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태 [칼럼]

윤석열 정부 몰락 초래한 십상시들 누구일까?

시와 칼럼 2024. 11. 6. 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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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후한(後漢) 말기, 황제가 병에 걸려 죽거나 암살당하는 등 요절하게 되면 어린 황제가 즉위하는 경우가 잖았다. 이른바 십상시(十常侍)의 등장 배경이 된다. 국정에 미숙하고 나약한 황제를 배후 조종하며 온갖 권력전횡과 부패를 일삼던 환관 집단을 일컫는다.

십상시는 황제의 지근거리에서 세력을 형성하며 황제를 위한 막강 친위세력이 됐다. 때문에 환관들의 권력도 그에 비례해 두터워졌다. 하지만 환관들의 권력 행사는 애국애민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황제의 눈과 귀를 철저히 가린 채 끼리끼리 권력을 사유화하며 제멋대로 휘둘렀다.

비록 황제의 권력 장악과 유지를 위한 인적 체계는 이루었으나, 환관들의 패악한 득세 현상은 민심을 흉흉하게 했다. 십상시들에 의한 매관매직까지 성행했다. 심지어 그것을 공식적으로 승인하기에 이르렀다. 나라의 근간을 뒤흔드는 막장의 연속이었다. 이무렵 중국의 대표적 민란인 황건적 봉기가 일어난다.

『후한서』에는 시중(侍中) 상허가 모함을 받자 장균이 나서 "십상시들이 매관매직하는 바람에 천하에 대란이 야기되었으니 그들의 목을 벨 것"을 간언한다. 또한 "그들의 목을 매달아 이를 널리 알리면 백성들 마음이 편하게 되고, 군사를 쓰지 않고도 황건적이 소멸할 것"이라고 아뢴다.

하지만 장균은 그 때문에 후한 황제 영제의 노여움을 사게 돼 감옥에 갇힌다. 장균은 얼마 후 옥중 사망한다. 그러나 이후 십상시들은 원소에 의해 전원 몰살당한다. 원소는 황건적 토벌에도 나서며 세를 키웠다. 이를 기점으로 군웅활거 시대가 막을 올리며 후한 멸망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황건적이 일으킨 거대 민란을 단순한 도적떼의 약탈 쯤으로 여길 수 있을까? 비록 그들이 영웅호걸들 족적에 가려 빛을 잃었으나, 황제의 무능과 환관들 악행에 따른 백성들 삶의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간과해서는 안된다. '만민구제'를 내건 농민봉기로 평가하는 것이 보다 타당할 듯싶다.

오늘날 한국에서는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국정 농단을 서슴지 않는 대통령 주변부 간신들을 지칭하며 사용된다. 윤석열 정부 들어 특히 화근인 것은, 그간 보수권 내에서도 경원시되던 수구 성향의 정치 모리배들이 대통령 주위에 대거 위태롭게 포진해 있다는 점이다.

정치 브로커로 알려진 명태균 씨 논란이 대통령실과 정계는 물론이고 국민들 사이에서도 초미의 관심사로 대두돼 있다. 만일 그에게 적절한 자리가 주어졌다면 지금의 사달이 벌어졌을까? 하지만 그는 토사구팽 당하자 앙심을 품은 듯싶다. 윤 대통령을 에워싸고 있는 십상시들 농간에 대한 반격이었을까?

애당초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 참모진에 대한 여론은 상당히 부정적이었다. 극우 성향 혹은 아마추어로 비춰졌다. 급기야 대통령에 취임한지 얼마되지 않은 시점에서 참모진에 대한 성토가 쏟아졌다. 국정기조 전환을 요구하는 기류도 팽배했다. 물론 일부 인사는 비교적 원만하게 여겨졌다.

이를 의식한 때문인지 곧장 대통령실 인적 쇄신이 단행됐다. 문제는 사람만 바뀔 뿐 방향성은 그대로였다. 거기 이분법적 편가르기와 냉전적 인식은 오히려 더 깊어졌다. 마치 곧장 전쟁을 일으킬 듯 인식됐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보수를 궤멸하기 위해 작정하고 극우로 치닫는다는 우스갯소리마저 나돌았다.

그러한 상황에서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논란이 연신 불거졌다. 또한 일부 참모진과 각료의 분별없는 망발까지 가중되며 민심 이반을 더욱 부채질했다. 이는 임기 반환점인 윤 대통령에 대한 낮은 지지율이 그것을 단적으로 웅변한다. 대통령실에 대한 전면적인 인적 쇄신과 함께 내각 개편이 요구되는 사안이다.

김건희 여사와 관련해서도 공적인 대외 활동 외에는 즉각 중단돼야 한다. 제2부속실 설치와 특별감찰관 임명도 조속히 이뤄져야 할 사안이다. 배를 띄우거나 뒤집는 것도 국민이 한다. 이심전심 형성된 국민 일반의 보편적 정서를 무시한 권력은 존속하기 어렵다. 윤 대통령의 결단이 요구된다.

* 필자 : 정성태(시인/칼럼니스트)