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현대 추상미술을 국내외에 널리 전하고 있는 권순익 작가의 개인전 '시간의 틈(Interstice of Time)>이 지난달 18일부터 이달 17일까지 중국 상하이 소재 춘미술관에서 개최된다.
이번 전시는 권순익 작가의 중국 첫 개인전이자, 춘미술관 개관 이래 처음으로 선보이는 한국 작가 초대 개인전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아울러 한국 현대 추상미술의 성과를 중국 무대에 소개하는 기회여서 더욱 주목된다.


권순익 작가는 시간과 존재, ‘지금 이 순간’의 의미를 탐구해 온 한국 현대 추상미술의 주요 인물이다. 그는 점을 반복적으로 쌓는 '무아', 현재의 시간을 시각화한 '적·연', 관객과의 감응을 탐구하는 '호응' 연작을 통해 시간과 존재에 대한 질문을 이어오고 있다.
대표 연작인 '틈-적·연'과 '무아(無我)' 시리즈를 중심으로 40여 점이 출품된 이번 전시에는 작가가 오랜 시간 구축해 온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단순한 형태적 추상을 넘어 삶의 본질과 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 담겨 있다.

화면 속 색면들은 서로 맞닿아 있으면서도 완전히 결합되지 않은 채 긴장감을 형성하며, 그 사이의 ‘틈’은 과거와 미래 사이에 존재하는 현재를 상징한다. 멀리서 보면 단정한 추상이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수없이 반복된 연마와 층위의 흔적이 드러난다.
특히 과거에 대한 집착과 미래에 대한 불안 속에서 놓치기 쉬운 ‘현재’의 가치를 작품의 중심 주제로 삼아 탐구하며, 관람자가 스스로 현재를 인식하고 삶을 성찰할 수 있는 감각적 공간으로 이끈다. 그로부터 이입되는 사유와 내면의 평온은 마치 작가의 수행적 풍경으로 읽힌다.


아울러 그의 작업에서 중요한 것은 재료 자체가 가진 시간의 개념이다. 그는 수억 년 동안 고온과 고압 속에서 형성된 천연 흑연을 주요 매체로 사용한다. 검은 빛을 반복적으로 갈고 닦는 절제된 조형 언어는 깊은 명상성과 리듬감을 형성하며, 관람자로 하여금 시각적 감상을 넘어 정신적 울림을 경험하게 한다.
변종필 관장 (서귀포공립미술관)은 "권순익의 작품은 한국 단색화의 명상성과 서구 추상의 공간 개념을 떠올리게 하지만, 동시에 그 어느 흐름에도 완전히 귀속되지 않는 독자적 언어를 구축해왔다"며 "그의 작업은 시간에 대한 철학적 질문에서 출발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어떻게 지금을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깊은 성찰로 이어진다"고 평가했다.

이어 "‘점(무아)–면(틈)– 선(호응)’으로 이어온 과정은 작가의 정신과 삶의 궤적이 응결된 흔적들이다"며 "여기에 기와와 석묵을 다양하게 결합해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넘나드는 설치 작업은 권순익의 작품세계를 깊이 있게 읽어내는 또 하나의 핵심이 된다"고 진단했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과 관련해 "점을 찍는 행위와 흑연을 문지르는 것을 반복하는 과정은 일종의 수행과도 같은데, 토속적으로 접근하면 다복을 기원하는 의식 같은 것이기도 하다"며 "반복의 과정을 통해 나를 둘러싼 온갖 겉치레를 다 걷어내고 무(無)에 가까워지면서 비로소 진정한 나를 마주하게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틈’이란 과거와 미래 사이의 영원으로 통하는 틈, 즉 현재에 충실한 삶에 대한 메시지를 담은 작품을 통해 위로와 위안을 전하고자 한다"며 "시각적 아름다움의 전달 뿐만 아니라, 자신의 감정이나 경험을 투영하고 그 속에서 잠시나마 스스로 내면의 깊이를 들여다볼 수 있기를 바란다"고 희원했다.
전시 관람시간은,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이며 월요일은 휴관한다. 폐막일에는 정오 12시까지 입장 가능하다. 한국 현대 추상미술의 독창적인 흐름을 보여주는 동시에, 동아시아적 사유와 현대적 조형 언어가 만나는 특별한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 필자 : 정성태(시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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