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은 대체로 완벽해지고 싶어 한다. 혈연관계를 비롯한 사회적 관계에서도 그렇다. 완벽한 부모, 완벽한 배우자가 되기를 꿈꾼다. 또한 그러한 친구와 동료를 만나고 싶으며, 무엇보다도 흠 없는 자신으로 살아가기를 염원한다. 하지만 인생은 우리에게 하나의 진실을 가르쳐 준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으며, 완벽한 관계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상처받는다. 그것이 태생적 비극이다. 이는 어쩌면 인간을 인간답게 하기 위한 신의 계략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것을 자각하는 것으로부터 우주가 열린다. 어떤 관계든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오히려 완벽에 가까울 수 있다는 하나의 과정인 셈이다. 이 역설의 문답 속에서 자신을 향상시키는 지혜로운 안목과 대처가 요구된다.
삶의 지혜는 완벽을 이루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완벽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오늘보다 조금 더 따뜻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데 있다.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는 사람은 결코 약한 사람이 아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타인의 연약함도 품을 수 있게 되고, 그 포용 속에서 삶은 이전보다 훨씬 깊고 풍요로워진다.
만약 누구도 상처받지 않고, 누구나 완벽할 수 있었다면 우리는 타인을 이해할 이유도, 용서할 이유도, 자신을 돌아볼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불완전함은 인간의 약점인 동시에 인간다움을 증명하는 가장 깊은 흔적이다. 완벽을 내려놓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되고, 그때 비로소 세상은 결핍의 장소가 아니라 감사의 공간으로 바뀌게 된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존재다. 숱한 관계 속에서 기쁨과 행복을 경험하는 동시에 상처와 실망을 반복해서 겪는다. 이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숙명과도 같은 존재의 확인이다. 하지만 그것을 통해 서로를 이해할 수 있고, 용서할 수 있으며, 함께 성장할 수 있게 된다. 완벽한 사람이 되어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부족함을 품어 줄 때 비로소 진정한 사랑과 우정이 영글어간다.
그렇듯 인생은 흠 없는 사람이 되는 경쟁이 아니다. 자신의 상처를 이해하고, 타인의 눈물을 품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 가는 여정이다. 사람은 완벽해서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하기 때문에 서로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완벽을 꿈꾸기보다 조금 더 따뜻한 사람이 되기를 소망해야 한다. 그 따뜻함이 사람을 살리고, 세상을 바꾸는 조용한 힘이 되기 때문이다.
* 정성태(시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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