렇다고 미국과 등을 돌리자는 입장은 아니라는 것이다. 분명히 밝히지만 필자는 오히려 합리주의적 입장에 가까운 사람이다. 김선일이라고 하는 대한민국 국민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위급한 상황에서 왜 파병고수 입장만을 강경하게 재확인해 주었느냐 하는 것에 대해 따져 물을 줄 아는 정상적인 사고를 할 줄 아는 사람이란 것이다.

어찌 된 것이 한반도에는 한결같이 강대국들로만 휘둘려 있는 것 같다. 우리와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이에 있는 중국은 현재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다. 향후 미국에 맞설 가장 강력한 국가로 대두되고 있다. 러시아 역시 오늘날에는 비록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그러나 절대 무시할 수 없는 막강한 군사대국임에 틀림없다. 우리와도 지리적으로 가까운 나라임과 동시에 향후 어떤 모습으로 회복될지 모를 일이기도 하다. 동쪽으로는 일본이 지근거리에 자리하고 있다. 일본의 자위대가 갖는 군사력은 미국에 이어 세계 두 번째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야말로 한반도를 둘러 싼 사방이 강대국들로 포진해 있는 것이다. 지정학적으로 한국에 대해 갖는 강대국들의 군사, 경제적 교두보로서의 필요성과 함께 이는 우리에게 위기임과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기회인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냉전 후 국제질서는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미국의 우방이었던 유럽도 오늘날에는 다른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중국도 결코 예전의 그들 모습이 아니다. 미국과도 그들이 필요한만큼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적극 견제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아울러 유럽과도 보다 더 적극적인 관계구축에 나서고 있다. 이와 관련해 미국과 중국의 입장을 살펴보면 참으로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된다. 바로 대만 문제가 그것이다. 미국 입장에서 볼 때, 대만은 태평양 방어와 함께 중국 견제라는 이중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로 자리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중국도 북한을 통한 대륙방어라는 지리적 특수성을 포기할 수 없는 입장이란 것이다. 중국과 미국이 모두 한 치의 양보도 허용할 수 없는 접점이 바로 대만과 우리나라인 셈이다. 따라서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미국의 북한 침공 우려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넌센스라 아니 할 수 없는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는 새로운 인식이 요구되는 때이다. 그간 고착화된 미국이란 울타리와 그 환상에 가까운 믿음에서 보다 전향적인 자세와 함께 발상의 전환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이 미국으로만 집중되었던 행태에서 벗어나 보다 운신의 폭을 넓혀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오래된 친구와도 좋은 관계를 지속하면서 아울러 새로운 친구와도 적극적인 활로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세계각국의 이해 당사자들 사이에서 어떻게 운신한 것인가 하는 점이 참 어려운 문제로 남는다. 바로 여기서 정부의 외교력이 변수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외교력 여하에 따라 국운의 향배도 달리 나타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거듭 밝히지만 지금 우리 정부의 정보, 외교력이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국제관계를 고려해야 할 때임이 분명하다. 이를 통해 다각적으로 모색되고 최종 결정되어야 하는 것임은 두 말 할 나위가 없다. 진짜 국익이 무엇인지 보다 냉엄히 생각하고 판단해야 할 때란 것이다. 우리는 미국이든, 중국이든, 유럽이든 러시아든 또는 일본마저도 적절히 활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정부가 할 일인 것이고 또한 정부의 역량을 검증받게 되는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우리정부의 이라크 파병 강행은 절대 국익과 부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시급히 깨닫기 바란다. 그러나 여기서 밝히고 싶은 것은 이라크 국내 정세가 안정되면 우리도 필요한 재건부대를 보내서 그들의 복구를 도와야 한다는 점이다. 도대체 무엇이 국익과 부합되는 것인지 이에 대해 정부는 소상히 밝혀 줄 것을 기대한다.

시인 정성태

2004년 6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