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태 [칼럼]

일본의 우려스런 우경화 현상/정성태

시와 칼럼 2005. 5. 23. 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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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자위대 창설 50주년 기념행사가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한 복판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성대히 개최됐다. 일본 내에서의 행사였다 하더라도 그들의 지난 행적을 비춰볼 때 비난 받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런데도 왜 굳이 한국에서 이런 행사를 대대적으로 연 것인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무거운 마음 떨굴 길이 없다. 더욱 가관인 것은 우리 정부의 통일부와 국방부 관계자를 비롯하여 입법부에서는 한나라당의 송영선, 안명옥, 나경원, 김석준 의원과 열우당의 신중식 의원도 참석한 것으로 알려져 국민적 자긍심에 심한 모멸감을 안겨주고 있다.


일본의 우경화 현상이 우려할만한 수위를 나타내고 있음은 우리 모두 주지하고 있는 사실이다. 작년에 있었던 독도 관련 우표 발행 시비를 비롯해 최근에는 독도유람선 운항허가 취소 요구 등과 같은 파렴치한 작태를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의 대변자라 할 수 있는 몇몇의 국회의원까지 일본의 자위대 기념행사에 버젓이 참석했다고 하니 과연 그들이 국민의 혈세로 이루어진 세비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들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의 군사 대국화에 따른 아시아 국가들의 현실적 인식도 외신을 통해 심심찮게 들려오고 있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물론이고 의회를 비롯한 그들의 국민의식 또한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이란 망령과 맞물려 있음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이는 일본 자위대의 해외 파병과 관련해서 더욱 확연해지는 대목이다. 우리 정부와 일부 몰지각한 의원들과는 달리 아시아 국가들의 우려가 결코 기우에 그치는 것이 아닌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음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일본의 군사력 보유와 관련해서 살펴보면 더욱 실감나게 깨닫게 된다. 1945년 일본의 패망과 함께 그들은 군사력 비보유를 선언하고, 아울러 2년 후 시행된 이른 바 평화헌법에서는 국가간의 교전권 포기와 어떠한 군사력도 가지지 않는다는 내용을 명문화 한다. 그러나 이도 잠시,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일본의 치안유지를 목적으로 한다는 구실 아래 경찰예비대를 창설함으로써 사실상의 군사력을 보유하게 된다. 이어 1952년 보안대로 재편한 뒤, 1954년 현재의 자위대로 명칭을 변경함으로써 그들의 헌법에 명시된 내용과는 달리 분명한 군사력 보유 의지를 드러내게 된다. 그리고 계속된 자위대의 전력 확충과 함께 1990년대부터는 자위대의 해외파병과 집단자위권 행사를 천명함으로써 명실상부한 일본의 군대로 발전시킨 것이다.


현재 일본 자위대의 군사비는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장비 또한 그들의 경제력과 맞물려 모두 최신형 첨단 무기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병력 면에서도 세계적인 수치를 보이고 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들이 세계에서 몇 척 안 되는 이지스함을 4척이나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일본과 지리적으로 근접해 있는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보자면 실로 두려운 존재임에 틀림 없는 것이다. 목표의 탐색으로부터 이를 파괴하기까지의 전 과정을 하나의 시스템에 포함시키고 있음으로써 전방위 공격과 방어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일본의 해상 자위대가 보유하고 있는 이즈스함이 갖는 가공할만한 위력은 가히 상상 이상인 것이다.


참으로 무서운 나라를 바로 옆에 두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우리는 역사를 통해 이미 일본의 침략전쟁으로 인한 감당키 어려운 숱한 피해를 당해 왔다. 이를 감안할 때 군사력 증강을 통한 자주국방은 우리의 불가피한 선택이 되어야 함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그러나 이는 북한을 전제로 한 것이어서는 결코 아니 될 말이다. 통일 이후 필연적으로 나타나게 될 일본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와 같은 주변 강국의 군사력을 제고한 체계적인 방위전력이 수립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아울러 그에 상응하는 국방력 강화와 함께 우리 기술에 의한 무기체계를 갖추는 데 보다 많은 예산과 노력이 집중되고 또한 투자되어야 하는 것이다. 자주국방은 단순한 구호가 아닌 정부와 국민 모두의 실천의지를 통해서만 효과적으로 수립되고 완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인 정성태


2004년 6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