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양화 작가와 음악가로 활동하고 있는 이혜정 시인이, 첫 시집 『두 번째 페이지』를 도서출판 ‘북 매니저’에서 출간했다. 총 4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60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음악과 문학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 이혜정 시인의 이번 시집은 예술적 기질과 끼에 바탕한 상상력이 상호 내밀한 조화를 이루며 문자적 합일을 향한다.
김술(시인, 수필가)은 서평을 통해 "다원적 예술가의 탄생을 캔버스와 악보를 찢고 나온 문장들이 보여준다. 한 사람의 생애는 그 자체로 두꺼운 한 권의 책이다. 그러나 그 책의 페이지들은 결코 순차적이고 매끄럽게 넘어가지 않는다. 어떤 페이지는 눈물에 젖어 서로 들러붙어 있고, 어떤 페이지는 난독과 오독으로 가득하며, 또 어떤 페이지는 불길에 그을려 가장자리만 흉터처럼 남아 있다. 이혜정의 시집 『두 번째 페이지』는 바로 그 훼손되고 망가진 삶의 텍스트를 맨손으로 더듬어 읽어내려는 치열한 분투기"라고 진단한다.
아울러 "이 시집을 마주하는 일은, 한 인간의 내면에서 미술과 음악, 그리고 산문과 운문이 어떻게 격렬하게 충돌하고 또 융합하는지를 목격하는 경이로운 체험이다. 그녀는 단일한 정체성에 갇히기를 거부한다. 붓을 쥐고 색채의 이면을 투시하던 화가, 보이지 않는 공기 속에서 화음과 불협화음을 조율하던 음악가, 그리고 삶의 비루한 일상을 끈질기게 기록해 온 수필가의 시선이 이 시집 안에서 하나의 거대한 다성악(Polyphony)으로 울려 퍼진다. 예술의 여러 장르를 횡단해 온 그녀에게 시(詩)란, 캔버스에 다 담지 못한 심연의 색채를 문자로 번역하는 일이며, 건반 위에서 놓쳐버린 파열음을 활자로 타건(打鍵)하는 행위"라고 조명한다.

그러면서 "화가의 드로잉을 연상케 하는 시편에서, 시인은 캔버스 위를 스쳐 가는 붓질의 질감을 고스란히 시어로 옮겨놓는다. 도자기의 표면을 구워내는 가마 속의 열기를 묘사한 「앙스트 블뤼테」에서도 이러한 조형적 상상력은 빛을 발한다. '매화무늬 화병이 되기 위해 / 불 위에 앉아 있었다 / (중략) 사금파리처럼 조각난 날들을 헤치고 / 뼈대를 늘리고 싶었다'는 고백은, 미술가로서 물성과 싸워온 시간들이 어떻게 스스로를 연단하는 시적 수련으로 치환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이처럼 이혜정의 언어는 유체이탈의 관념이 아니라, 물감의 끈적임과 흙의 뜨거움을 품은 고도로 육화(肉化)된 텍스트"라고 평가한다.
이어 "그녀의 언어는 유려하게 포장되지 않는다. 그녀의 시는 본문「수선화의 안쪽」에서 암시되었듯“손으로 퍼올리지 못한 바닷물”과 같다. 쥐려 할수록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지만, 이미 당신의 두 손과 심장에는 그 지독한 짠맛이 배어들고 만다. 화가의 정교한 붓질로 상처의 윤곽을 스케치하고, 음악가의 타건으로 비극의 선율을 연주하며, 수필가의 정직함으로 일상의 흉터를 고백해 낸 이 시집은 한 작가가 피워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앙스트 블뤼테(Angst blüte, 고난 속에서 피워낸 꽃)’다. 오직 문학이라는 벼랑 끝에 서서 삶의 비극과 정면으로 맞선 이혜정 시인의 이 지독한 기록들은, 이제 독자들의 팍팍한 삶 속에서 결코 지워지지 않을 새로운 위로의 페이지로 각인될 것이다. 그녀가 온몸을 바쳐 써 내려간 이 서늘하고도 뜨거운 통증이 우리 시대의 가장 찬란한 빛으로 타오를 때까지, 우리는 그녀의 시를 머리맡에 두고 묵묵히, 그러나 결연하게 다음 페이지를 넘겨야만 한다"고 설파한다.
이혜정 시인은 1962년 광명에서 출생하였으며, 이화여자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교회음악과 설교통역을 공부했다. 방송통신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후 중앙대 대학원 문예창작 전문과정을 수료했다. 30여 년간 교육사업을 해오고 있다.
<시현실>에서 시 등단, <월간 문학>에서 수필로 등단하였으며 최충문학상, 동서문학상, 국민일보 신춘에서 수상했다. 현재 한국문협과 광명문협, 시현실 문학회, 대표에세이 문학회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그림 산문집 『익숙한 얼굴』을 통해 그녀의 에세이를 그림과 함께 소개했다. 공저로 수필집 『일상의 품격』, 『맛, 그리움이 되다』에 참여했다.
* 필자 : 정성태(시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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